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세훈 국정원장(오른쪽)이 ‘북한의 도발 징후를 청와대와 군에 사전 보고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2008년 당시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
집권 여당도 이 대통령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연평도까지 날아가 보온병을 포탄이라고 ‘아는 척을 했다가’ 네티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이 3류 출신이라고 맹공하고 있다. 또한 관가에서는 ‘이 대통령의 질책 리더십이 한계에 봉착했다’라는 얘기도 나온다. 총체적 난국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명박 정권의 안보라인을 점검해봤다.
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진 뒤 이명박 정권의 위기관리 시스템을 보고 있는 여권 내부의 반응은 한마디로 “기가 차다”는 것이다. 특히 원세훈 국정원장의 북한 도발 청와대 보고 논란은 이명박 정권의 안보라인이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당 일각에서는 ‘원 원장이 이 대통령의 질책을 듣고 국회에서 항명성 발언을 한 것이 청와대 보고 논란의 본질이다. 이 문제는 국기문란 사태로 다뤄야 한다’라는 강경한 발언까지 나오고 있다.
연평도 포격사건 직후 이 대통령은 자신의 휘하에 있는 안보라인의 ‘무능’에 굉장히 분노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에서는 이희원 안보특보가 포격사건 뒤 이 대통령에게 불려가 상당한 질책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천안함 사건 뒤 그렇게도 대북 대비태세를 철저하게 점검하라고 지시했지만 결국 어이없는 공격을 받았던 것에 대한 강한 분노를 표출한 셈이다. 이 특보는 포격사건 뒷수습을 위해 참모직을 유지하고 있지만 1순위였던 국방장관직에는 오르지 못하는 문책성 인사를 당했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 밖에서는 원세훈 국정원장이 이 대통령의 강한 질책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이 대통령의 대표적인 S라인(서울시청 인맥) 출신으로서 행정안전부 장관 등을 거쳐 국정원장에까지 오른 MB의 오른팔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난 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국방부보다 국정원에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 소식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원 원장이 ‘대북정보 수집 및 분석을 총괄하는 국정원의 수장이 북한의 도발을 사전에 예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 대통령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또한 김숙 국정원 1차장이 포격 발생 10여 분 뒤 국회에서 답변 중인 원 원장에게 구두 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크게 화를 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까닭에 여당 일각에서는 원 원장의 청와대 사전보고 논란이 이 대통령의 질책에 대한 불만과 포격사건의 직접책임 회피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원 원장이 “지난 8월 북한의 도발징후를 포착했고 이를 청와대와 군에 전달했다”고 국회 정보위에서 발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서는 연평도 사건의 책임을 이 대통령과 군에 미루는 듯한 것이라며 큰 논란이 됐었다.
이에 청와대와 군은 즉각 대응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대통령을 끝까지 보호해야 할 핵심 참모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대통령에 보고했다며 발을 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나는 보고했는데 대통령이 무시했다’는 말밖에 더 되느냐. 이는 공무원의 전형적인 책임회피 대응이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도 원 원장의 발언에 상당히 실망했다는 이야기도 청와대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군도 국정원의 책임 회피식 대응에 이례적으로 구체적인 정보 사항까지 공개하며 국정원장 발언을 반박했다. 군 내부에서는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도 할 말이 많다”라며 지극히 감정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상황이 청와대-국정원-군 간의 ‘팀킬’ 상황으로 전개되자 이에 여당에서는 “완전 콩가루 집안”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한편 사건 당사자인 국정원은 해명자료를 통해 “대북정보 수집 과정에서 지난 8월 유사내용이 입수됐다는 것이며, 3개월이 경과된 11월 23일 발생한 연평도 공격을 직접적으로 연관 짓는 것은 옳지 않다”며 진화에 나섰다. 원 원장의 발언도 실제로는 국정원의 고위간부 입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국회 보고 과정에서 원 원장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잘못 전달됐다는 게 국정원의 해명 핵심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한 소장파 의원은 이에 대해 “경위야 어찌 됐건 국정원의 국회 보고 핵심은 ‘우리는 지난 8월 미리 도발정보를 전파했기 때문에 국정원이 연평도 사건 책임의 덤터기는 쓸 수 없다’라는 것 아니냐. 이렇게 대통령 핵심 정보조직이 발 빼기로 나올 수가 있는 것이냐. 원 원장의 청와대 사전 보고논란은 대통령 지휘에 대한 항명으로 비쳐질 수 있는 굉장히 중차대한 문제이자 전형적인 정권 말 레임덕 현상”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 대통령에 대한 핵심 참모들의 ‘물 먹이기’는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의 ‘확전 자제’ 발언에 대한 국회 답변 과정에서도 일어났었다. 