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큰 치킨’ 판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중단됐지만 논란이 된 이후 오히려 저가 마케팅 전략을 부추기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지난 12월 15일 ‘통큰 치킨’의 갑작스런 퇴장은 오히려 롯데마트의 저가 마케팅 전략을 부추기고 있다. 롯데마트가 값싼 제품을 선보인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통큰 ○○’이라는 별명과 함께 시선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큰 치킨’의 반사효과로 가장 큰 혜택을 본 것은 저가형 넷북이다. 롯데마트에서 선보인 ‘모뉴엘 넷북 미뉴 No1D’는 출시 후 5시간 만에 매진되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더욱이 롯데마트에서는 올해 더 저렴한 ‘제2의 통큰 넷북’ ‘통큰 프린터’ 등을 선보일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대형 전자업계 역시 계속되는 롯데마트 발 저가전략 열풍에 어부지리로 편승하고 있다. 2011년에도 그 여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대기업들의 ‘통큰 서비스’ 전쟁 속으로 들여다봤다.
최근 롯데마트에서 판매해 신기록을 달성한 저가형 넷북은 모뉴엘이라는 중소업체가 한정판매로 내놓은 제품이었다. 가격이 다운된 만큼 CPU나 배터리 성능은 고가 제품에 견줄 바가 못됐지만 ‘통큰 치킨’을 연상시키면서 롯데마트를 찾은 소비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어냈다.
‘통큰 치킨’이 영세상인들의 사업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영업정지된 데 반해 넷북의 경우는 PC 업계 전체에 일대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아이패드, 갤럭시탭과 같은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넷북의 판매량이 동월 대비 40%로 현격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롯데마트 발 ‘통큰 넷북’의 판매 열풍은 얼어붙었던 PC업계를 녹였다.
때문에 대형 전자업계 역시 저가 전략에 편승해 ‘통큰’ 시리즈의 후광효과를 누리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삼성전자, HP, LG전자가 선보인 40만 원 대의 넷북이 있다. 이 기업들은 롯데마트의 ‘통큰 넷북’이 낮은 가격만큼 사양이 떨어지는 점을 공략해 비슷한 가격대에 품질까지 우수하다는 점, 전국에 있는 지점을 통해 손쉽게 AS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러한 홍보효과로 인해 대형 전자업계에서 판매하는 저가형 넷북 역시 온·오프라인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와중에 롯데마트에서 또 다시 ‘통큰 프린터기’를 선보인다는 소식이 들리자 전자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27일 LG전자는 HP와 합작해 만든 ‘1호 프린터’를 선 보였다. LG와 HP가 합작해 내놓은 ‘초저가 프린터’는 롯데마트에서 판매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대는 10만 원대 초반으로 책정될 것으로 보여 넷북에 이어 저가형 프린터기 출시 붐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손대는 업종마다 가격파괴를 일으키다보니 자연스레 롯데마트에서 앞으로 어떤 저가형 제품을 선보일지에 대해서드 소비자들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소비자들은 블로그를 통해 자신이 산 제품을 ‘제2, 3의 통큰 제품’이라 소개하며 롯데마트 제품에 대한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때문에 다른 판매업체들 역시 ‘통큰’이라는 단어를 활용한 전단지나 현수막 홍보로 소비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업계는 저가제품 열풍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대형 전자업계의 경우는 그다지 큰 여파를 느끼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12월 29일 기자와 통화한 삼성전자 관계자는 “롯데마트에서 출시한 넷북의 경우 1000대 물량이 완판된 것으로 알고 있다. PC업계 전체로 봤을 땐 극히 미미한 정도다”며 “통큰 넷북 이전에도 20만~30만 원대의 저가 제품은 꾸준히 판매돼 왔는데 ‘통큰 치킨’ 사태 때문에 새삼스레 부각된 것이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넷북과 프린터기처럼 갈수록 수요가 줄어드는 제품을 원가 수준의 가격에라도 팔 수 있는 현상이 일어난 것은 나쁘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형 전자업체들에게 맞서 기술력과 저가형 제품판매를 기반으로 버텨오던 중소업체들의 경우는 그야말로 울상이다. 저가형 ‘통큰 넷북’은 대형 전자업체로선 기존의 가격에서 거품만 빼면 될 일이지만 중소업체들의 경우는 이윤도 남기지 못하는 장사를 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큰 넷북’ 판매업체란 별명을 얻으며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모뉴엘 역시 최근 대박 사례가 마냥 희소식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12월 29일 기자와 통화한 모뉴엘 관계자는 “부품 원가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가격을 낮게 측정해 홍보의 일환으로 판매했었다”며 “그동안 친환경 기술력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기업 이미지가 값싼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바뀌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 있지만 이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역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측은 ‘통큰 시리즈’는 의도하지 않은 현상이라며 롯데마트에서 주력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비치는 것에 유감을 표했다. 12월 30일 기자와 통화한 롯데마트 관계자는 “이전부터 롯데마트에서는 다양한 저가 제품을 선보여 왔는데 이것이 마치 ‘통큰 마케팅’의 일환으로 비춰지고 있다”며 “‘통큰 치킨’ 판매 말고는 ‘통큰 시리즈’를 계획한 것도, 앞으로 할 의사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의 설명과는 달리 롯데마트는 12월 25일 ‘통큰’과 ‘롯데 통큰’, 그리고 ‘롯데마트 통큰’ 등 세 가지에 대한 상표 출원을 특허청에 신청해 둔 것으로 드러났다. 2011년 말쯤 상표에 대한 심의가 통과되면 롯데마트 외에는 ‘통큰’이란 단어를 쓸 수 없도록 법적인 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상표등록 신청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미 ‘통큰’이란 단어가 롯데마트의 이미지와 동일시됐기 때문이다”며 “다른 루트를 통해 구매한 제품인 데도 ‘통큰’이란 단어가 붙음으로써 마치 롯데마트 제품인 것처럼 인식될 경우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청한 것뿐이다”고 설명했다.
