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상촌모임 회원인 류우익 주중대사,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 라응찬 신한지주 전 회장. |
권력 실세 및 고위 공직자들의 고향모임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는 까닭은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 배후 조직으로 거론돼 왔기 때문이다.
신한지주 라 전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 무마 의혹 역시 숨은 비호세력 논란으로 비화되고 있다. 비호세력에 대한 논란은 지난 10월 22일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시작됐다. 이 자리에서 금감원이 라 전 회장의 차명계좌를 알고도 묵인해줬다는 정황이 밝혀지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금감원은 지난 8월 하순부터 라 전 회장의 차명계좌가 개설된 신한은행 지점 등을 대상으로 현장 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금감원은 라 전 회장의 차명계좌 개설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의 ‘봐주기 조사’ 의혹은 이후 비호세력에 대한 관심으로 증폭됐다. 라 전 회장이 수천 개에 달하는 차명계좌를 개설했음에도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를 피해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분명 ‘보이지 않은 손’이 작용했을 것이란 의혹의 시선이 쏠렸기 때문이다.
우제창 민주당 의원은 차명계좌 건이 밝혀졌을 당시 상촌모에 가입된 실세들이 라 전 회장에 대한 금감원 조사에 압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우 의원은 “라 전 회장이 지난 8월 24일 상촌모 회원이자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류우익 주중대사를 만났는데 금융실명제 위반이 문제되던 시점과 일치한다”며 “류 대사뿐만 아니라 상촌모 모임에는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 등이 포함돼 있는데 이들이 금감원 조사를 무마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우 의원실에 따르면 라 전 회장과 류 대사의 만남은 중국 현지의 한 제보자에 의해 밝혀진 것으로, 두 사람은 베이징에서 비밀리에 만나 만찬을 같이 하며 면담을 나눴다고 한다.
두 사람이 만난 사실이 알려지자 상촌모는 물론 회원들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최측근 인사가 상촌모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도는가 하면 정관재계 거물급이 다수 포함돼 있는 구체적인 명단도 나돌고 있다.
한 야당 의원실에서 <일요신문>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10여 명의 정관재계 핵심인사들이 상촌모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건에 따르면 고위공직자로는 이미 실명이 거론된 류우익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해 청와대 대통령실 O 특별보좌관, 사정기관 최고위층인 L 씨 등이 포진해 있다. 공기업 간부 중에는 S 공사 K 사장과 인천국제공항 고위직인 L 씨가, 대기업 인사로는 유명 제약회사인 D 제약 K 회장, H 건설 K 대표, 국내 굴지의 유통업체인 S 업체 K 회장 등이 명단에 있었다. 금융권에선 라 전 회장이 유일한 ‘정회원’이었고, ‘명예회원’으로는 S 그룹 K 회장과 S 중공업 L 회장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이외에도 K 전 기무사령관과 뉴라이트 전국연합 최고위층 인사인 K 씨도 상촌모 회원이었다.
상촌모 명단에 거론된 인사들은 대체로 상호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K 전 사령관은 기무사령관에 임명될 당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발탁 배경에는 류우익 전 실장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K 전 사령관은 재임시절 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면서 군 인사문제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직급에 맞지 않는 ‘월권행위’ 논란이 일기도 했다.
명단을 제공한 의원실의 한 비서관은 “상촌모 모임을 가진 날 참여했던 인사가 누구인지 파악해 여러 번 참석한 인사들을 기준으로 실제 가입자들을 가려냈다”며 “‘명예회원’으로 분류된 인사들은 상촌모 모임에 아직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것으로 드러난 인물들이다”고 말했다.
상촌모 모임의 횟수 및 구체적인 활동 사항 등은 아직 드러난 것이 거의 없다. 11월 3일 기자와 만난 우제창 의원실의 김한돌 비서관도 “사조직 모임이라는 것이 워낙 비밀리에 진행되다 보니 아직까지는 사석에서 만남이나 관련인사들의 동태를 파악하면서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찾고 있는 정도”라며 “아직 밝힐 수준은 못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
의혹만 불거지면 하나씩 ‘불쑥’
고위 공직자들이 연루된 각종 비리 사건이나 대형 게이트 파문이 불거졌을때 고향모임 실세들이 든든한 우군이 돼 준 정황이 드러난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만큼 정관재계에는 향우회를 명분으로 한 비밀 사조직 모임이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 정부 들어 실세 사조직으로 부상한 대표적인 모임은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과 함께 등장한 영포회다. 영포회는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건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바 있다. 사찰을 주도한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은 물론이고 그가 보고하는 지휘 계통도 총리실 보고 체계가 아닌 사실상 영포회 인맥들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고향라인’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세간에 알려진 영포회 회원으로는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이병욱 전 환경부 차관,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 이상휘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심학봉 지식경제비서관, 박영준 지식경제부 제2차관 등이 있다.
태광그룹 사태는 ‘밀양라인’의 공직자들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밀양모임은 태광그룹 계열사인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 티브로드가 2008년 12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로비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밀양라인’이 개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수면위로 부상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10월 20일 불교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태광그룹 사건을 제보한 사람이 ‘방송법 시행령 개정은 태광그룹을 위한 맞춤형 개정’이었다고 하는데, 당시 방송법 시행령 개정에 관계된 사람들이 전부 ‘밀양라인’이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방송법 시행령 개정 후 3개월 뒤 미심쩍은 사건이 터졌다. 청와대 방송담당 행정관 2명과 방통위 신 아무개 뉴미디어 과장이 티브로드로부터 술과 ‘2차 성접대’를 받았다가 적발된 것이다. 이때 물의를 일으킨 방통위 신 과장과 청와대 방송담당 행정관이 밀양고 선·후배 사이로 알려져 또다시 ‘고향 라인’ 의혹을 부추긴 바 있다.
밀양라인은 방통위와 청와대 내 밀양 출신 관계자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명단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