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 오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실에서 주호영 당대표 권한대행이 울산시장 선거개입 재판결과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당권 놓고 내부 총질
박근혜라는 간판타자가 사라진 뒤 국민의힘은 오랫동안 비대위 체제를 이어왔다. 홍준표·황교안 등 전당대회를 통해 정상적 대표 체제가 한때 들어서기도 했지만 길게 가지 못했고 그때마다 비대위 체제가 재등장했다. 때문에 지난 수년간 국민의힘은 자생적 대표 선출 체계가 사실상 무너진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재보선 승리라는 갑작스런 잔치판이 국민의힘 앞에 펼쳐졌고, 동시에 비대위원장도 자리를 비웠다. ‘승리 관리’를 이제 자력으로 해야 할 시점에 왔다는 얘기다.
하지만 집단지성을 통해 스스로 리더십을 창출하는 능력이 익숙하지 않은 국민의힘은 새 리더십 창출 과정에서 제대로 된 기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너는 이래서 안 돼!”라는 뺄셈 정치가 작동하면서 서로 간 삿대질만 무성하다. 더욱이 국민의당과의 통합 이슈까지 끼어들면서 당내 분란은 이견 개진 수준을 넘어 다툼과 갈등으로 확대되는 국면이다. 국민의당과 통합을 먼저 한 뒤 전당대회를 치르자는 의견과, 전당대회를 하고 난 뒤 통합은 천천히 해도 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 것이다.
주호영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선 통합·후 전당대회’ 의견 쪽에 서면서 당내에서는 우선적으로 주 대표 권한대행에 대해 집중 포화가 쏟아지고 있다. 주 권한대행이 당 대표 욕심을 앞세워 국민의당 통합을 대표 자리 획득을 위한 지렛대로 삼으려한다는 지적이 쇄도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4월 15일 SNS에 글을 올려 주 대표 권한대행을 겨냥, “당 대표 도전할 거면 원내대표부터 즉각 사퇴하고, 만약 출마하지 않는다면 즉각 불출마 선언을 하시라. 주 대표 대행의 시간 끌기로 인해 당 혁신 논의를 하기도 전에 당권 다툼만 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고 직격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당권을 두고 당의 주력인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의 상호 견제에 수도권 등 다른 지역의 이해관계가 작용하고, 당의 다수가 된 초선 그룹과 소수인 다선 그룹의 복합 대립구도 역시 작동하는 중이다. 뚜렷한 우열이 가려지지 않으면서 갈등 양상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각 지역, 초선 그룹 내에서도 확실히 밀어주는 인물도 나오지 않으면서 국민의힘 새 지도부의 미래 예측은 혼돈 상황이다. 김웅 의원이 초선 의원 그룹에서 “내가 당 대표 해보겠다”는 뜻을 4월 14일 내비쳤지만, 56명에 이르면서 당내 최대 계파로 올라선 초선 그룹 전체가 김 의원을 밀고 있다는 신호 역시 나오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김웅 의원은 유승민계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유 전 의원을 견제하는 심리도 발동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김 의원 역시 유리한 처지가 되지 못한다. 지금 대선을 앞둬서 당내 구도가 복잡하다. 그래서 혼란이 큰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수도권 한 당협위원장은 “이번에 선출되는 당 대표는 공천권도 없고 내년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하는 역할에 그친다”며 “사정이 이러한데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 과정에서 지나치게 시끄러운 파열음이 당 내부에서 나왔다”고 우려했다.
4월 16일 당권 유력 주자였던 정진석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당권 획득을 둘러싼 교통정리가 될 것이란 희망적 메시지가 나오지만 국민들에게 이미 비춰진 갈등은 “아직 버릇 못고쳤다”는 비난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전 비대위원장이 4월 8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마친후 배석한 당직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김종인, 친정에 총질
재보선 이후 정치권에서는 패자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관심보다 승자 국민의힘을 이끌었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입에 더 주목하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이 친정 국민의힘에 대해 연일 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김 전 위원장은 4월 13일 매일경제 인터뷰를 비롯해 여러 언론과의 대담에서 불과 며칠 전까지 그가 몸담았던 국민의힘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그는 “의원들이 정강·정책에 따라 입법 활동하는 것도 전혀 안 보인다. 그러니 국민이 ‘저 당이 진짜 변했나’라는 말을 한다. 이런 식으로 끌고 가서는 국민의힘으로 대선을 해볼 도리가 없다”고 혹평했다. 당권 다툼이 벌어진 국민의힘을 “아사리판”이라고 몰아세웠고, 본인도 국민의힘으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김 전 위원장 의도는 명확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차기 대선에서 ‘킹 메이커’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앞뒤가 안 맞는 말까지 하고 있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할 때는 “제3지대라는 게 없다”고 단언했다가 최근엔 ‘새로운 3지대’를 얘기하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다 금태섭 전 의원을 끌어들인 뒤 세력을 불리고 정당 체계가 잡히면 자신을 따랐던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을 규합시키는 3지대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보고 있다. 그는 4월 16일 금 전 의원을 만나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을 잘 안다는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의 분석이다.
