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여객터미널 부지 전경과 신세계 주도로 내년 7월 착공될 현대식 여객터미널 조감도(원 안). |
하지만 8개월여 후인 지난 11월 23일 김해시가 갑자기 내년 7월에 김해터미널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특히 터미널 사업은 부지 매입 비용만 1000억 원대에 달하고, 대형유통단지가 들어설 경우 막대한 개발 이익이 예상되고 있다는 점에서 특혜 논란 및 커넥션 의혹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실세로 <일요신문>은 취재 과정에서 현 여권 핵심 실세인 A 씨가 부지 매매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고, 개발 이익에 따른 일정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박 전 회장과 여권 핵심 실세인 A 씨, 구학서 신세계 회장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삼각 커넥션’ 의혹이 특혜 논란을 넘어 자칫 권력형 게이트로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김해 버스터미널 부지 및 개발 사업을 둘러싼 특혜 논란과 각종 의혹이 불거진 것은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박연차 전 회장이 이 부지를 매입한 사실이 알려진 2008년 말부터 특혜 시비가 끊이질 않았고, 개발사업을 둘러싼 의혹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박 전 회장은 지인인 안 아무개 씨와 함께 2002년 10월 14일 한국토지공사로부터 경남 김해시 외동 1264번지에 소재한 시외버스터미널 부지(7만 4331㎡)를 282억 원에 매입했다. 평당 125만 원꼴로 주변 시세보다 1/3 정도 싼 가격이었다. 문제는 이 부지가 제1종지구단위계획구역(자동차정류장)으로 지정돼 있어 버스정류장과 그외 편의시설만 들어설 수 있는 곳으로 제한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박 전 회장이 이 부지를 싼 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었던 것도 ‘개발제한구역’이라는 꼬리표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 전 회장이 터미널 부지를 매입한 이후 김해시가 ‘터미널 이전’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고, 지역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터미널 이전에 따른 개발이익으로 터미널 부지는 1000억 원을 상회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터미널 이전은 추진되지 않았지만 당시 김해시장이었던 송은복 씨는 재임 시절(1995~2006년) 박 전 회장이 추진한 각종 사업에 대해 편의를 제공해 주는 대가로 5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2009년 3월에 구속되기도 했다.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수사가 사실상 종결되면서 터미널 부지를 둘러싼 부동산 투기 의혹 및 특혜 논란도 서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올 1월 22일자로 박 전 회장이 신세계에 터미널 부지를 매각해 600억대의 시세 차익을 남긴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은 재점화됐다. <일요신문>은 지난 2월 ‘박연차 문제의 터미널 부지 신세계에 팔렸다’(927호) 제하의 기사를 통해 박 전 회장의 부동산 투기 및 신세계의 이면계약 의혹 등을 집중 보도한 바 있다. 특히 현 도시계획법상 대형유통점 등 복합상가 건축이 불가능한 터미널 부지를 국내 굴지의 유통업체인 신세계가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해 매입한 배경을 둘러싼 궁금증과 의혹도 증폭됐다. 여러 정황상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1000억 원대의 부동산 거래 이면에는 분명 매매 당사자와 개발 인허가 관청 간에 용도변경을 통한 개발사업 등 검은 뒷거래가 있었을 것이란 의혹의 시선이 끊이질 않았다.
특혜 시비 및 개발 이익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증폭되자 김해시는 즉각 진화에 나섰다. 지난 3월 3일 최재목 당시 김해시 도시관리국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현재 이 부지는 도시계획시설상 내외지구 제1종지구 단위계획에서 자동차 정류장만 건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대규모 점포의 건축 및 개설등록은 불가능하다”며 “2014년 지구단위계획 변경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박 전 회장 측도 터미널 부지 매각을 둘러싼 투기 논란에 대해 적극 해명에 나섰다. 박 전 회장의 부동산 관리를 맡고 있는 문기봉 태광실업 고문은 3월 9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어려운 경제환경에서 구조조정 1순위인 불용 자산을 매각한 것”이라며 투기 논란을 일축했다. 문 고문은 이어 “전체 터의 절반만 박 회장 소유이며 실제 매도금액은 449억 7000만 원으로 세금과 그동안의 이자 등을 감안하면 순수익은 65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며 시세차익 의혹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하지만 공동명의자인 안 씨가 부지 매입 당시 자금 절반을 실제로 투자했는지, 또한 매도 금액 중 절반이 그의 몫으로 실제로 돌아갔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터미널 부지 전체 매도 금액은 899억 4000만 원(안 씨 지분 포함)으로 추정되고 있고, 그에 따른 시세 차익은 617억여 원에 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역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안 씨는 명의만 빌려줬을 뿐 박 전 회장이 매입 자금을 모두 충당했고, 시세 차익 또한 전적으로 박 전 회장이 챙겼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신세계 측도 이 부지가 현재 도시계획시설상 자동차 정류장만 건축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는 만큼 우선 현대식 터미널 조성사업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11월 25일 기자와 통화한 신세계 측의 한 관계자는 “김해시민의 숙원 사업인 터미널 현대화를 우선적으로 시행한다는 데 김해시와 협의를 하고 있다”며 “이제 시작인 만큼 좀더 지켜봐 주길 바란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처럼 김해시가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사업 추진으로 급선회하자 지역 상가를 중심으로 각종 소문이 무성하게 나돌고 있다.
