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경쟁 속에 살다가 지칠 때면, 그와는 반대의 장소를 찾게 된다. 디지털의 속박에서 자유롭고, 애써 시간을 미분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공간. 가령 10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무섬마을 같은 곳 말이다.
경북 영주시 문수면에 자리한 무섬마을은 낙동강이 품은 보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낙동강에 합류하는 지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만나서 돌아나가는 곳에 무섬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고 해서 ‘무섬’이다. 한자로 바꿔 ‘수도리’(水島里)라고도 불린다. 이 마을은 안동의 하회마을, 예천의 회룡포와 함께 대표적인 물돌이동이다. 마치 풀잎에 이슬이 매달려 있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아주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강물과 맞닿아 있다. 강물이 휘감아 도는 곳에는 백사장이 넓게 분포되어 있는 것이 무섬마을의 특징이다.
무섬마을은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의 집성촌이다. 1666년 반남 박씨가 처음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 후 선성 김씨가 들어와 이미 뿌리를 내린 박씨와 결혼해 한 집안을 이루었다. 마을은 40여 채의 가옥으로 이루어졌다. 주민은 44명. 가옥과 주민의 수가 거의 같다. 가옥은 단 몇 채를 제외하고는 전통을 고이 간직한 오래된 한옥이다. 그중 16동은 조선 후기 지은 것으로 그 역사가 100년도 훨씬 더 되었다. 전통마을로 유명한 하회에 비해 가옥들의 위세는 작은 편이지만, 만듬새와 보존상태가 좋은 9채는 경북 문화재자료와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해우당고택, 만죽재고택, 김뢰진가옥, 안동장씨종택 등이 그것이다.
영주에는 소수서원 옆에 선비촌이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를 여행해본 사람들은 무섬마을을 친근하게 여길지 모른다. 왜냐하면 선비촌의 유명 양반가옥들이 무섬마을의 것들을 그대로 모방해 지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행색뿐이다. 무섬의 가옥에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면 선비촌의 것들에서는 그러한 점을 찾을 수 없다.
마을은 1980년대 초 건설된 ‘수도교’라는 콘크리트 다리로 외부와 연결된다. 이 다리가 생기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섬마을은 외나무다리 하나로 육지와 소통했다. 이 다리에 의지해 사람들은 ‘섬’ 밖을 드나들었다.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어 구불구불 이어 만든 외나무다리는 마치 평균대 같은 것이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빠지기가 십상이었다.
이 외나무다리는 수도교가 건설되면서 철거되었다가 지난 2005년 다시 복원되었다. 마을에서는 이 다리의 복원을 기념해서 해마다 10월이면 ‘무섬 외나무다리축제’를 연다. 올해는 지난 10월 9~10일, 이틀간 진행되었다.
마을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르다. ‘편리’와 ‘편의’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 우리 주변 공간이 설계되고 확장되어 나아가는 데 반해, 무섬마을은 그러한 것들을 초연히 거부한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견딜 만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한 모습이다. 그 흔한 구멍가게 하나 없으니 더 말해 무엇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섬마을이 민속마을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길잡이: 중앙고속국도 영주IC 진출 후 우회전→계속 직진→문수농공단지 지나 서천 끼고 우회전→월호교에서 우회전→무섬마을 ▲문의 : 영주시청 문화관광포털(http://tour.yeongju.go.kr) 054-639-6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