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머릿속이 하얘져서 그냥 미친 듯이 이리저리 뛰어다녔어요.”
지난 11월, 테스트를 받기 위해 찾은 함부르크 구장. 김병연은 미니게임에 투입돼 19세팀 소속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다. 손웅정 감독, 손흥민, 함부르크 구단 관계자들이 보는 앞이었다. “긴장 탓인지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뛰어다니기만 했다. 독일 선수들이 공을 안주면 화도 막 내면서. 미니게임 끝나고 시무룩해져서 들어오는데 감독님과 흥민이 형이 ‘잘했다. 이렇게만 해라’라고 격려해줘 그때부터 자신감을 갖고 뛸 수 있었다.”
함부르크 구단은 김병연을 일주일간 테스트하겠단 애초의 제안을 변경해 3주 동안 그를 구단에 머물게 했다. 게다가 16세에 불과한 김병연을 19세 유소년팀과 2부 리그에서 뛰게 하고, 그들과 똑같은 훈련량을 소화하게 했다.
손 감독은 “함부르크 구단에서 항공료를 비롯해 병연이가 독일에 머무는 기간 동안의 식비, 숙박비를 전부 지원할 정도로 병연이의 잠재력, 성장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함부르크 측에서 병연이의 유소년팀 입단을 확정하고 현재 서류 절차를 밟는 중이다. 2월부터 정식으로 합류하게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김병연은 당시 손 감독이 지도하는 축구교실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처음엔 물음표 투성이었다. 평소 상상하던 훈련 방식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김병연은 “미니게임, 슈팅 연습도 없이 2시간 동안 리프팅만 했다. 훈련 내내 볼 컨트롤만 배우니 조바심이 났다”며 입을 연다.
1년 남짓 손 감독에게 기본기를 배운 김병연은 시합 경험을 쌓고 싶어 축구 명문 중학교에 진학한다. “중학교에 가서 왜 기본기가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손 감독님께 기본기를 1년밖에 배우지 않았는데도 내가 기본기가 뛰어난 편에 속하더라. 학교에선 볼을 다루는 훈련보다는 체력위주의 훈련이 많아 부상이 잦았다. 그럴 땐 학교에 휴가 쓰고 춘천에 가서 훈련을 받곤 했다.”
학교와 춘천FC를 오가며 두 배로 훈련하던 김병연은 손 감독의 추천으로 함부르크행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 가본 유럽, 그동안 꿈꿔오던 함부르크 그라운드에 섰을 때 실감이 나질 않아 연신 볼을 꼬집었다고.
함부르크에서 훈련한 3주간, 김병연은 한국과 차원이 다른 독일 축구 환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유소년팀에 마련된 잔디구장만 총 12개(천연잔디 10면, 인조잔디 2면). 1부, 2부 리그 선수들을 위한 훈련장은 따로 마련돼 있었다. 최적의 환경에서 축구를 즐기다 돌아온 김병연은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함부르크 구장이 눈에 아른거렸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부러웠던 건 독일 축구 팬들의 응원 열기였다.
“자기가 응원하는 11명의 선수를 보기 위해 7만 명이 모여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내 자신에게 엄청난 동기부여가 됐다.”
세대와 연령을 초월한 팀 분위기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선후배간 엄격한 위계질서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친구처럼 지내더라. 좋은 플레이가 나오면 ‘너 잘한다’고 바로 엄지손가락 들며 칭찬해주고, 밥 먹으러 가자며 식사도 챙겨주고, 편하게 하라면서 공도 많이 줬다.”
김병연이 함부르크 환경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건 ‘분데스리가 선배’ 손흥민의 조언 덕분이었다.
“흥민이 형이 감독, 코치 앞에서 동료들이랑 계속 떠들라고 했다. 그래야 ‘저 선수, 의욕 있구나’하고 느낀다면서. 그래서 라커룸에서 영어, 독일어, 한국어를 섞어 손짓 발짓하며 열심히 이야기했다. 그러자 선수들과도 금세 친해졌고 감독님도 잘해주셨다.”
특히 ‘내 실력을 100이라고 볼 때 110을 하려 애쓰지 말고, 90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라’는 손흥민의 충고가 마음에 와 닿았단다.
“흥민이 형이 처음 함부르크에 왔을 땐 인종차별이 있었다고 했다. 동료 선수들이 비꼬면서 일주일 동안 패스를 아예 안 해준 거다. 참다 못한 흥민이 형이 같은 편 볼을 뺏어서 상대편 선수들을 다 제치고 골을 넣은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론 선수들이 패스를 열심히 해주었다고 들었다. 선수들도 내가 흥민이 형 후배라는 걸 알고 더 잘해준 것 같다.”
손흥민 역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본인보다 고작 두 살 어린 김병연을 ‘애기’라 칭하면서 “어릴 때부터 봐서 그런지 병연인 내게 동생 이상이다. 내 아들 같기도 하고. 함부르크 와서 잘할 거라 믿는다. 나도 열심히 도와줄 거다”라며 후배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이제 막 분데스리가를 향해 첫 단추를 채운 김병연. 독일 진출을 눈앞에 둔 그지만 부담감보단 설렘이 더 크다.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나만의 장점을 하나 만들고 싶다. 흥민이 형과 같은 길을 걷고 싶다. 유소년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서 분데스리가 1부 리그에 서고 싶다.” 그의 롤 모델 역시 손흥민 딱 한 명뿐이다. “나중에 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흥민이 형은 스트라이커로 함께 경기에 나가 내 패스를 받아 흥민이 형이 골을 넣는 게 목표다.”
16세 겨울, 김병연의 눈앞에 분데스리가의 서막이 올랐다. ‘제2의 손흥민’으로 떠오를 그의 성장을 기대해보자.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