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바집 비리 사건과 관련 강희락 전 경찰청장과 이길범 전 해양경찰청장이 금품수수 혐의를 받고 있다. 위 사진은 서대문구 경찰청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검찰이 함바집 로비사건에 대한 내사에 착수하게 된 것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설업계에 함바집 운영권과 영업권을 장악하고 전국을 무대로 건설사에 불법로비를 벌이는 ‘큰손’이 있다”는 첩보가 사정당국에 접수된 것이다. 검찰이 파악한 큰손의 정체는 바로 전남 목포 출신의 60대 노신사 유 씨였다.
주변인들에게 급식업체 사장 혹은 동남아 주택 사업가로 자신을 소개한 유 씨는 지난 2007년부터 정유 플랜트 공장과 대단지 아파트 등 규모가 큰 건설현장을 무대로 활동해온 인물이었다.
유 씨가 정·관계 유력인사들과 친분을 과시하며 함바집 이권에 개입해왔다는 구체적인 첩보를 입수한 검찰은 한 달여간의 추적 끝에 지난해 10월 유 씨를 체포했다. 또 유 씨로부터 로비를 받은 대형 건설사 임원 9명을 불러 조사를 진행했다.
건설현장 내 인부들을 상대로 ‘밥장사’를 하는 함바집은 운영권만 확보하면 공사가 진행되는 수년 동안 독점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기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되는 이권사업이다. 업계에 따르면 500명 인부가 동원되어 1000가구의 아파트단지가 건설되는 현장일 경우 함바집이 올리는 연 순수익은 3억~4억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막대한 수익이 보장되다보니 운영권을 따기 위해 각종 인맥을 동원하고 로비를 벌이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빽’을 가진 특정인이 운영권을 독차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수사 과정에서 유 씨가 강희락 전 경찰청장과 이길범 전 해양경찰청장에게 돈을 건넸다고 진술하면서 수사는 새로운 국면으로 급선회했다. 결국 수사는 정국을 뒤흔들 전방위 권력형 로비 사건으로 방향을 틀게 된 것이다. 이제 검찰 수사의 핵심은 마당발로 알려진 유 씨가 정·관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어느 선까지 발을 뻗쳤고, 구체적인 로비 내용이 무엇인지로 집약되고 있다.
이 와중에 검찰이 유력인사들의 명단이 빼곡이 적힌 유 씨의 수첩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타고 있는 분위기다. 유 씨와 어떤 이유로든 접촉한 적이 있는 인사들이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선 전직이지만 최고위 수뇌부의 연루 의혹으로 인해 경찰은 패닉상태다. 강 전 청장은 지난 2009년 유 씨로부터 함바집 운영권을 알선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억대의 금품을 받고 제3의 인물을 통해 건설업자에게 청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 씨는 “지난 2009년 강 전 청장이 취임한 뒤 축하금 명목으로 두 차례에 걸쳐 3500만 원을 건넸다”고도 진술했다. 또 이 전 청장은 유 씨로부터 총경급 이상 경찰 간부 여러 명에 대한 승진인사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았으며 3500만 원을 받고 인천 송도신도시 건설현장의 운영권을 알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은 상당한 증거와 증언들을 확보했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어 적지 않은 파문이 예고되고 있다.
윤 씨는 각계각층의 유력인사들과 쌓은 친분을 동원해 따낸 함바집 운영권을 2차 브로커들에게 팔고 이들 2차 브로커는 운영권을 실제 건설현장 식당 업자들에게 되파는 형태로 사업을 해왔다. 평소 고위 유력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했던 윤 씨는 주변인들에게 인사 및 알선 청탁을 빌미로 뒷돈을 챙기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과정에서 윤 씨는 끝자리가 다른 4개 이상의 이름을 쓰고 13개의 휴대전화를 사용하면서 과감한 로비를 벌여왔다. 2차 브로커들은 유 씨를 ‘유 회장’ ‘유 영감’으로 불렀다.
사건의 핵심은 유 씨가 어떻게 함바집 운영권을 놓고 건설업자-정관계 인사-함바집 운영업자를 연결하는 브로커로 활약할 수 있었는지 여부다. 특히 자본금 20억 원 남짓한 급식업체 대표인 유 씨가 어떻게 대형건설사 10여 곳의 임원들은 물론 경찰 수뇌부까지 접촉할 수 있었는지가 이번 사건을 풀 마스터키다. 현재 유력인사들을 향한 윤 씨의 문어발식 로비행각이 수면위로 드러나면서 이 사건은 전형적인 권력형 로비사건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검찰은 목포 출신인 윤 씨가 지연을 이용해 호남권 인사들과 친분을 유지하는 동시에 영남권 인사들과도 안면을 트는 등 전국을 무대로 활동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유 씨는 학연과 지연 등을 동원해 접근한 뒤 친분을 쌓은 인사들을 통해 다른 인물들을 소개받는 방법으로 더욱 탄탄한 인맥을 구축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함바집 운영권을 자유자재로 따내는 윤 씨가 전국적으로 든든한 ‘빽’을 두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가장 큰 문제는 현재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른 인물이 전직 두 청장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김병철 울산지방경찰청장과 양성철 광주지방경찰청장, 김중환 전 경찰청 수사국장과 이동선 전 경찰청 경무국장 등 전·현직 치안감과 경무관, 총경급 간부 등 10여 명도 수사대상으로 올라있다.
유 씨의 계좌 추적결과 정·관계 인사들과의 수상한 거래정황도 포착됐다. 전 농림부 장관 L 씨는 차관급으로 재직하던 2005년에 5000만 원, 장관급이던 2007년에 1억 원이 각각 L 씨 동생의 계좌로 유입된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이 돈이 청탁대가로 L 씨에게 건네진 것인지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은 또 유 씨가 조영택 민주당 의원과 이군현 한나라당 의원에게 각 500만 원의 후원금을 낸 사실을 확인하고 대가성 여부를 파악 중이다. 해당 의원들은 유 씨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 돈이 청탁과 함께 건네진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유 씨가 전 행정자치부 차관과 강원도의 공기업 사장, 정계 인사가 설립한 재단 실무진으로 일한 인물 등에게 로비를 벌인 정황도 포착하고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함바집 운영권 비리로 시작된 이번 사건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정관계를 뒤흔드는 ‘제2의 윤상림 사건’으로 비화될지 정·관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