그는 ‘이 대통령이 확전 발언을 한 적이 없다’라는 언론 보도를 확인하지 못한 채 국회 답변에서 ‘확전 자제 발언을 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가 곧바로 경질됐다. 당시 이를 지켜본 한나라당의 한 국방관련 관계자는 “김 장관은 정권 출범 이후 줄곧 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통수권자의 의중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천안함 사태 등을 거치며 국방에 대한 정무적인 대응 경험도 많다. 그런데 언론 보도를 확인 못해 이 대통령의 확전 자제 발언을 확인시켜줌으로써 결국 상관에게 엄청난 부담을 준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당에서는 ‘말년 병장이 제대를 앞두고 중대장에게 고춧가루를 뿌리고 조기 전역 당했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여당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연평도 포격사건이라는 국가 안보 사태를 맞아 참모들의 잇단 ‘설화’에 비틀거리고 있는 것 자체가 이 대통령의 안보 리더십이 한계에 왔다는 방증”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영이 안 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질책 리더십’이 한계에 왔다는 말까지도 나오고 있다. 연평도 사건 뒤부터 이 대통령이 안보라인 관계자들에게 ‘질책’을 남발하자 통수권자의 말발이 떨어진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근 이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을 호되게 질책한 적이 있다(이 대통령은 ‘국가 위급 사태에 대한 대비가 국방부만 관계있고 다른 부처는 관계없다는 인식이 돼 있는 듯하다. 분단된 나라에서는 국방부만 아니라 전 부처가 안보와 관련이 있다’라며 안보관련 외 국무위원들을 호되게 꾸짖은 바 있음). 대통령이 물론 안보의식을 고취하자는 차원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화풀이를 한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대통령의 질책이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표출하는 차원이라면 그것이 제대로 참모들에게 전달되겠느냐. 쇠귀에 경 읽기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연평도 사건 이후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리더십을 보여주면서 당과 정부도 흔들리고 있다. 당에서는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을 싹 바꿔야 한다며 공격하고 있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이에 대해 “외교안보 라인에 3류가 많이 배치돼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여당에서는 소장파를 중심으로 민심 수습 차원에서 안보라인에 대한 전면적인 교체를 곧 요구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청와대는 “안보에서만은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이런 어려운 때에 왜 또 청와대를 흔들려고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안보라인 교체를 두고 당·청 간 갈등도 앞으로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청와대 주변에서도 안보라인을 전면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한 여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연평도 사건 직후 외교안보 라인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접은 것으로 안다. 질책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원세훈 국정원장의 경우 그 시기가 빨라질 수도 있다. 청와대 사전보고 논란이 있기 전부터 그도 경질 대상이었던 것으로 안다. 차기 국정원장으로는 한나라당의 진영 의원이나 류우익 주중대사,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는 것으로 안다. 특히 류 대사는 ROTC 출신으로 군 미필 정권이라는 오명도 떨쳐버릴 수 있는 대통령의 핵심 참모라는 점에서 유력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원 원장은 최근 송영인 ‘국사모’ 회장으로부터 퇴진 압박도 받는 등 사면초가로 몰리고 있다. 송 회장은 “군대도 안 갔다 온 원 원장은 정보 문외한이다. 잘라야 한다”라고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원 원장은 1973년 행정고시 합격 후 1974년 행정사무관 채용 신체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은 바 있는데 1976년 신검에서는 ‘하악관절염’으로 병역면제 판결을 받았음).
이 대통령의 안보 리더십이 흔들리고 지지율이 하락 추세에 접어들면서 레임덕 징후가 일찍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에 대해 “연평도 포격이 국가 안보사태라는 점에서 당장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격하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초기 위기관리 의지를 믿고 따라야 한다는 협조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외교안보 라인의 혼란 등이 가중되면서 이 대통령의 리더십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경우 향후 지지율 추이는 만성적인 하락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하락 그래프는 레임덕에 들어선 첫 신호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안보라인은 연평도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뭇매를 맞고 있다. 그리고 그 여파는 다른 부처에까지 미치고 있다. 연평도 사태로 구멍이 난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총체적 난국 속으로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