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이번에도 감독님은 마치 절 오랫동안 기다리고 계신 것처럼, ‘신수야 잘 왔데이’하시며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감독님 앞에 서니까 비로소 전 메이저리거 추신수가 아닌 감독님께 가장 많이 혼나고 독하게 훈련받았던 부산고 야구부 선수였어요. 아니 여전히 배울 게 많고 실수도 잦고 감독님의 지도가 필요한 아마추어였습니다. 힘들 때마다 감독님 생각이 절실하고 감독님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한데 감독님은 사진 속에서 밖으로 나오실 생각을 안 하시네요.
감독님께 부탁드렸어요. 도와달라고요. 부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목에 걸고 다시 감독님을 찾아뵐 수 있도록 저한테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시라고요. 감독님이 살아계셨을 때 제가 한국에 들어오면 항상 하셨던 말씀이 병역 문제였습니다. ‘신수야, 니 군대 어케 할래? 미국서 야구하려면 병역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정말 큰일이다.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어 마음이 아프다’시며 당신의 건강보다 제 미래를 더 많이 신경쓰셨습니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제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를 잘 살려서 감독님의 근심을 덜어드리고 편안히 주무실 수 있게 해드리는 겁니다.
솔직히 대표팀 훈련에 합류하기 전에는 이런저런 고민과 걱정이 컸습니다. 무엇보다 몸 상태가 짧은 시간 안에 올라올 수 있는지 의문스러웠거든요. 예상보다 많은 훈련량도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도 제 몸과 마음을 잔뜩 움츠러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만족스런 상태예요. 대만과의 첫 경기가 일주일 정도 남아 있는데 그동안 컨디션을 조금씩 더 끌어 올려 경기 당일에는 최고의 몸 상태로 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산 사직구장에서 훈련하는 동안 아버지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제가 야구하는 모습을 직접 경기장에서 지켜보실 수 있었어요. 아버지도 그렇고 저 또한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박)정태 삼촌을 야구장에서 유니폼 입고 만나니까 삼촌 키가 아주 작아보이더라고요. 옛날에는 삼촌이 무척 큰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새 삼촌이 작아진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제가 컸다는 사실은 생각지 못하고 말이죠. 아버지, 저, 그리고 삼촌이 사직구장에 같이 서있는 모습은 다시 떠올려 봐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입니다.
며칠 전 애리조나에 있는 아내가 미국에서 제가 쓰던 방망이를 급히 한국으로 보내왔습니다. 후배들이 저한테 방망이를 달라고 해서 한두 자루씩 내주다보니 정작 남은 방망이가 두 자루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내한테 SOS를 쳤죠. 그 방망이는 마루치란 야구 용품회사에서 저를 위해 특수 제작한 방망이입니다. 방망이에는 모델명이 있는데요, 그 배트의 모델명이 뭔 줄 아세요? 바로 ‘SWMG’. 무슨 이니셜인 것 같죠?^^ S는 신수, W는 아내 원미, M은 큰아들 무빈이, G는 둘째 건우를 의미합니다. 만약 셋째가 태어난다면 또 다른 이니셜이 붙을 겁니다. 넷째도? 하하^^
다음 일기를 쓸 때쯤이면 대만전 결과가 나온 이후가 되겠네요. 솔직히 아직 아시안게임에 대한 실감이 나진 않는데요, 아마도 저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광저우에 도착하면 제대로 긴장하지 않을까요? 야구 팬들 외에도 축구 농구 배구 등등 모든 팬 여러분~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선수들 모두 땀 흘린 것 이상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격한 응원 좀 보내주세요. 대한민국 만세라고, 모두 파이팅이라고, 가슴으로 외쳐주세요. 저 또한 그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태극마크를 달고 뛸 것입니다.
부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