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영무 법무법인 세종 대표(왼쪽)와 하창우 전 서울 변회 회장. |
오는 1월 31일로 예정된 차기 대한변호사협회(변협) 회장 선거 열기가 서초동을 달구고 있다. 변협 회장은 대법원장, 검찰총장과 함께 ‘법조 삼륜’을 이끄는 수장으로 대법관과 특별검사를 추천할 수 있고, 문제가 있는 변호사를 법조윤리협의회에 회부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변협 회장 선출방식을 놓고 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서울변회)의 힘겨루기가 갈등을 넘어 정면충돌 양상으로 확전되고 있는 것도 변협 회장의 막강 권한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차기 변협 회장 선거에는 국내 대형로펌인 법무법인 ‘세종’의 대표인 신영무 후보(66·사시9회)와 서울변회 회장을 지낸 하창우 후보(56·사시25회)가 출마해 양자대결 구도로 치러지게 됐다. 서초동 법원 인근에 위치한 신 후보의 선거캠프(30일)와 하 후보의 변호사사무실(31일)에서 두 후보를 만나 출마의 변과 주요 공약, 변호사 업계에 산적한 현안 등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신구 대결로 요약되고 있는 이번 변협 회장 선거에서 법조인들의 관심은 대형 로펌 변호사들과 서울변회 변호사들이 과연 누구를 선택할지 여부에 쏠리고 있다. 지난 30년간 대형 로펌인 ‘세종’의 대표 변호사로 일해 온 신 후보가 이례적으로 변협 회장에 도전장을 냈고, 변협과 서울변회가 변협 회장 선출 방식을 놓고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12월 30일 기자와 만난 신 후보는 “미국·영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로펌 대표들이 예전부터 변협 회장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늦은 편”이라며 “법무법인 ‘세종’을 대형 로펌으로 키워 최고경영자로서 경영능력을 보여준 만큼 로펌 소속이건 개인 변호사건 위기에 처한 법률시장을 해결할 적임자로 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이에 대해 지난 31일 기자와 만난 하 후보는 “대형로펌 대표는 전체 변호사를 변호할 대표성이 없다. 대형로펌은 전체 변호사의 20%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는 중소 변호사가 차지하고 있다”며 “변호사들의 애환이라든가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 고뇌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리에는 내가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나이와 법조 경륜을 두고서도 두 후보는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신 후보는 “원래 변협 회장은 65세 정도의 연륜 있는 변호사가 맡아왔다”며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여건을 감안할 때 변협의 수장 또한 60대 중후반의 원로가 맡는 게 순리”라고 주장했다. 반면 하 후보는 “나는 변호사회 회무를 14년 동안 보아온 반면 저쪽은 별다른 회무 경험이 없다”며 “이번 선거는 변협 내의 내부 혼란을 종식시킬 적임자가 누구냐에 대한 심판인 만큼 변호사로만 25년을 일해 온 내가 변호사들 개개인의 애환과 고뇌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변협회장 선출 방식을 둘러싼 변협과 서울변회의 지리한 힘겨루기에 대해서는 두 후보 모두 다소 유연해 입장을 보였다. 전체 변호사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서울변회에 소속된 변호사들의 표심과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신중 모드로 임하겠다는 복심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변협은 지난해 10월 임시총회에서 회장 선출방식을 직선제로 바꾼다고 결의한 뒤 국회에 변호사법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지방변호사회가 추천한 후보자를 두고 각 지방변호사회에서 회원 수에 비례한 대의원들이 투표해 선출하는 현행 간선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른 개정안이었다. 간선제 하에서는 1만 200여 명의 변호사 중 7300여 명의 변호사가 속해 있는 서울변회 추천 후보자가 당선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서울변회를 제외한 다른 지방변호사회의 불만이 팽배했던 것도 직선제 도입의 주 요인이 됐다.
