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파들의 침묵 속에 구자철은 아시안컵 C조 조별리그 1, 2차전 바레인 및 호주전에서 무려 3골을 몰아치며 기분 좋은 항해에 큰 기여를 했다. 도하의 땅에서 국내외 외신 기자들의 눈을 사로 잡고 있는 구자철에 대해 알아본다.
포지션 변화, 이상무!
▲ 14일 오후(한국시간) 아시안컵 C조 조별예선 호주와의 경기에서 선취골을 넣은 구자철이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축구 국가대표팀 조광래 감독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다. 당초 원톱의 배후를 받치는 섀도 스트라이커는 ‘캡틴’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몫이었다. 하지만 ‘멀티 요원’ 박지성이 본래 위치인 왼쪽 측면에서 훨씬 위협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구자철이 중앙으로 이동하게 됐다.
현재 대표팀 공격라인의 기본 골격은 지동원(전남)이 최전방에 위치하고, 측면 윙 포워드 좌우에 박지성과 이청용(볼턴)이, 그 가운데에 구자철이 배치돼 4각 편대를 이루는 형태다.
조 감독의 선택은 주효했다. 어린 선수들의 능력을 발굴하는 남다른 능력을 발휘하는 조 감독이기에 구자철의 포지션 변경은 일종의 모험이기도 했지만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다.
바레인전(2-1 한국 승)이 열린 도하 알 가라파 스타디움을 찾은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구)자철이가 저 위치(섀도 공격수)에서 뛰는 건 처음 봤다”면서도 “대표팀 포지션을 놓고 뭐라 평가할 수 없지만 생각보다 훨씬 잘하는 것 같다. 패스도, 슛도 여러 면에서 좋은 선택인 것 같다”고 칭찬했다. 조 감독도 “자철이가 아주 잘해주고 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플레처+루니
▲ 구자철이 아시안컵 C조 2차전 호주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볼을 다투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사실 구자철은 골 욕심은 많지 않다. 인터뷰 때마다 “그냥 좋은 모습을 보여주다 보면 기회가 올 것이고, 이를 최대한 살려내는 게 목표”라는 정답성 멘트를 반복할 뿐이다. 아시안컵 득점왕을 노린다든지 등등 색다르고 재미있는, 독특한 코멘트를 기다리는 축구 기자들에게는 썩 영양가가 없다. 그래서 ‘애늙은이’ ‘샌님’ ‘노친네’ 등 20대 초반 어린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닉네임이 붙는 것이다.
하지만 구자철의 돌파 능력은 생각보다 뛰어나다는 게 대다수 평가다. 이번 대회에 선수단과 모든 동선을 함께 하는 조영증 대한축구협회 기술교육국장도 “자철이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수비에 가까운 포지션이다 보니 디펜스를 좀 더 편안하게 생각하는 게 있지만 분명 공격에도 남다른 감각이 있다”고 호평했다.
항간에서는 구자철의 새로운 플레이를 보며 플레처가 아닌, 루니에 가깝다는 얘기를 한다. 물론 힘과 몸 싸움 능력에선 구자철이 루니보다 한 수, 아니 두 수는 아래다. 다만 적절한 드리블을 가미한 공간 창출 능력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찬스를 포착하고, 적절한 위치를 찾아가는 움직임도 나름 괜찮다.
그러나 구자철에게도 숙제는 있다. 체력적인 열세다. 호주전 당시 전반전까지는 빼어난 기량을 과시했지만 후반 중반 이후 갑작스레 체력 저하를 보이며 결국 교체아웃 됐다. 물론 지난 시즌 K리그를 마친 뒤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는 이유도 크지만 90분 내내 고른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해외 진출은 어떻게?
구자철은 스위스 프로축구 영 보이스 클럽의 러브 콜을 받고 있다. 작년 1월에도 남아공월드컵을 준비 중이던 허정무호의 남아공 전지훈련 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블랙번 로버스로부터 입단 테스트 제의를 받을 정도로 기량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영 보이스가 구자철이 입단을 타진할 정도로 크게 매력적인 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스위스 프로팀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도 아닌,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대회 조별리그에 나설 수 있다. 스위스가 유럽 내에서 랭킹이 상위 수준이 아닌 탓이다.
제주 관계자들도 구자철이 영 보이스로부터 러브 콜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다른 상위 리그라면 몰라도 스위스는 아닌 것 같다. 물론 선수도 좋고, 팀에서도 간절히 원한다면 생각해볼 일이지만 큰 메리트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도하에서 만난 외신 기자들도 “구자철 정도의 기량이면 유럽 상위권 리그에서 활약할 정도는 충분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 스포츠닛칸의 한 기자는 구자철이 영 보이스 입단을 희망한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뒤 깜짝 놀라며 “그는 혼다 못지않은 테크니션인데, 왜 스위스로 가려는지 모르겠다”고 어깨를 으쓱했다.
원하는 클럽들이 아직 많이 없어 그런 게 아니냐는 자신만의 이유를 생각한 뒤 “구자철이 서두르지 않는다면, 충분히 좋은 기회가 많이 따라올 것이다”던 로이터 통신의 또 다른 기자도 “지금 아시안컵에는 수많은 유럽 클럽 스카우터들이 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과 아시안컵은 싼 값에 재능 있는 선수 수급을 할 수 있는 스카우트의 좋은 무대이다. 한국이 대회 기간 끝까지 남는다는 가정 하에 구자철은 더욱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구자철이 입버릇처럼 반복하는 ‘좋은 찬스가 온다면’이란 말도 해외 진출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도하=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