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보훈연금 수령 논란의 핵심은 박 원내대표의 부친이 과연 독립유공자 자격이 있는지 여부와 직결된다. 일각에서는 박 원내대표 부친의 과거 행적 및 미심쩍은 가족사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며 그의 부친이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것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박 원내대표의 부친이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배경 및 보훈연금 수령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내막을 들여다봤다.
박원내대표의 부친 박종식 씨(1948년 사망)는 1993년 8월 15일자로 건국포장을 받았다. 국가보훈처가 밝힌 박 씨의 공적은 1929년 11월 19일 전남 목포공립상업학교에 재학 당시 일제에 항거하는 시위에 학생운동 성격으로 참여했다는 것이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독립유공자란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항거하다가 순국한 자로서 그 공로로 건국훈장·건국포장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은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의전상의 예우와 보상금, 연금, 사망일시금, 생활조정수당, 교육보호, 취업보호, 의료보호, 양로보호, 주택의 우선분양, 국립묘지 안장, 정착금 지원 등을 보장받게 된다.
박 씨의 주소지 관할인 국가보훈처 목포보훈지청 관계자에 따르면 박 씨가 독립유공자로 등록된 것은 2008년 7월 31일이다. 그리고 박 씨의 자녀들 중 보훈연금을 수령하고 있는 사람은 박 원내대표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10월부터 보훈연금을 받아온 박 원내대표는 2008년 65만 6000원, 2009년 66만 4000원, 2010년 73만 7000원씩 보훈연금을 수령해 왔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연금 인상률에 따라 매달 78만 1000원의 연금을 수령하게 된다.
문제는 일부에서 박 원내대표 부친의 독립유공자 지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연금 등 혜택을 누리고 있는 박 원내대표가 국가유공자 후손 지위를 자진반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논란의 가장 큰 핵심은 박 원내대표 부친의 과거 행적이다. 현재 박 씨가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것에 대해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은 현직 교사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정 아무개 씨다. 정 씨는 “박종식 씨는 광복 후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공산주의 행적을 벌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런 인물이 독립유공자로 지정되고 그로 인해 그 후손이 혜택을 누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박 원내대표가 과연 보훈연금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공론이 모아져야 하며 국민의 혈세로 나가는 보훈 연금은 국민적 동의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 씨 등이 문제 삼고 있는 박 씨의 행적은 과연 무엇일까. 이들은 박 씨가 1945년 해방 후 남로당 진도지역 책임자로 여수반란사건에 가담해 군경과 싸우는 등의 공산당 활동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좌익활동으로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입혔던 박 씨는 반란군이 진압되자 진도로 돌아와 숨어 생활했고, 경찰에 수배돼 도피하던 1948년 10월 23일 곽 아무개 형사 등에 의해 사살됐다는 것이다. 정 씨는 “이러한 내용은 1976년 2월 25일 진도군이 발행한 진도 군지에 기록되어 있으며 곽 형사의 친척되는 인물의 증언으로도 확인된 엄연한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1월 5일 기자와 통화한 정 씨는 “일제시대, 공산주의의 해악을 모를 때 공산주의도 민족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의 사상운동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광복 후 공산군과 합세해 인민재판을 벌이고 주민들을 향해 죽창을 휘두르고 군경과 대치하던 자가 독립유공자가 되고, 그 후손들이 연금 등 혜택을 누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결국 논란의 핵심은 일제시대 때 잠시 애국운동을 한 사실이 있다고 해도 광복 후 좌익활동을 벌여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인물이 과연 독립유공자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박 원내대표 부친의 친북 행적 의혹은 ‘수상한 가족사’로 그 불똥이 튀고 있다. 일각에서 박 원내대표의 불분명한 가족사 및 일가 친척들의 께름칙한 행적 등에 대해 강한 의혹을 제기하며 박 원내대표의 해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원내대표의 호적 문제 및 가족사에 대한 얘기들은 오래전부터 인터넷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1992년에 수정한 박 원내대표의 호적이 그의 고향 진도에서 펴낸 향토문화대사전과 다르다는 점에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선 박 원내대표의 호적에 등장하는 조부는 ‘박봉진’이지만 향토문화대사전에는 ‘박원배’라는 이름이 실려 있다. 조모의 이름이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조부가 전혀 다른 인물로 명시되어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또 박 원내대표의 부친 박종식 씨는 호적상 5남 2녀 중 장남으로 등재되어 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진도향토대사전에는 3남 3녀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세간에 드러낼 수 없는 가족사를 숨기기 위해 호적 등 관계 서류를 파기·변조하고 1992년 2월 20일자로 호적을 다시 만든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드러낼 수 없는 가족사’라 함은 6·25 때 진도군에 북한 인민군이 진주했을 당시 박 원내대표의 삼촌과 고모 등이 인민군 편에 서서 수많은 진도 젊은이들과 군민들을 북한 의용군에 징용되도록 앞장서 주민들의 분노를 샀다는 내용이다. 일각에서는 진도군 무공 수훈자 회장인 최 아무개 씨의 증언 등을 근거로 박 원내대표의 삼촌과 고모는 9·28 수복 후 인민군과 함께 도주하다가 주민들에게 붙잡혀 맞아 죽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의 삼촌은 고군면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는 인물이고, 고모는 호적에서 사라진 인물일 것이란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박 원내대표 부친이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이유는 무엇일까. 1월 4일 기자와 통화한 국가보훈처 김성민 사무관은 “현재 독립유공자 심사는 유족의 신청과 발굴에 의해 이뤄지고 있지만 95년 이전에는 유족의 신청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 씨의 경우도 유족의 신청에 의한 것이었다”고 심사가 이뤄진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김 사무관은 박 씨가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것에 대해서는 “일제 항거시위에 참가한 공적이 인정되어 건국포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박 씨의 광복 후 좌익활동 논란에 대해서는 “일부에서 그런 주장들을 하고 있지만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것이기에 심사에 반영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일단 당시 심사는 1945년 이전 박 씨가 항일행적을 한 사실에 기인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또 유공자 등재는 순전히 본인의 공적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에 박 씨의 가족사나 호적 문제 등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 사무관은 심사의 객관성과 관련해서는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학자들을 비롯한 전문가들을 심사위원으로 둔 별도의 심사위원회가 있다. 유공자 등재는 보통 심사위원 10명 이상의 동조하에 이뤄진다. 각기 다른 인물들로 구성된 1심사위원과 2심사위원들이 2번에 걸쳐 심사를 하는데 그래도 합치가 안되면 합동심사위원회까지 열리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부친의 유공자 자격 논란 및 각종 의혹들과 관련해 박 원내대표 측은 “답변할 필요도 없다”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박 원내대표실 윤영두 보좌관은 “개인이 독립유공자로 해달라고 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보훈처에서 엄격한 심사를 거쳐 내린 결정을 재차 문제삼는 것에 대해 우리 측에서 무슨 해명이 필요하겠나. 박 원내대표 부친이 독립유공자 자격이 되는지 여부는 결정을 내린 보훈처에 물어보면 될 일 아닌가”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윤 보좌관은 이어 “이미 박 원내대표 조부와 관련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이들을 고소한 바 있으며 그들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인터넷상에서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 원내대표 부친이 광복 후 좌익활동을 벌였다는 주장 및 호적 등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각종 의혹에 대해서도 그는 “터무니없는 얘기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들에게 어디 한번 증명해보라고 하라”고 일축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