하지만 서울변회가 반기를 들면서 변호사 업계의 내부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서울변회는 소속 변호사들 70% 정도가 직선제에 대한 반대의사를 나타냈고, 직선제를 시행할 경우 많은 비용과 과열 선거, 정치적 문제로 비화될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국회에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결국 직선제 개정안은 국회 논의를 통과하지 못한 채 계류중이고, 변협과 서울변회는 지금까지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내부 갈등에 대해 서울변회 회장을 지낸 하 후보는 “변협 회장과 서울회장이 싸울 필요가 없는 문제를 두고 2년 동안 허송세월했다”며 “전체 변호사의 70%를 차지하는 서울변회가 반대를 하면 추진하지 않고 찬성하면 추진하는 쪽으로 해야 한다. 이 문제는 변협과 서울변회가 의사소통만 이뤄졌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는 입장을 보였다.
신 후보도 “회장에 당선될 경우 전체 변호사들의 입장을 수렴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도록 노력하겠다”며 “변협 회장은 서울변회 회장을 선출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변호사를 대변하는 선거인 만큼 능력 있고 일 잘하는 나를 선택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오는 7월로 예정된 법률시장 개방 문제와 관련해서는 두 후보 모두 비슷한 견해를 내놓았다. 신 후보는 “법률시장이 개방되더라도 대형 로펌은 경쟁력이 있을 것이나 중소형 로펌은 외국 로펌과 인수·합병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며 “국내 로펌의 위상과 변호사들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확립하는 차원에서 외국 로펌에 대한 관리감독 시스템이 구축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 후보도 “외국 로펌은 자본과 인력이 비대하기 때문에 우리가 경쟁할 수 없는 만큼 변협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외국 로펌의 불공정 행위와 외국 변호사에 대한 감시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변호사 업계의 가장 큰 현안으로 부상한 청년 변호사 일자리 창출 문제에 대해서는 두 후보 모두 큰 관심을 보였다. 신 후보는 “대통령 직속으로 청년 변호사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별기구를 만들어 젊은 변호사들이 꿈과 희망을 갖게 하겠다”며 “사법부를 비롯해 행정부와 입법부에도 젊은 변호사들이 진출해 법률 및 정책자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청년 변호사 일자리 4000개 창출’이라는 당찬 공약을 내세웠다.
하 후보도 “대기업과 경제단체를 통해 기업에서 변호사를 더 많이 고용하도록 적극 앞장설 것이고 국회에 입법보좌관제와 정부 각 부처의 법무담당관제를 신설하겠다”며 일자리 창출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앞으로 로스쿨 학생들이 나와서 일자리가 없으면 국가사회의 큰 불만세력으로 등장할 것이다. 그래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일자리 수요창출을 할 수 있는 제도를 적극 도입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후보의 이색적인 공약도 눈에 띄었다. 신 후보는 “통일 이후의 법률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변호사를 양성하겠다”며 “법체제가 전혀 다른 남과 북이 통일됐을 경우를 대비해 지금부터 새로운 법체제를 정립할 수 있는 젊고 유능한 변호사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후보는 또 변호사연금제도 등 복지제도 확충, 법조일원화 조기 확대 실시, 심리불속행제도 폐지 및 대법관 40명 증원 등을 골자로 한 대법원 개혁, 신규 연수원 졸업자와 로스쿨 출신을 대상으로 한 로클럭(Law Clerk)제도 도입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 후보의 경우 변협회관 건설과 변호사 연금제 도입 공약이 눈에 띈다. 하 후보는 “현재 변협에는 회관이 없다. 변협회관을 마련해서 변호사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문교육을 할 장소를 마련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변호사 연금제도를 만들 것이다. 변호사들이 돈이 많은 것 같지만 노후를 아주 쓸쓸하게 보내고 있다. 변호사 연금 제도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최초로 변호사 연금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하 후보는 또 법관평가제 전국적 확대 시행, 법조전문 인력의 질적인 수준 향상을 위해 로스쿨 변호사 합격률 대폭 감소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경륜과 패기를 앞세운 신 후보와 하 후보의 신구 양자대결 구도에서 과연 변호사들의 표심은 누구를 선택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