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웅렬 코오롱 회장 | ||
그런데 이들이 2004년 가을을 바쁘게 보내고 있는 이유는 그룹의 영업실적 저하와 각종 사고 등 반갑지 않은 소식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들에 대한 ‘경영 위기론’이 솔솔 흘러나올 정도다.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은 요즘 그야말로 가시방석에 앉은 모습이다. 그룹 계열사인 코오롱캐피탈의 자금담당 임원이 회사 돈을 횡령한 금융사고가 돌연 이 회장 개인의 퇴진압력(일부 노조측의 주장)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은 계열사 임원이 회사 돈을 횡령해 어이없는 표정인데 난데없이 노조에서 오너 퇴진 등을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발끈했다.
이 회장에게도 최근의 사건은 마음에 찬물을 확 끼얹는 기분일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올 초부터 유난히 회사 상황을 대외적으로 홍보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인 터였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이 회장은 “그룹의 한계 사업을 미련 없이 접고 미래형 핵심 사업을 집중 육성할 계획”이라며 “오는 2008년 그룹 매출을 8조원대로 끌어 올리겠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코오롱그룹은 지난 8년 동안 그룹 매출이 4조3천억~4천억원대였다. 이 회장의 자신대로라면 향후 4년 동안 그룹 매출을 기존보다 1.8배 정도 올리겠다는 것.
당시 업계에서는 재벌 총수가 직접 공식석상에서 연매출 등을 운운한 것 자체가 흔치 않다는 점에서 주목하기도 했다. 올해 이 회장은 자신의 ‘관료 친위대’도 직접 만들었다. 전직 정보통신부 장관을 두 명씩이나 코오롱그룹에 발들이게 한 것. 지난 2월 이석채 전 정통부 장관이 코오롱유화 사외이사로, 지난 7월 이상철 전 장관이 그룹 상임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뜻밖의 인사 영입에 대해 업계에서는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았다. 이 회장이 정보통신사업에 다시 진출할 요량으로 이들을 영입하지 않았느냐는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이 회장은 직원들도 직접 챙겼다. 최근에는 ‘챌린지 데이’라는 것을 만들어 직원들의 사기 진작에 힘썼을 정도. 코오롱 그룹의 ‘챌린지 데이’는 매주 수요일 근무시간을 오후 5시 반으로 앞당기는 것으로 임직원들이 어학 공부, 독서 등을 통해 자기 개발할 시간을 만들어보자는 이 회장만의 독특한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이 회장은 이런 꿈을 펴기도 전에 암초에 걸리고 말았다. 국내 역사상 기업 금융사고 중 최대 금액인 4백70억원 횡령사고가 터진 것. 사건의 발단은 계열사 자금담당임원의 공금 횡령사건이었지만, 결과는 이 회장에 대한 퇴진 압력으로 불거졌다. 이 회장이 코오롱캐피탈의 횡령사건에 대한 마무리를 각 계열사에서 떠안기로 결정했기 때문.
코오롱그룹은 지난 9월 말 이사회를 열어 코오롱캐피탈의 최대주주인 (주)코오롱, 건설, 제약 등 계열사들이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는 사실상 그룹 계열사의 부실 문제에 대해 다른 계열사들이 출혈을 감수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시각이다. 급기야 코오롱 노조는 “손실 보전에 계열사들을 끌어들이지 말라”며 “계열사들이 유상증자에 참여할 경우 이 회장을 집단고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 이홍순 삼보컴퓨터 회장 | ||
당시 그는 “회사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기 위해 일선에서 물러난다”며 명예로운 퇴진을 꿈꾸기도 했다. 이후 삼보컴퓨터는 박일환 사장을 앞세워 재계의 대표적 전문경영인 그룹의 이미지 구축에 힘쏟았다.
그러나 불과 반 년 만인 올초 이홍순 회장은 화려하게 경영일선으로 복귀했다. 직급도 퇴진할 당시의 부회장에서 한단계 오른 대표이사 회장으로 높아졌다. 당시 삼보컴퓨터측에서는 이홍순 회장의 경우 전략사업 총괄, 박 사장은 컴퓨터 사업부을 맡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퇴진한 지 불과 반 년 만에 승진 인사를 낸 것에 대한 사회적 비난들을 무마시키기 위한 적절한 배분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이후 이 회장은 본격적인 그룹 챙기기에 나섰다. 삼보컴퓨터 관계자는 “지난해 4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나, 올해에는 상반기에만 매출 5천1백억원, 3백억원대의 흑자를 기록했다”며 “향후 흑자 규모가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사실상 이런 호황이 컴퓨터 사업부문에 극히 국한돼 있어 지속적으로 보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시각을 보내고 있다. 특히 이 회장이 새로 취임한 이후, 컴퓨터 사업부 이외의 그룹 계열사 전략 등에 관해서는 사실상 미래 사업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삼보컴퓨터가 잇따라 증권거래소로부터 주식 감자설, 유상증자설 등 각종 루머에 휩싸이는 것도 투자자들의 이 같은 불안심리를 그대로 반영한 대목이라는 분석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올 중반기 이후 미국시장에서 컴퓨터 수요가 다시 살아날 기미를 보이면서 실적이 크게 호전되고 있다는 점. 물론 일부에서는 미국의 경기 전반이 침체국면인 상황에서 컴퓨터 수요가 최근 좋아진 것은 일시적인 반짝 경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삼보은 지난 90년대 말 미국에 이머신즈라는 컴퓨터 판매법인을 세워 대대적인 저가공세에 나섰다가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큰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이머신즈는 한때 미국 나스닥에 상장되기도 했지만 실적저조로 퇴출 위기에 몰리는 아픔을 맛보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재벌 총수자리에 올라 경영을 맡아왔던 두 총수가 이번 위기를 어떻게 타개해나갈 것인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