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평도 포격 직전 김정일ㆍ정은(오른쪽) 부자가 용연군 해안포 지휘부대를 방문, 사전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김정은에게 아버지 김정일은 가장 든든한 후견인이다. 68세의 나이에 비해 훨씬 노쇠해 보이는 존재지만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보호자인 셈이다. 연평도 포격 직전 김정일은 아들을 데리고 황해남도 용연군의 해안포 지휘부대를 방문했다. 이런 움직임은 한·미 정보 당국의 대북감시망에 포착됐다. 물론 북한 관영매체들은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이곳에서 80㎞ 떨어진 용연양어장과 오리공장을 방문한 소식만 전했다.
하지만 북한군의 작전 책임자인 김명국이 좀체 수행하지 않는 김정일의 경제현장 방문에 함께했다는 점에서 김 부자의 동선을 짐작할 수 있다. 정보당국은 김정일과 김정은이 노동당과 군부의 핵심 관계자들과 함께 현지를 방문해 해안포 공격 준비상황을 직접 점검하고 격려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연평도 도발이 김정일을 비롯한 북한 최고지도부의 치밀한 사전계획 아래 이행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정일은 그동안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에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관심을 보여 왔다.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의 서해교전은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대청해전에서 패한 직후에는 도발을 주도한 남포의 서해함대사령부인 해군 587연합부대 지휘부를 시찰하기도 했다. 사령부의 한 군관은 지난 4월 조선중앙TV에 출연해 “최고사령관 동지(김정일)가 함선에 올라 바다의 결사대·영웅들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수상함선의 열세에 거듭 패전의 고배를 마신 김정일은 절치부심하며 보복의 칼날을 갈아왔다. 그는 새로운 도발로 잠수함정을 선택했고 그 결과는 천안함 폭침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게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후계자로 공개석상에 나타나기 이전부터 사실상 군부의 대남공작을 지휘하는 정찰총국 등을 장악해왔다는 얘기다.
천안함 사태로 자신감을 얻은 김정일은 후계자 김정은에게 보다 대담한 대남 도발을 주문했을 수 있다. 북한은 향후 이번 사태를 김정은이 주도했다는 식으로 대내외에 선전하면서 후계자의 ‘군사영도력’과 대담성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활용하려 할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북한이 김정은을 포술 전문가로 선전하고 있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평도 포격 도발 초기부터 김정은이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북한은 김정은이 김일성군사종합대학 포병학과를 다녔다고 밝히고 있다. 졸업논문으로 위성항법장치(GPS)를 활용해 포사격 정확도를 높이는 방법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공개된 김정은 관련 북한 내부 강연 문건은 “김정은 동지는 포병부문에 매우 정통하다”며 “정확한 지점에 화력타격을 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선전 자료라 과장된 측면이 있겠지만 김정은이 포병 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사정거리 20㎞ 안팎의 해안포 등을 이용한 도서지역 공격 이후 그의 행보가 무엇일지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정은의 이런 행보에 뒷심을 더해주는 건 군부 강경파로 분류되는 인물들의 존재다. 이들의 군사 모험주의적 행동 가능성에 관계당국은 초점을 모은다. 김정은과 함께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나란히 오른 리영호 총참모장과 서해안 지역을 관장하는 김격식 4군단장은 그 핵심인물이다.
지난해 2월 총참모장 임명 직후 리영호가 주도한 포사격 훈련을 김정일이 직접 참관하는 등 리영호 세력의 군부에는 부쩍 힘이 실린 상태다. 총참모장이던 김격식은 지난해 초 4군단장으로 전보됐으나 김정일이 “잘하고 돌아오라”라며 격려한 사실이 파악돼 서해 NLL 도발을 위한 포석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김정일이 평소 “김격식과 나는 ‘격식’이 없다”고 할 정도로 신임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연평도 포격 도발 며칠 전 북한은 미국의 핵 전문가를 초청해 고농축우라늄(HEU)을 통한 핵 개발 프로그램 현장을 보여줬다. 김정일이 미국에는 핵을, 한국에는 군사도발 카드를 꺼내들도록 김정은에게 주문한 형국이다. 이를 두고 김정일이 자신의 후계자가 대미·대남전략의 축을 큰 틀에서 뒤흔들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들 김정은이 핵 보유국 지위를 가진 지도자로 자리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북한은 향후 미국과 중국 등 관련국의 동향을 면밀히 살피며 대응전략을 짜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한국 공군의 정밀타격이나 미국의 개입을 부를 정도의 확전은 피하면서 상황을 철저하게 자신들이 통제 가능한 쪽으로 몰고 갈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 도발 강도를 높여 더욱 공세적 태도로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미 정보당국은 연평도 공격 이후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의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가 서해상의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하고 우리 군 당국이 김정일·김정은을 정면 비판하는 대북전단을 대량살포하고 나선 데 대해 북한은 강도 높은 비난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관영매체들은 “도발자들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본때를 보여줄 것”이라고 위협한다.
물론 김정은으로서도 운신의 폭이 넓은 것 아니다. 고민스런 대목이 없지 않다. 남한 내 대북 응징 여론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추가 도발은 체제위기와 맞닿게 된다. 자칫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천안함 도발과 3대 세습 등으로 남한 내에서 대북 여론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중국이란 후견인이 있지만 어디까지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편에 서 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주민들에게 후계자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켜야 하는 등 대내적으로 챙겨야 할 대목도 적지 않다. 지난해 11월 화폐개혁 실패 이후 경제는 말이 아닌 상황이 됐다. 후계자 김정은의 다음 선택이 무엇일지 주목받는 이유다.
김성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