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뉴스 |
그동안 ‘애국가’ ‘태극기’란 단어를 쉽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습니다. 절 가식적으로 볼까봐, 일부러 애국자인 척 한다고 수군거릴까봐 누구나 편하게 꺼낼 수 있는 단어를 애써 마음속에 담아뒀던 거죠. 경기 후 기자회견 때도 잠깐 언급했지만 전 미국에서 경기가 열리기 전 미국 국가가 연주될 때마다 항상 마음속으로는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제 병역 문제가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습니다. 사실 추신수란 이름 앞에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가 병역 문제였다는 건 다 아실 겁니다. 사람들은 집요하게도 ‘만약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할 경우 어떻게 하실 겁니까?’라고 묻곤 했습니다. 기자들도, 팬들도, 또 인터넷 상에서도요. 전 정말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만약에’라는 가정법 자체를 인정하기 싫었어요.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우승을 향해 달려가고만 싶었고 그 결과에 대해선 겸허히 받아들이려 했어요.
이젠 저한테 병역과 관련된 질문을 던지는 기자는 없겠죠? 미국 시민권 운운할 그런 일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겠죠? 정말 기쁜 일은 지난 10년간 한시도 제 마음 속을 떠나지 않았던 ‘숙제’를 홀가분하게 해결하고 다음 시즌부터는 온전히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 야구를 통해 이런 혜택을 받게 됐는데 그렇지 못한 분들, 즉 지금 군복무 중이거나 군복무 예정인 분들한테는 정중히 머리 숙여 이해와 배려를 구하고자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분들을 대신해 이 엄청난 선물을 등에 업고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더 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 달여간의 대표팀 생활동안 참 많은 걸 배우고 느꼈습니다. 특히 진정으로 존경하는 박경완 선배님, 아시안게임을 위해 아킬레스건 수술까지 미루고 후배들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을 보여주실 때마다 전 속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선배님의 모습을 통해 제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어떤 자세로 야구를 대해야 하는지 많은 걸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발목 통증에도 끝까지 참고 경기를 뛴 (이)대호, 일본시리즈까지 마치고 곧장 합류하는 바람에 몸살까지 걸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결승전까지 버틴 (김)태균이, 그리고 저보다 더 야구를 잘하는 것 같은 (강)정호 등등 이번 대표팀 선수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 이번 대표팀 생활을 통해 이 분의 대단함을 새삼 절감했습니다. 바로 이승엽 선배님입니다. 그분이 그동안 대표팀에서 어떤 역할을 하셨고, 후배들을 위해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하셨는지, 또 후배들에게 얼마나 많은 ‘선물’을 주셨는지를 ‘찐하게’ 실감할 수 있었거든요.
호사다마라고 할까요? 내일(11월 21일) 귀국을 앞두고 처음으로 선수촌 밖으로 식사를 하기 위해 외출을 했는데 제가 탄 택시가 앞 차를 들이박는 바람에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제가 들고 있던 휴대폰은 밖으로 튀어 나갔고 전 조수석에 앉아 있다가 앞 유리창에 머리를 박는 등 경미한 부상을 입었어요. 뒷좌석의 지인들이 약간의 타박상을 입긴 했는데 별 이상 없다면서 병원 가길 꺼려하네요. 이 정도의 사고라서 정말 천만 다행입니다.
태극마크를 달고 뛴 지난 한 달, 정말,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많은 격려와 관심 보내주신 것 영원히 가슴에 새기고 살겠습니다.
광저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