▲ 지난 10월 27일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배칠수, 이범호와 더블 인터뷰를 가졌다. 그 자리엔 이범호의 아내 김윤미 씨도 함께 나왔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우여곡절의 일본 생활
배칠수(배): 범호야, 우리가 나이 차이가 많은 데도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데 대해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 하실 거야. 친구인 (정)민철이 때문에 한화 선수들을 좋아하게 됐는데 3루수를 보는 너한테 유독 관심이 많이 가더라고. 내가 사회인야구팀에서 3루수를 봐서 그런가? 그래서 한화팀 선수들을 만날 때마다 유독 너한테 더 많은 말을 시키고 그랬잖아.
이범호(이): 선배님이 인천 SK 경기 있을 때마다 집으로 초대도 해주시고 밥도 사주시고 그랬잖아요. 워낙 야구를 사랑하시는 분이라 연예인이라는 느낌보다는 야구 선배님처럼 편하고 의지가 됐어요. 무엇보다 일본 진출 후에 선배님이 계속 연락도 해주시고, 직접 일본까지 오셔서 응원을 해주시니까 눈물나게 고맙더라고요. 선배님이 1군 경기 보러 오실 때는 괜찮았는데 2군에 내려갔을 때도 오시겠다고 해서 몸 둘 바를 몰랐죠. 당시 가장 힘들 때였거든요.
배: 2군 경기가 한낮에 열리잖아. 그때 날씨가 거의 폭염 수준이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야구한다고 경기장에 나오는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아프더라고.
이: 여름 날씨가 보통 37도에서 38도로 올라가요. 좀 선선하다 싶으면 32도 정도였고. 2군 경기는 변함이 없어요. 12시 30분 정확한 시간에 열리죠. 습기 많은 날씨에 기온까지 37도를 넘어서니까 운동장에 서 있는 것 자체가 힘들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선배님이 일본 팬들 틈에서 “이범호, 파이팅! 범호야 바가지, 바가지!”라고 외치는 소리가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어요.
배: 그래도 1군보다 2군에서 범호의 모습이 더 당당해 보이더라고^^(웃음). 1군에선 주전으로 뛰지 못하는데 2군에선 5번 지명타자로 중심에 있었으니까. 범호가 1군에 있을 때는 수비를 보는 데 심장이 떨리는 거야. 혹시 실수할까봐…. 한화에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거든.
이: 한화에서 줄곧 주전으로 뛰다가 일본에서 2군 생활을 해보니까 매일 1군 경기에 나갈 수 있는 선수가 제일 부럽더라고요. 지명타자나 대타가 아닌 수비를 할 수 있는 선수도 부러웠고요. 이전에는 항상 해왔던 부분인데 그걸 못하는 상황이 되다보니까 심적 괴로움이 컸습니다.
일본야구의 진지함
배: 혹시 일본을 선택한 부분에 대해 후회한 적이 있었어?
이: 전혀 그렇진 않아요. 일본에서 성공할 거란 기대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일본에서 야구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한국보다 야구를 훨씬 빨리 시작한 나라에서 야구를 직접 경험해보고자 했어요. 일본 선수들은 야구를 굉장히 존중하고 사랑합니다. 2군으로 내려가도 투덜대지 않고 열심히, 진지한 자세로 경기에 임해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이전의 제 모습에 대해 반성을 많이 했어요. 한국에 있을 때는 4타수 2안타를 치고 팀도 이기는 상황이 되면 7회나 8회쯤 라인업에서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주전 선수 배려 차원에서 코치께서 미리 빼주신 거죠. 그런데 일본 야구는 한 게임 한 게임 최선을 다해요. 아무리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다고 해도 게임이 종료될 때까지 대충하는 선수가 없어요. 감독, 코치, 선수들 모두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승부하는 걸 보면 절로 존경심이 들 정도예요.
배: 일본에서 야구하면서 김성근 감독님의 야구가 이해 됐겠네.
이: (웃으면서) 아주 많이 이해하고 공감했죠. 한화에 있을 때 SK를 상대하다보면 종종 힘들고 짜증스러운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김성근 감독님이 왜 그토록 연습을 많이 시키고 투수를 자주 교체하면서 이기는 경기를 하려 하는지 백퍼센트 공감했습니다. 야구는 팬을 즐겁게 하는 것보다 이겨야 해요. 이겨야 팬이 즐겁죠. 매번 지면서 어떻게 팬을 즐겁게 하겠어요.
용병은 외로워
▲ 리터칭=장영석 기자 |
이: 지난 여름, 소프트뱅크에 용병만 8명이 있었어요. 그중에서 엔트리에 올릴 수 있는 용병은 4명밖에 안 돼요. 이상하게 흑인과 백인 용병들한테는 일본 야구가 좀 더 관대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것 같았고요. 뭐 이 모든 게 핑계일 뿐이겠죠. 가장 중요한 건 실력일 텐데 말이죠. 용병이란 타이틀을 달고 뛰는 건 그냥 선수로 뛰는 것보다 두세 배는 더 힘들더라고요. 조금만 틈이 보이면 바로 내려 버리니까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용병으로 생활하면서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만난 용병들이 많이 떠올랐죠. 그들이 저한테 밥 먹자고 했을 때 몸 피곤하다는 생각에 거절하곤 했던 순간들도 기억났고요. 용병으로 있어 보니까 가장 좋은 선수는 저한테 밥 먹자고 권하는 선수고, 제일 나쁜 선수는 밥 먹자고 말 한 마디 안 하는 선수예요(웃음).
배: 김태균 선수와 동시에 일본으로 진출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두 사람의 성적이 비교될 수밖에 없었거든. 그래도 김태균 선수는 줄곧 1군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탓에 범호 입장에선 많이 부러웠을 거야.
