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마당발’일까. 아니면 희대의 ‘사기꾼’일까. 건설현장 식당(함바집) 운영권 브로커 유상봉 씨(65)에 대한 관심과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함바 게이트’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유 씨가 전현직 경찰 수뇌부는 물론 정·관계 유력인사들을 대상으로 전 방위적인 로비를 펼친 정황을 포착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사정당국 주변에선 ‘유상봉 리스트’마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유 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 리스트에 올라 있는 정·관계 유력인사들의 명운이 엇갈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번 소용돌이의 중심에 선 유 씨 인생스토리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건설현장 브로커로 시작해 경찰과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과 청와대까지 손을 뻗친 유 씨의 막장 로비 인생을 따라가 봤다.
2006년 법조계와 정·관계를 뒤흔들었던 이른바 ‘윤상림 게이트’의 주역이었던 법조브로커 윤상림 씨. 그는 개인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경찰서 보안과장의 도움으로 군사정권 시절 핵심 멤버들과 친분을 쌓았다. 이후 윤 씨는 이들의 선거운동을 돕고, 그 대가로 막대한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군 관련 사업권을 단독으로 따내는 등 탄탄대로를 걸었다. 윤 씨는 막강한 군 인맥을 등에 업고 법조계 인사들까지 쥐락펴락하는 거물급 브로커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정권 실세 인맥을 배경으로 브로커로 성장한 윤 씨와 달리 ‘함바 게이트’의 주역인 유 씨는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했다. 전라남도 완도가 고향인 유 씨가 본격적으로 사업가이자 로비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0년대 말경이다. 마흔을 갓 넘었을 시기에 그는 고향을 떠나 부산으로 옮겨온 후 브로커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그의 아내인 A 씨 쪽 가족들이었다. 유 씨는 건설업이 한창이던 2000년경 부산으로 내려와 서서히 자신의 인맥을 구축하는 방법을 터득해 가기 시작했다.
그가 사람을 만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고향 향우회를 통해서였다. 인맥을 넓히기 위해 ‘호남 출신’이라는 점을 적극 활용했다. 모임에 참가해 고위급 인사들과 안면을 튼 후 호형호제 하는 사이로 발전시켜 그 사람들을 통해 다시 또 다른 고위직 인사들을 소개받았다. 얼굴만 몇 번 본 사이일지라도 다른 자리에선 막역한 사이인 양 허세를 떨어 다른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도 했다. 무엇보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과의 친분은 그의 세력확장 과정에서 큰 지렛대 역할을 했다. 그는 강 전 청장과의 인맥을 통해 경찰조직 전체를 아우르는 권력을 얻게 된 것이다.
문어발식으로 알게 된 인맥들을 배경으로 유 씨는 건설업체 관계자들에게도 쉽게 접근했다. 방식은 단순했다. 그는 건설 관련 전문지를 통해 건설현장 책임자와 공사 계획 등을 파악한 뒤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로비활동을 벌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건설업자를 만나면 어느 지역에서나 통하는 마당발로 행세했다. 유 씨가 화려한 언변으로 다가가면 건설업자들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유 씨가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향후 있을 각종 소송과 민원을 조용히 처리해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 씨가 건설업체에까지 인맥을 넓혀가자 자연스레 함바집 운영권을 노리는 급식업체들도 자석처럼 유 씨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에게 로비자금을 지급하고 기다리면 순서대로 운영권을 따낼 수 있었고, 이는 관행처럼 굳어져 갔다. 이후 유 씨는 아예 브로커들의 브로커로 군림했다. 급식 운영업체들과 직접 접촉하는 2차 브로커들에게 자신이 따낸 함바집 운영권을 되파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번 돈은 그동안 친분을 쌓은 경찰 수뇌부와 정·관계 인사, 공기업과 사기업을 망라한 인맥들에게 상납하는 로비자금으로 활용했다. 그는 로비 대상 인사들에게 현금 봉투를 건네기도 하고 고가의 선물공세를 하기도 했다. 업계 내에서는 그가 고위 관료 아들의 결혼식에 30평대 아파트를 선물했다는 소문이 돈 적도 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유 씨는 자기 인맥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힘들여 닦아 놓은 관행을 자기 손으로 교란시키면서 유 씨는 결국 거물급 브로커에서 사기꾼으로 전락하게 된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인맥을 관리하려다보니 더 많은 로비자금이 필요해졌고, 이 때문에 무리수를 둔 것이 화를 좌초한 것이다. 그는 함바집 운영권을 빌미로 여러 급식업체와 이중계약을 하거나 돌연 수수료를 올려줄 것을 강요하면서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식으로 협박을 일삼았다. 때문에 유 씨에 대한 고소·고발건만 해도 서울 송파와 경기 성남, 안산 등지에서 4~5건을 비롯해 최소 10건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 씨는 2006년 재개발 아파트 함바집 비리 건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것 외에는 그동안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고, 대부분 합의 등으로 유야무야됐다.
하지만 유 씨는 계약사기를 당한 급식업체 업주 6명이 단체로 검찰에 고발장을 접수하면서 결국 덜미를 잡히고 만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유 씨는 그동안 관리해 오던 강 전 청장을 비롯한 전·현직 경찰 고위직 간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직면한 유 씨가 그동안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던 유력인사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아무도 그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유 씨가 ‘로비 리스트’ 명단을 하나 둘씩 폭로하고 있는 배경에는 믿었던 사람들에 대한 강한 배신감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유 씨의 건강악화 및 가족과의 관계 단절 역시 심경 변화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유 씨는 함바집 브로커로 활동하는 동안 변호사인 자신의 사위 B 씨에게 변호를 맡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위 B 씨는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유 씨가 이혼으로 재산의 많은 부분을 잃고 갑상선암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됐다고 전했다. 유 씨는 각종 소송에 휩싸이자 도피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가족과의 관계도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위 B 씨 역시 유 씨가 지난해 10월 검찰에 체포된 이후부터는 그와 관련된 모든 사건에서 손을 뗐다고 한다. 다른 가족들 역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유 씨와의 접촉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때 건설업계는 물론 경찰과 정·관계에 구축한 마당발 인맥을 배경으로 거물 브로커로 승승장구했던 유 씨. 욕심이 과했던 탓일까. 실패한 로비탓일까. 그는 결국 자신의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버림받고 차가운 감옥에서 긴긴 겨울밤을 보내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