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조국이 팀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며 토종 공격수의 자존심을 살렸다. 결혼 후 상투 틀더니 달라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인터뷰 준비를 위해 미니홈피를 방문해봤다. 대문 글이 ‘축구에 미쳐야 내 꿈에 미칠 수 있다’였는데 직접 생각한 내용인가 아니면 어디서 들은 글인가.
▲책에서 본 글귀다. 축구에 미치는 게 내가 가장 해야 하는 일이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이다. 그리고 더 미쳐야 하는 일이라 홈피에 올려놓은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 달라졌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마디로 철이 든 거다. 결혼을 하니까 비로소 어른이 된 기분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반성도 많이 한다. 왜 이전에는 이렇게 못 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결혼 전에는 조금 안일한 태도로 경기에 임한 게 아닐까 싶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육체적인 피로감은 쌓이지만 정신적인 여유가 찾아왔고 그 부분이 경기할 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 리터칭=장영석 기자 |
▲하하. 정말 영광이다. 아주 맘에 든다. 원래 별명이었던 ‘패트리어트’보다 훨씬 정겹게 들리지 않나. 그런데 분유값이 장난 아니게 비싸더라^^. ‘분유캄프’란 별명을 들을 때마다 책임감을 느낀다. 좋은 선수로 평가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아들한테 자랑스런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다 보니 플레이도 더 좋아지는 것 같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한 게 축구 말고 아내와 결혼한 것이고 아이의 존재는 하늘에서 내린 축복이자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8월 중순 전까지만 해도 데얀이나 이승렬 등 용병, 후배들한테 밀리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축구하는 동안 내가 팀에서 밀리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청소년 대표를 거치면서 내 자리는 항상 붙박이라고 자신했다. 프로 입문 후 처음에는 용병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더 잘하는데, 용병을 왜 뽑을까, 용병들 때문에 한국 공격수들의 설 자리가 줄어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얼마나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용병들의 존재가 우리를 자극하고 성숙시키고 발전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프로에 들어와서 경쟁이란 냉혹한 현실을 맛본 셈이다.
―김성은 씨와의 결혼한다고 발표했을 때 축하와 걱정이 뒤섞였을 것 같다. 연예인 출신이라는 부분 때문인데 실제로는 어떠했나.
▲나 또한 소개팅을 받을 때 반신반의했었다. 연예인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고 서로 공인이라는 점에서 부담이 많았다. 그런데 천성적으로 밝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고 내가 광대뼈가 함몰 당하는 부상을 당했을 때 많은 스케줄로 인해 바쁜 상황에서도 하루도 안 빠지고 병원에 들러 간호를 했다. 그때가 사귄 지 불과 4개월밖에 안 됐는데도 굉장히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바람에 이런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할 수 있겠다는 결심이 섰다. 밖에선 아내 자랑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정말 결혼은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양가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을 것 같다. 지금에서야 밝힐 수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처가에서는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한다고 해서 굉장히 당황해 하셨다. 좀 더 사귀어 보고 결혼해도 늦지 않겠느냐는 반응이셨지만 우리 둘이 밀어붙였다. 부모님도 연예인 며느리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계셨는데 성은이를 직접 만나보신 이후론 마음이 확 달라지셨다. 몇 차례 만남을 이어가신 후에는 나보다 성은이를 더 좋아하시더라(웃음). 만약 우리가 그때(2009년 12월 11일) 결혼하지 못하고 계속 연애를 이어갔더라면 중간에 위기를 맞았을 지도 모른다. 서로의 생활이 다른 데서 오는 의견 차이가 있었을 텐데 결혼 후에는 신기하게도 잘 이해하고 참아주는 편이다.
―조광래 감독이 대표팀 감독이 되고 나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평소 조 감독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었나.
▲이전에는 자주 감독님께 전화도 드리고 식사도 같이 하곤 했지만 대표팀을 맡으신 이후론 내가 먼저 전화드리기가 어려워졌다. 정말 아무 사심없이 이전처럼 감독님을 뵙고 싶거나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를 드리는 것도 행여 감독님께 부담을 드리거나 주위에서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상하게 난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다. 대표팀에 갈 무렵 부상을 당하거나 이전까진 잘하다가도 대표팀 선발 앞두고 한두 경기에서 미끄러지는 등 악연들만 이어갔다. 그래서 솔직히 지금은 대표팀에 대한 마음을 비웠다. 진정 대표팀에 뽑힐 만한 실력이 됐을 때, 기자들이 나서서 정조국을 왜 안 뽑느냐고 물어볼 정도가 됐을 때 외엔 대표팀 승선에 욕심이나 미련을 둬선 안 된다고 정리했다.
―같은 팀에서 뛰었던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등이 모두 유럽에서 활약 중이다. 당연히 해외진출에 대해 큰 꿈을 품고 있을 것 같다.
▲청용이가 FC서울에 있을 때 3년간 룸메이트로 지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청용이라면 외국 나가서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과 태도와 노력이 엄청났다. 누구보다 축구를 즐길 줄 알았고, 항상 밝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내가 배울 점이 참 많은 후배였다. 해외 진출을 한 선수들을 보면서 나 또한 여러 가지 생각에 사로잡힌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먼저 K리그에서 인정받는 것이다. 제대로 된 평가도 받지 못하면서 마치 입버릇처럼 해외 진출을 언급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빙가다 감독한테는 있고 귀네슈 감독한테는 없는 게 뭔가?
▲일단 귀네슈 감독은 엄청난 카리스마 를 갖고 계셨다. 워낙 세계적인 명장으로 꼽히는 분이다보니 선수들이 그 분의 카리스마에 눌린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귀네슈 감독은 한국 축구를 정말 사랑하셨다. 그래서 비난의 중심에 섰을 때도 한국 축구에 대해, 심판 판정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으셨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선수들과의 소통 부분이었다. 소통 문제가 조금은 어려웠는데 그걸 해결해주고 계시는 분이 빙가다 감독님이다. 프로 들어와서 여러 분의 감독님을 만났지만 빙가다 감독님처럼 선수들과 제대로 소통하시는 분은 처음이다. 주위에서 너무 편한 나머지 ‘옆집 아저씨’같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선수들 얘기를 존중해 주시고 세세한 부분까지 잘 체크하신다. FC서울이 항상 뒷심 부족으로 중요한 경기에서 미끄러지는 악순환을 반복하다가 올 시즌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그게 감독님의 힘이신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어느 팀과 맞붙고 싶나. ‘방송용 멘트’ 빼고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다.
▲박경훈 감독님이 이끄시는 제주유나이티드가 올라왔으면 좋겠다. 제주도 박 감독님이 맡은 이후 대박 변신했다.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김)은중 형과의 경쟁도 재미있을 것 같고, 제주란 팀 자체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선수 개개인의 실력을 놓고 본다면 FC서울이 월등하다(웃음).
정조국은 선수 생활하는 동안 가슴에 ‘별’을 달고 싶다고 말했다. 그 ‘별’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의미한다. 프로 데뷔 후 8년이 지났지만 단 한 번도 그 별을 달지 못했다. 10년, 20년이 지나도 못 잡을 수 있는 게 그 별이다. 그래서 이런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 꼭 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은퇴 후 아들과 FC서울 경기장을 찾았을 때 ‘이 팀이 우승했을 때 아빠가 여기서 뛰었다’라고 말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내 한 가지 생각으로 집중됐다. ‘분유캄프’ 정조국이 제대로 상투를 틀었구나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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