이: 그렇죠. 전 태균이가 부상없이 풀시즌을 뛴 데 대해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일본은 이동 거리도 길고 투수들도 한국 타자를 상대할 때는 정말 이를 악 물고 던진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좋은 성적을 냈으니까 태균이가 아주 대단한 거죠. 그런데 조금 속상했던 부분은 한국에서 나오는 기사들이었어요. 일본 언론에 나온 기사를 그대로 옮겨서 기사화하다 보니 사실과 다른 게 너무 많았거든요. 일본 언론은 한국 선수가 아무리 잘해도 최고의 칭찬을 하지 않아요. 반면에 못하면 최악의 비난을 하죠. 일본 신문의 분위기가 한국에서까지 그대로 전달되니까 미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넷을 보지 않았어요. 인터넷에서 ‘이범호’란 이름을 검색해보지도 않았어요. 일본은 그렇다 쳐도 한국 언론에서는 해외파 선수들을 보호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못해도 좀 기다려주고 용기도 주고 그러면서 잘할 수 있게끔 응원도 보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비난과 비판을 하려면 직접 경기장에 와서 제가 하는 경기를 보고 쓴소리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배: 그래서 한때 범호가 한화로 복귀한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었지. 나도 그 얘기 듣고 너무 궁금해서 직접 친한 한화 관계자 분께 전화로 ‘사실이냐?’라고 묻기도 했었으니까.
이: 자꾸 그런 얘기가 들리니까 저도 잠시 마음이 약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와이프한테 ‘우리 갈까?’하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와이프가 ‘갈 때 가더라도 도망가지는 말자’라고 말하더라고요. 1년하고 들어가는 건 도망가는 거라면서요. 그 말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았는지 몰라요. 정말 저 그때 많이 힘들었어요. 제가 형편없는 선수로 내몰리는 기분도 들었고요. 하지만 그런 경험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들이 저한테 보약으로 작용할 것 같아요. 일본 진출 1년차 때 아픈 경험들을 많이 한 게 내년 시즌에는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해요.
아, 이승엽!
배: 일본에서 생활하며 이승엽 선수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다면서? 자주 통화하며 지냈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야?
이: 승엽이 형이랑은 1군보다 2군에서 자주 만났죠(웃음). 한여름 폭염 속에서 뛰며 서로 얼굴이 ‘걸뱅이’ 됐다고 푸념도 했고요. 같은 대구 출신이고 한국에 있을 때도 친하게 지낸 탓에 서로 전화통화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지난 시즌 시작되기 전에 미야자키 캠프에서 저랑 승엽이 형, 두산의 (임)재철이 형, (김)선우 형, 이렇게 넷이 모여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그때 승엽이 형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네가 겪어봐야 한다. 1년 겪어보면 일본 야구가 어떤 건지 알 것이다”라고요. 그래서 시즌 마치고 전화를 드려 “형님, 일본 야구가 진짜 힘듭니다” 했더니 승엽 형이 말씀하시길, “일본은 그런 데다. 수고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대표팀 탈락의 아쉬움
배: 지금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수들이 부산에서 한창 연습 중인데, 범호도 마지막까지 이름이 올라갈 뻔하다가 나중에 합류가 안 됐어. 서운했니? 기대를 했다면 서운했을 것 같은데.
이: 솔직히 개운했어요. 저 대신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후배들이 가게 된다면 더 좋은 일인 거잖아요. 하지만 조금 마음은 그랬죠.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뛰지 못하고 1년을 보냈기 때문에 대표팀에 들어가서 제대로 회복해 좋은 모습을 보이고 금메달까지 일궈낸다면 지난 시즌, 응어리졌던 마음이 어느 정도 풀릴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탈락한 것보다 더 힘든 게 롯데 박기혁이 부상으로 제외된 부분이에요.
배: 만약 범호가 대표팀에 뽑혔더라면 분명 오버플레이를 했을 거야. 워낙 한을 품고 있어서 대표팀 들어가면 물 만난 고기처럼 마구 뛰어다녔을 테니까. 더 멀리 본다면 내년 시즌을 위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 그나저나 결혼 준비는 잘돼가?
이: 선배님이 사회 봐주시겠다고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태균이가 12월 12일에 결혼하는데 저보단 더 정신없을 거예요. 아시안게임 갔다 오자마자 바로 결혼식을 올려야 하니까. 아, 참! 추신수도 그때는 한국에 있으니까 올 수 있겠죠? 전화 한 번 해봐야겠네요. 일본에서 생활해 보니까 메이저리그에 있는 선수가 더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그것도 고등학교 졸업해서 바로 해외 진출한 선수는 우리보다 몇 십 배는 더 힘들었을 거예요. 신수가 지금도 잘 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빛나는 선수가 돼서 한국을 널리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이범호는 아내 김윤미 씨가 없었다면 일본 생활이 암흑 그 자체였을 것 같다고 말한다. 묵묵히 남편을 기다리고 믿어주는 아내의 존재가 있었기에 야구의 희비쌍곡선을 함께 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한다. 인터뷰 자리에 함께 나온 김 씨는 일본에서 보낸 시간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지바 롯데 경기 때 태균 씨가 타석에 들어서면 범호 씨가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 모습을 비춰주거든요. 그때 주전으로 뛰지 못하고 벤치만 지키는 범호 씨 모습을 보면 마음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내조를 잘 못해서 범호 씨가 힘들어진 것 같아 더더욱 괴로웠죠. 그래도 두 사람 모두 낙천적인 성격 탓에 지난 한 시즌이 나쁘게만 기억되진 않을 것 같아요. 이번 시즌을 마쳤을 때 우리 두 사람이 일본 생활 첫 해를 이렇게 정의했어요. ‘무척 시린 한 해였지만 그래도 즐거웠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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