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을 만난 건 우리 아이들에게 축복이죠.”
말할 때마다 하얀 입김이 나오는 싸늘한 날씨. 춘천 공지천 인조잔디축구장 벤치엔 오리털 점퍼를 껴입은 4~5명의 학부모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손 감독이 이끄는 춘천FC 선수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곳에 모여 축구공과 하나가 된다. 손 감독도 선수들과 똑같이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 위를 누빈다. 훈련을 지켜보는 학부모들도 “축구장 밖에선 호랑이 선생님이지만 그라운드 안에선 선수가 된다. ‘상대 선수가 선을 넘어갔으니 우리 팀이 이겼다’며 아이들과 똑같이 우기고, 이기기 위해 반칙도 서슴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 지난 23일 춘천시 공지천인조잔디축구장에서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씨와 춘천FC 소속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간단히 몸을 풀던 춘천FC 선수들이 첫 번째 ‘공 뺏기’ 훈련에 들어갔다. 먼저 네 개의 표식을 세워 직사각형의 작은 코트를 만든다. 코트 안엔 2명의 선수가 들어가고 나머지 선수들은 직사각형 대열에 맞춰 선다. 선수들이 빠른 속도로 공을 돌리며 패스하면 코트 안에 있는 2명의 선수가 공을 뺏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는 선수들로 밀집된 공간 안에서 짧은 패스 연결로 상대 선수를 따돌리기 위해 손 감독이 고안해낸 훈련법이다. ‘공 뺏기’ 훈련이 끝나면 ‘롱 패스’ 훈련이 이어진다. 2명씩 짝을 지어 긴 패스를 주고받는다.
패스 훈련이 끝나자 미니게임이 시작됐다. 40.32m의 페널티 에어리어를 벗어나면 아웃. 페널티 에어리어 양쪽 끝에 세워둔 축구공 4개가 골대가 된다. 골대로 세워둔 축구공 4개 중 하나라도 맞추면 이기는 게임이다. 무작정 공을 띄워 슈팅하는 ‘뻥축구’ 방지용 훈련이다. 체력 안배를 위해 14분씩 3쿼터로 진행된다. 미니게임이 끝나자 쉴 틈도 없이 헤딩 연습에 들어갔다. 손 감독이 골대 뒤에서 올려주는 공을 그대로 헤딩슛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손흥민이 지난 21일 하노버와의 경기에서 기록한 3호골(헤딩슛)도 이렇게 탄생했다고.
춘천FC의 한 선수는 “2시간 훈련이지만 학교 축구부에서 했던 훈련보다 20배는 더 힘들다. 흥민이 형은 이런 강도 높은 훈련이 끝나면 또 다른 개인 훈련에 들어갔다. 흥민이 형처럼 성실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한 선수는 드물 것”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손 감독도 “냉장고 박스에 축구공 90개를 담아 와 따로 슈팅 연습을 시켰다. 위치를 바꿔가며 골대를 맞추도록 시켰다. 정확도와 파워를 동시에 기르기 위함이다”고 설명했다. 함부르크에서도 이 훈련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구단 훈련이 끝나면 흥민이와 2시간 정도 슈팅 연습을 한 뒤 함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함부르크에 모하메드 베시치라고 흥민이와 가장 친한 동갑내기 선수가 있다. 흥민이가 나와 훈련하는 걸 보고 본인도 함께 하겠다고 나섰다가 얼마 못가서 ‘너무 힘들다’며 포기했다.”
지난 10월 말 손 감독과 함께 한국에 들어 온 함부르크 스카우터들은 이 같은 손 감독의 훈련 프로그램과 춘천FC 선수들의 실력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난여름엔 황한솔(16), 김영록(16), 이승원(14) 등 세 명의 선수가 함부르크 유소년팀에서 1~2주간 훈련을 함께했다. 황한솔은 “독일 선수들이 신장과 체격 면에서 월등하긴 했지만 볼 트래핑이나 기술면에서는 우리가 전혀 뒤지지 않았다. 연습 게임에서 우리가 득점을 거의 올릴 정도였으니 말이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황한솔 “독일에 기술 안 뒤져”
함부르크 측은 이들 실력에 놀라워하며 춘천FC와 계속적인 교류를 요청했다고. 이미 춘천FC 고1 선수 한 명은 함부르크 유소년팀 계약이 확실시 되고 있다. 함부르크가 인정한 손 감독의 ‘손흥민식 훈련법’. ‘제2의 손흥민’ 탄생이 예고되고 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
손흥민 4경기 3골 타이밍도 환상적
4경기 출전해 3골을 기록하며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는 손흥민. 손웅정 감독은 “흥민이가 3골 모두 절묘한 시기에 넣어줬다”며 입을 열었다. 먼저 손흥민의 환상적인 데뷔골은 재계약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는 단초가 됐다. “사실 함부르크 구단에서 유소년팀에서 활약한 흥민이가 프로무대서도 통할 수 있을지 유심히 지켜보던 중이었다. 흥민이가 적절한 타이밍에 데뷔골을 넣어준 덕분에 원하던 방향으로 재계약을 이끌어갈 수 있었다. 2014년까지로 재계약을 맺었지만 매년 연봉이 인상되도록 했고, 흥민이 성적이 좋으면 언제든지 옵션을 붙일 수 있게 됐다. 또한 45분 이상 뛰면 한 경기로 인정해서 경기 수에 따라 연봉이 올라가도록 했다.”
손흥민의 2, 3호골 역시 절묘한 시기에 터져줬다. 해외 유명브랜드 2곳과 용품계약 조건을 조절하던 중이었던 것. “3개월 전부터 스포츠용품 2곳으로부터 용품 협찬 러브콜이 들어왔다. 그중 현재 한 곳과 용품 협찬 계약을 마무리 짓는 단계다. 흥민이뿐만 아니라 춘천FC선수 몇 명에게도 축구화와 운동복을 정기적으로 후원해주기로 했다.”
중요한 때마다 환상적인 골을 터뜨려준 손흥민. 그의 다음 골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