롯데마트가 ‘통큰 마케팅’의 지속 여부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반면 다른 대형마트에서는 저가공세에 적극 뛰어들고 있는 모습이다. 신세계 이마트 역시 12월 24일을 시작으로 1월 2일까지 만 원짜리 랍스터를 한정 판매하며 이마트 피자에 이어 저가공세에 다시 한 번 가세했다.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랍스터는 일반적으로 한 마리당(450~500g) 2만 5000원대에 유통돼 왔다는 점에서 ‘통큰 치킨’과 마찬가지라는 평가다. 이에 질세라 롯데마트 역시 활 랍스터를 한 마리당 1만 5800원에 내놓아 이마트의 저가 공세에 맞서고 있다.
이처럼 물건을 파는 대형마트들이 저가제품 판매 경쟁에 뛰어든 데 이어 대기업들까지 저가제품 출시 경쟁에 편승하는 흐름이 계속되자 중소업체들과 영세 상인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어 일부 품목은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
“아이디어 가로챘다” 티격태격
대형마트에서 싼값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분쟁을 일으키는 촉매제로 작용했다면 IT 업계 내에선 아이디어 경쟁이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회원을 유치하려는 대형 통신사들이 장기간에 걸쳐 연구한 자신들의 아이디어 상품 등을 가로채 ‘통큰 서비스’인 양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는 게 분쟁 당사자들의 주장이다.
현재 중소기업과 소송을 벌이고 있는 대형 통신사로는 SK텔레콤과 KT가 있다. SK텔레콤은 휴대폰 내 내비게이션 기능을 하는 ‘T맵’을 놓고 팅크웨어라는 내비게이션 업체와 분쟁 중이다. 팅크웨어는 그동안 380개의 내비게이션 핵심기술 특허로 관련 시장 점유율이 55%에 달하는 전문 업체다. 팅크웨어 측은 주변 교통정보와 차선 정보 제공에 관한 특허 기술을 SK텔레콤 측이 무단 도용해 T맵 서비스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SK텔레콤 관계자는 T맵과 팅크웨어와의 특허 분쟁과 관련해 “팅크웨어와 T맵 기술이 충돌이 될 만한 것은 별로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팅크웨어와의 관계는 상생협력 문제가 아니다. 분쟁화 될지 여부도 불분명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분쟁으로 이어질지도 알 수 없다’는 이 관계자의 설명과는 달리 SK텔레콤 측이 7인치 내비게이션인 ‘T맵 내비’를 출시하겠다고 밝히자 팅크웨어는 물론 중소내비업체들은 울분을 토하고 있다. 또한 회원 500만 명에게 무료로 쓰게 하고, 향후에도 계속 무료 서비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KT 역시 특허 문제로 중소기업과 송사가 진행 중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서비스는 1대의 전화기로 복수의 전화번호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투폰서비스’로 문제를 제기한 업체는 가바플러스라는 중소기업이다. 가바플러스 측의 주장에 따르면 사업상 알게 된 당시 KTF의 신사업팀장이었던 A 씨가 가바플러스 측의 투폰서비스가 사업성이 크다고 보고 회사에 보고하는 대신 2004년부터 공동사업을 하기로 하자고 약속해놓고 2년 후 돌연 다른 임원들 명의로 특허를 출원해 버렸다고 한다. 이 두 소송 모두 아직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진행 중이다.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12월 29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특허분쟁이 발생하면 즉시 특허권리 무효 심판청구를 해 놓고 ‘시간끌기’ 작전으로 몰고 간다. 그러면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도중에 포기하든가 특허기술을 헐값에 넘길 수밖에 없게 된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특허 분쟁 가운데 중소기업이 패소한 사례는 2010년 기준으로 70%에 달했고, 2009년에는 54%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