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은 9단(왼쪽)과 이하진 3단. |
한국 팀은 시드를 받은 박지은 9단(28)과 국내 선발전을 통과한 이하진 3단(23), 박지연 2단(20), 문도원 2단(20), 김미리 초단(20) 등으로 구성됐다.
박지은 9단은 작년 대회 때 막판 4연승을 몰아쳐 한국 팀에 우승컵을 안기며, 지난 5회 때 막판 폭풍의 5연승으로 우승컵을 거머쥔 이민진 6단(27)에 이어 ‘정관장배의 전설’이 되었다. 대신 2010 아시안게임에서 태극마크를 달지 못한 것은 스스로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갸웃거려지는 일. 라이벌 조혜연은 일요일 대국 불가의 원칙 고수에도 불구하고 대표가 되었고 승전보를 가져와 그 공로로 9단을 받았다. 박지은은 이번 정관장배에서 아시안게임의 응어리를 풀리라 마음을 다잡고 있을 것이다.
이하진은 학업과 승부,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기사. 입단 초년 시절부터 남자 기사 못지않은 선 굵은 바둑과 대담한 승부근성으로 기대를 모았는데, 2006년 유럽으로 바둑 여행을 갔다 온 후 영어와 국제감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가, 대전에 있는 ‘솔브리지 국제경영대학교’에 입학했다.
현재 영어로 바둑 강의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프로기사 중 하나인데, 배움에 대한 욕심이 남다른 이 3단, 영어에 만족하지 못하고 중국어와 스페인어도 배우고 있다. 승부와 학업, 애매한 문제, 어려운 숙제다. 이하진은 이번에 여자 실력5인방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실력자 김혜민 6단(25)을 꺾고 정관장배 대표로 발탁된 터라 가속의 동력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명랑 대범한 성격, 보이시한 매력의 아가씨다.
▲ 왼쪽부터 박지연 2단, 문도원 2단, 김미리 초단. |
박지연 문도원 김미리 세 사람은 1991년생 양띠로 스무 살 동갑이다. 박지연은 무협지풍의 ‘박 본좌’라는 별명과 함께,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아가씨.
지난해 제12회 농심배 국내선발전에서 남자 기사들을 연파하며 결승까지 올라가 존재를 각인시켰고 제15회 삼성화재배에서는 32강에 진출하는 완력을 뽐냈는가 하면 남자 시니어 대 여자 대결인 제4기 지지옥션배에서는 초반 4연승으로 기염을 토했다. 2010 바둑대상에서 여자기사상을 수상한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눈부신 활약이었다. 정관장배와는 인연이 닿지 않아 지금까지 세 번 실패했는데, 이번에 3전4기를 이루었다. ‘본좌’라는 별명, 썩 좋은 어감은 아니나 실력이나 외모, 성품과 어울리기는 하다.
문도원은 선발전 2회전에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이슬아를 물리치고 결선에 올라가 선배 하호정 3단(31)에게 이겨 본선 입장권을 손에 쥐었다. 해말간 얼굴, 아직 사춘기 소녀의 분위기다.
김미리는 김혜림 초단(19)을 제치고 본선에 골인했다. 2009년 연구생 내신으로 입단한 김혜림은 아마 시절, 2007~2008년 시즌에 제32, 33기 ‘여류 아마국수’를 2연패한 실력. 이번 선발전 과정에서도 이민진을 꺾어 태풍의 눈으로 주목받았으나 마지막에 넘어졌다.
김미리는 2009년 시즌에 한국리그 선수로 뽑혀 주위의 부러움을 샀고, 페넌트 레이스 도중, 천재 소년 박정환을 한번 격침시켜 한동안 바둑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주인공. 당찬 소녀다.
중국 팀에서는 루이나이웨이 9단(48)을 필두로 송용혜 5단(19), 리허 3단(19), 루지아 2단(23), 탕이 2단(23)이 나온다. 예년과 비슷한 진용인데, 루이 9단이 아시안게임에 이어 정관장배에서도 중국 대표로 출전하는 것이 눈에 띈다. 지난해 루이에 대한 한국기원의 처사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거니와 논의의 시시비비를 이제는 루이 부부 자신이 자신들의 정체성에 뭐라고 한마디쯤은 할 때도 되었다는 생각이다.
일본은 아오키 기쿠요 8단(43), 요시가 미카 8단(40), 스즈키 아유미 5단(28), 지넨 가오리 4단(37), 무카이 치아키 4단(24). 지넨 가오리만 새 얼굴이고 나머지는 지난해와 같다.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이번 정관장배 우리 대표 팀의 색깔은 면면을 보았듯 우선 젊다는 것. 여자 프로 쪽에서도 세대교체의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는 조짐이다. 일본이 답보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중국도 남자 선수는 숫자가 많지만 여자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이번 정관장배도 전망은 밝다. 박지은이 믿음직스럽고 이하진의 대담성과 근성은 팀 분위기를 지킬 것이다. 1985년생 남자 기사 소띠 3총사(박영훈 최철한 원성진)를 연상시키는 양띠 3총사(박지연 문도원 김미리) 젊은 아가씨들의 발랄한 무예, 매서운 한칼도 기대된다. 새해의 출발이 상큼할 같은 예감이다.
정관장배의 총예산 7억 원이고 우승팀 상금은 7500만 원이다. 예산에 비해 상금이 좀 약한 느낌이 드는 게 한 가지 아쉬움이다. 그러나 대회 자체가 워낙 흥미로우니 넘어가자.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