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각중 경방 회장, 고 정주영 회장 | ||
김각중 경방그룹 회장이 여든을 넘긴 나이에 자신의 일대기를 담은 자서전을 출판해 재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책 제목은 <내가 걸어온 길, 내가 가지 않은 길>.
김 회장의 자서전이 주목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그는 ‘경방’이라는 그룹의 오너 경영인이고, 지난 99~2003년까지 전경련 회장을 맡아왔다. 이 시기는 국가적으로 IMF 위기, 반재벌 정서 확대 등 재계 오너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기간이었다.
또 그는 개인적으로는 경방의 설립자이자 동아일보 창업자인 인촌 김성수 선생, 삼양사의 창업주 수당 김연수 선생의 외조카여서 소위 한국의 명문가 자제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자서전에서 전경련 회장을 맡으면서 있었던 각종 비화와 재벌 총수에 대한 인물평도 써 내려가고 있다.
김각중 회장의 자서전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의 관계다.
김 회장은 그의 자서전에서 ‘현대 정주영 회장의 창조적 인생’이라는 특별한 챕터를 만들 정도로 고 정 회장에 대한 기억을 쏟아냈다.
▲ 김각중 회장의 자서전. | ||
김 회장이 고 정 회장에게 붙이는 칭호는 많다. ‘국제적 명성을 가진 사람’, ‘독학의 경력으로 휘저어나간 사람’, ‘흘러간 유행가를 연달아 1백곡이라도 불러댈 수 있는 사람’, ‘경제인이지만 엉뚱하게 소떼를 몰고 북쪽으로 가서 실향민들의 가슴을 저리게 한 사람’ 등이 그가 고 정 회장에게 붙이는 타이틀이다.
김 회장은 고 정 회장에 대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슈퍼맨 같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자서전에 보면 고 정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던 지난 1970년 후반에 이 둘은 자주 외국 순방길에 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부분은 고 정 회장이 김 회장에게 사업 아이디어를 제시했던 적이 있다는 것.
김 회장은 자서전에서 “고 정주영 회장은 경방 같은 명문기업이 시원스럽게 성장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사업 아이디어도 내게 제시한 적이 있다. 이를 실행하도록 자금도 천만달러 정도 융통해줄 수 있다는 말을 해 고마웠던 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김 회장과 고 정 회장 사이의 이런 프로젝트는 새 사업 벌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경방의 사업 스타일 때문에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김 회장은 지난 1999년 10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후임으로 공석이 된 전경련 회장에 올랐다. 김 회장은 당시 펄쩍 뛰고 사양했지만, ‘대행’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회장을 하게 됐다.
당시 김 회장은 그룹 회장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그저 벙거지 회장이오”라는 표현을 즐겨썼다고 회고했다.
여기서 ‘벙거지 회장’이라는 말은 김 회장 스스로도 어색한 전경련 회장대행이 된 것에 대한 기분을 적절히 표현한 것이었다고 한다.
김 회장은 “조그만 기업의 회장인 내가 회장을 맡으니 남의 감투를 빌려쓰기나 한 듯 거북하고 어색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지난 99년 회장대행을 맡으면서 일종의 ‘이면계약’을 했다고 한다.
김 회장이 전경련 회장 자리에 앉더라도 돈 문제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 이로 인해 당시 손병두 상근 부회장이 그 문제를 처리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행’의 꼬리표를 달았던 김 회장은 이후 지난 2000년 2월 정기총회에서 정식으로 선임돼 2003년까지 전경련 회장을 맡았다.
김 회장은 자신이 회장을 맡았을 당시 또 다른 경제단체인 대한상의와 정면으로 충돌할 뻔한 적이 있었다는 비화를 공개했다. 대한상의 회장의 멘트 때문이었다.
▲ (왼쪽부터)이건희, 최종현, 김우중 | ||
얼핏 보아서는 이 일을 웃어넘길 수도 있겠으나, 당시 전경련 회원들의 여론은 극도로 악화됐다고 한다. 특히 일부 회원들은 김 회장에게 전경련 회장 자격으로 대한상의 회장의 발언이 잘못된 것임을 밝혀야 한다고 펄펄 뛰었다는 것. 경제단체인 전경련과 대한상의가 정면 충돌할 위기였던 셈이다.
그러나 김 회장은 “조금 찜찜하지만 그냥 못 들은 체하고 넘겨버리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덕분에 전경련과 대한상의 간의 감정은 그저 해묵은 감정으로만 남겨졌고,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 회장이 울며겨자먹기로 전경련 회장 대행을 맡았던 지난 99년은 재계, 특히 전경련으로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해일 것이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야심차게 회장직을 맡았으나, 불과 9개월 만에 물러났기 때문이다. 뜻밖인 것은 이 당시 전경련 회장단에서는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을 다음 회장으로 추대한다는 합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정 회장은 고 정몽헌 회장과의 재산싸움으로 인해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정작 재계의 모임인 전경련에서는 그를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하는 움직임이 한창이었다고 한다. 김 회장은 자서전에서 “지난 1999년 11월 2일 모 호텔에서 회장단 고문단 회의가 열렸고, 정 회장을 다음 회장으로 추대한다는 합의가 있었다. 그런데 이틀 뒤인 4일, 정 회장의 측근인 정순원 상무(당시)가 회의장에 찾아와 정 회장이 이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돌아갔다”고 밝혔다.
당시 전경련 관계자들은 무척 당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전경련 수뇌부는 장시간에 걸린 회의 끝에 김 회장이 대행직을 맡게 됐다고 한다.
김 회장은 이외에도 각 그룹의 회장에 대해 짤막한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대해서는 고마운 심정을 표현했다. 이 회장은 바쁜 일이 있는 와중에도 전경련 모임에는 시간을 많이 내려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부인을 동반하는 모임에도 참석해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줬다고 기억했다.
김 회장은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에 대해서는 ‘공부를 많이 한 분답게 학구적인 면이 보였다“고 말했다. 또 김우중 전 회장에 대해서는 “의욕은 컸으나 미처 그것을 실천해보지 못해 평가하기 어렵지만, 그의 야심만큼은 컸다”고 기억했다. 고 정주영 회장에 대해서는 “선이 굵고 조금 독선적인 듯하나 시원한 면이 있었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