김해시와 신세계 측은 대형 유통시설을 짓는 게 아니라 김해시민의 숙원사업인 현대식 터미널을 짓겠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개발 이익을 둘러싼 검은 커넥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란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 상가와 여론을 의식해 단순한 현대식 터미널 사업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향후 터미널과 연계된 이마트 등 대형 유통시설을 건립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터미널 상가 주변에서는 여야를 망라하고 부산·경남 정치권에 마당발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박 전 회장과 이윤추구가 목적인 대기업이 900억 원대의 부동산 거래를 한 이면에는 분명 막대한 개발이익 등이 담보됐을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지역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터미널 부지 거래 및 개발 사업 과정에 여권 핵심실세인 A 씨가 깊숙이 개입된 정황이 포착되고 있어 파문 확산을 예고하고 있다. 11월 24일 부산에서 기자와 만난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박 전 회장과 A 씨, 신세계 구학서 회장은 매우 절친한 관계로 알고 있다”며 “박 전 회장이 터미널 부지를 신세계에 매각할 당시 A 씨가 중간 역할을 했고, 막대한 개발이익에 따른 일정 지분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귀뜀해줬다.
이 관계자는 또 “올해 들어 중앙의 모 사정기관 직원들이 몇 차례 김해시청을 방문해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포착됐다”며 “여권 실세인 A 씨가 연루된 정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김해터미널 개발을 둘러싼 각종 의혹건이 권력형 게이트로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A 씨는 현 정권 실세로 군림하면서 ‘박연차 게이트’를 비롯한 각종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단골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다.
경북 상주 출신인 구 회장 또한 현 정권 실세 모임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상촌모’(상주 촌놈들의 모임) 소속으로 A 씨를 비롯한 여권 실세들과 절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박연차-A 씨-구학서로 이어지는 이른바 ‘삼각 커넥션’ 의혹을 부추기고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신세계 측의 관계자는 “구 회장이 상주 출신인 것은 사실이지만 박 전 회장이나 A 씨 등 여권 실세와 친분이 두터운지 여부는 알 수 없고, 회장님의 개인적인 인간관계와 이번 사업은 전혀 무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부산·경남지역에서 오랫동안 자산관리·투자자문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개발·건축 사업에 정통한 K 씨는 24일 저녁 기자와 만나 “구학서 회장의 일부 지인들은 터미널 부지를 매입할 당시부터 이미 A 씨 등 여권실세들과 개발사업과 관련한 물밑 교감이 있었음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다”며 “관련 의혹들을 지역 사정기관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만큼 향후 사업추진 과정에서 구체적인 비리 정황이 드러날 경우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해시내 중소상인들과 생계형 영세상인들은 김해터미널에 대형 할인점이 들어설 경우 가뜩이나 포화상태인 상권이 대기업 독식구조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며 강하게 반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김해터미널 인근에서 10년 넘게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영세·중소상인들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대형할인점을 김해시가 앞장서 도시계획까지 변경해가며 허용한다면 누가 봐도 특정업체 밀어주기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며 “김해시와 신세계가 편법을 동원해 개발사업을 추진할 경우 시민들과 상인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연 김해터미널 개발사업을 둘러싼 특혜 논란의 실체는 밝혀질 수 있을까. 박 전 회장과 여권 실세, 대기업 회장 간의 검은 커넥션 의혹으로 확전될 조짐이 일고 있는 김해터미널 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부산·경남지역을 달구는 또 다른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