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D램 양산체제를 갖춘 하이닉스의 비극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대검 공적자금비리 합동수사반은 지난 99년 하이닉스가 1조9천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한 혐의를 잡고 최근 수사에 나섰다. 이는 국내 기업에서 벌어진 분식회계 규모로는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의 2조원대 분식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큰 것이다.
그러나 분식회계의 특성상 회계장부상으로는 축소되어 있다는 점에서 향후 수사진행 내용에 따라 실제 분식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재계의 촉각은 이 회사의 분식회계 내역보다는 왜 지금 시점에 분식혐의가 불거졌느냐는 부분이다.
특히 분식혐의의 경우 현행법상 허위공시일 경우 이 부분은 시효만료가 3년이라는 점에서 어차피 분식내용이 드러난다고 해도 법인(하이닉스)은 빠져나갈 수 있다. 다만 분식 관련자(경영인이나 오너)들에 대한 형사처벌 문제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현재 검찰의 수사는 그 배경과 맞물려 많은 추측을 낳고 있다.
우선 이번 검찰의 수사가 어떻게 시작됐느냐는 점이다. 검찰은 공적자금비리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예금보험공사에서 분식회계 혐의를 파악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 시작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예보가 왜 지금 시점에 그 같은 수사의뢰를 했느냐는 점. 따지고 보면 하이닉스의 분식회계 의혹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지난 2000년에도 이 의혹이 불거졌으나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하이닉스 분식 사건은 지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분식액 전체를 적자처리하면서 회계장부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게다가 이 문제는 3년이란 시효도 지났기 때문에 시비를 삼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은 분식회계로 부풀린 실적을 가지고 대출사기를 한 부분과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 회사자금의 횡령혐의 등이다.
이 문제에 대한 실체가 드러날 경우 사건의 파장은 전직 임원뿐 아니라 자금의 용처와 관련해 정치권이나 관가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단 이 사건의 최종 책임자였던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 작고한 상황이어서 관련자들이 모두 입을 다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부 자료 역시 그동안 수차례 경영진이 바뀌는 과정에 모두 소각되거나 폐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해 D캐피털이란 회사가 등장하는데, 이 회사는 현대그룹과는 전혀 상관없는 금융회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캐피털사를 통해 분식된 자료를 바탕으로 자금을 끌어모았다는 추측인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모두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다. 왜냐하면 분식 이후 자행된 사기 대출의 창구들이 지금은 없어졌거나 은밀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당시 자금담당 임원 등을 통해 하나하나씩 더듬어나가야 하는데, 문제는 대부분의 관련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어 검찰 수사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분식을 통한 사기 대출의 규모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을 경우 불법적으로 사용된 자금의 규모를 밝혀내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일단 검찰은 1조9천억원대의 거액이 변칙적으로 사용됐다는 추정만 하고 있을 뿐이다. 금융계의 추정은 분식규모가 1조9천억원이면, 불법자금 조성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최소 1조9천억원이라는 얘기.
다음 문제는 이 돈을 어디에 썼느냐는 점. 검찰의 수사가 집중될 것으로 보이는 자금의 용처 부분은 5년 전 회계장부를 확보해야만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힐 수 있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장부의 상당 부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자금용처를 세세하게 기록해둔 핵심 장부가 별도로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검찰은 일단 자금의 용처는 계열사 지원과 일부 임직원의 횡령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계열사 지원 부분은 당시 하이닉스가 현대그룹 계열이었고, 그룹은 현대건설 등 대부분의 계열사들이 경영상태가 어려웠기 때문에 상당수 계열사에 불법 지원됐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가장 큰 문제는 임직원의 횡령 부분. 사실 횡령 부분은 정확한 내역을 찾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비자금 장부를 찾아내거나 핵심 관련자의 폭로가 있을 경우 쉽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하이닉스 분식과 관련해 정치권에 건네진 정몽헌 전 회장의 정치자금이 이 계좌에서 흘러나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루머도 나돌고 있어 주목된다. 실제로 정 전 회장은 DJ정부 시절 핵심 권력인사들에게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하이닉스 분식회계에 대한 검찰 수사는 향후 정치권과 관가를 소용돌이에 빠트릴 수 있는 뇌관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예측은 하이닉스가 위기에 빠져 있던 99년부터 재계에서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의혹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