“김 전 위원장은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반드시 그려내고 싶어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 손잡았다가 결별한 것을 모두 기억한다. 박 전 대통령이나 문 대통령이 권력을 장악한 뒤 자신이 제시한 그림을 받아들지 않자 바로 돌아섰다. 국민의힘도 김 전 위원장을 계속 쫓아다니며 그의 그림을 계속 걸어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비대위원장 임기 종료와 함께 그의 그림을 더 이상 받아주지 않고 새 지도부 논의가 벌어지자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실제로 김 전 위원장은 자신의 그림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요즘 그가 하는 것처럼 혹독하게 되갚았다. 김 전 위원장은 회고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데다 자기 뜻대로 안 이루어지면 화를 내고, 동네 건달식 정치를 한다”고 깔아뭉갰고, “문재인 대통령은 천하가 자기 것인 줄 알고 방자하게 굴고 겉과 속이 다르며 주변 인간관계가 복잡한 사람”이라고 혹평했다.
당 내부에서는 김 전 위원장의 행태에 대해 “너무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 전 위원장은 정치를 안 하면 그만이겠지만 그가 한때 지휘했던 국민의힘을 국민들이 도대체 어떻게 보겠느냐는 것이다.
당권 주자인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은 4월 15일 김무성 전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은 ‘마포포럼’에서 “(김 전 위원장이) 나가서 하는 행태는 제왕적 행태다. 고언이란 이름 아래 훈수정치를 그만하고,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고 질타했다. 역시 당권 주자로 나선 조경태 의원도 같은 모임에서 “(김 전 위원장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인 전당대회 일정을 잡지 않고 무책임하게 떠났다. 대행 체제로 우왕좌왕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금태섭 전 무소속 의원이 4월 16일 오전 서울 소공동 소재 한 호텔에서 회동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믿었던 윤석열마저?
국민의힘을 배제하고 독자 세력화를 모색하는 것으로 보이는 김종인 전 위원장은 윤 전 총장에게 적극적으로 손짓하고 있다. 그의 꿈을 이룰 새로운 파트너로 윤 전 총장을 점찍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4·7 재보선 직후인 4월 8일 채널A ‘뉴스A’에 출연해 “한번 만나보고 대통령 후보감으로 적절하다 판단되면 그때 가서 도와줄 건지, 안 도와줄 건지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전 총장이) 만나자고 하면 만나보려고 한다”고도 했다. 또 현 상황에서 윤 전 총장이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라는 데 동의하느냐는 진행자의 말에 “현재 그렇게 된 것 같다. 공정이라는 단어 자체가 마치 윤 전 총장의 브랜드처럼 돼 버렸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김 위원장은 다른 사람 칭찬을 잘 안한다. 들어보면 대부분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돼’라는 비평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윤 전 총장에 대해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지난해 연말까지 윤 전 총장이 집권여당 대표까지 지낸 거물 추미애 전 장관과 정면으로 겨루는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오래 버틸 수 있다면 합격 수준에 도달한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총장을 자신의 그림을 함께 걸 조력자로 삼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애가 탄다. 대선 주자를 키우는 기술자로서 김 전 위원장 실력은 정평이 나있기 때문이다. 윤 전 총장이 이를 감안해 김 전 위원장 손을 덥석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비록 내홍을 겪으면서 안정감을 주지 못하고 있지만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을 ‘패싱’하고 김 전 위원장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는 반론도 나온다. 최근 김 전 위원장의 좌충우돌 행보는 의리와 명분을 중요시하는 윤 전 총장 정서와 완전히 배치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이 의견을 뒷받침한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윤 전 총장은 이른바 정치 기술자보다는 비록 험한 길이 될지라도 정치의 정도를 걸으려 할 것”이라며 “특히 김 전 위원장처럼 왔다갔다하는 행보나, 말을 자주 바꾸는 행태는 윤 전 총장의 성격과는 결이 다른 것이어서 아무리 김 전 위원장이 정치 고수라 할지라도 따라가기는 어려울 전망”이라고 했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비대위원장도 김 전 위원장과 윤 전 총장을 떼어놓는 직격타를 날렸다. 그는 김 전 위원장을 겨냥해 4월 15일 “윤 총장은 공정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다. 그런 그가 30년 전 어마어마한 돈의 뇌물을 받은 전과자와 손을 잡겠나”라고 되물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2억 10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강민준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