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얏트호텔에서 바라본 한남동의 고급주택가 전경.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조선시대에는 한강진이라는 이름으로 군대가 있던 곳이었지만, 한남동에는 지금 한국의 내로라하는 재벌들이 어느 지역보다 많이 살고 있다. 과거 재벌들이 많이 살던 곳이 성북동이었다면 지금은 한남동이 재벌가의 1번지인 것이다. 한남동에 살고 있는 재벌가의 현황을 현장 취재했다.
최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이사를 한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다.
그의 집인 한남동 7××번지 집 바로 옆에 이건희가의 고미술품과 현대미술품 소장품들을 전시한 ‘리움’이 문을 열면서 이사를 결심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의 새 집은 현재 공사중인 인근 이태원동 135-××호다. 이 회장은 계속 남산 어름의 한강이 보이는 집을 고수하는 셈이다.
일단 한남동 일대에 사는 가장 큰 부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꼽을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은 하얏트호텔을 등지고 선 남산 기슭 한남2동에, 정 회장은 한강에 보다 붙은 한남1동에 살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선대인 이병철 회장이 장충동과 한남동 일대에 살았던 점을 감안하면 터줏대감인 셈이다. 이에 반해 정몽구 회장의 부친인 정주영 회장은 4대문 안의 중심축인 청운동에서 살았다.
한남동에 가장 큰 토지를 소유한 사람은 현대차 그룹의 정몽구 회장이다. 정 회장은 지난 70년대 중반 일찌감치 한남동 땅을 사들여 집을 지었다. 그의 집이 들어선 땅의 전체 토지 면적은 3백40여 평. 이건희 회장을 비롯, 삼성가의 오너들을 제외하고는 가장 넓은 부지다. 정 회장의 자택은 한남1동 1-×××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그의 집은 두 동으로 나뉘어 있다. 한 동은 단독주택 두 가구이고, 다른 한 동은 근린생활시설용 공간으로 알려져있다. 단독주택 두 가구는 벽돌조 슬래브와 시멘벽돌로 만들어져 있는데, 1층이 60여 평, 2층은 50여 평 정도다. 다른 동은 거주용이 아닌 생활시설 공간으로 지어져 있는데, 겉에서 보면 철근 콘크리트와 시멘벽돌로 지어져 있다. 이곳은 1층 70여 평, 2층 50여 평으로 조금 큰 편이다.
한남동의 터줏대감은 삼성가다. 이건희 회장가는 선대부터 이곳에 살아서인지 2세들도 한남2동에 모여살고 있다. 특히 하얏트호텔 바로 밑은 ‘삼성 이씨’ 집성촌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하얏트호텔 바로 밑 러시아대사관을 지나서 금호그룹 박성용 명예회장 집에서부터 삼성가를 포함한 재벌총수 동네가 시작된다.
▲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자택. | ||
가장 전형적인 예가 박성용 명예회장의 자택. 박 명예회장의 자택은 위쪽에서 보면 은빛으로 마감한 외부가 아담해 보이지만, 밑으로 돌아서 한참 가야 하는 주차장 출입구쪽에서 보면 깎아지른 옹벽으로 버티고 서 있어서 항공모함을 연상케 한다. 때문에 탁트인 시야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돌출된 위치로 인해 한남동 재벌타운의 랜드마크 노릇도 하고 있다.
박 명예회장의 집은 네 필지의 땅을 붙여서 지었다. 한남2동 733-××, 748-×, 748-×, 748-×× 등의 지번을 깔고 앉은 이 집은 지하 3층, 지상 2층의 큰 규모. 1층과 2층이 각각 90여 평, 60여 평 규모이고 지하 3층은 주택과 주차장이다.
박 명예회장의 동생인 박삼구 아시아나 회장도 한남1동 11-×××번지에 살고 있다. 전체 대지는 1백80여 평인데, 이 중 개인 정원이 1백여 평이다. 1층과 2층 집은 모두 벽돌로 이뤄진 단아한 형태로 돼 있다. 재미있는 점은 박 명예회장과 박 회장의 집이 모두 그룹의 경영상 위기로 말미암아 은행에 근저당돼 있다는 점이다.
박성용 명예회장의 자택은 여느 재벌총수 집과는 달리 외부에 개방되기도 한다. 열성적인 문화예술 후원자인 박 명예회장은 유망한 음악도들을 집으로 초청해 하우스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그때는 방문자들에게 박 명예회장 댁에서 직접 조리한 음식을 대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박 명예회장의 집은 현재 공사가 한참 진행중인 주택 공사현장과 맞붙어 있다. 이 집은 한남동 일대에서도 가장 튀어나온 부분에 해당한다. 박 명예회장의 집과 수평을 맞출 경우 항공모함의 수평한 데크를 연상시킨다.
때문에 내년 10월을 목표로 공사중인 이 집이 완성되면 한남동 일대에서 가장 탁트인 시야를 확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집의 주인은 누구일까.
이 집은 지난 2003년 초 LG전자가 사들였다가 3개월 후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 넘어갔다. 구 회장은 지번이 둘로 나뉜 이 땅에 공사를 벌이고 있는 것. 구 회장 집이 완성될 경우 이건희 회장 집을 비롯해 거의 모든 집을 내려다 보게 된다. 내년 겨울에는 구 회장과 금호의 박 명예회장이 이웃사촌이 되고 한국 3대그룹 총수가 한남동 주민이 되는 셈이다.
금호 박 명예회장의 집 현관에서 왼쪽으로 꺾어서 50m쯤 들어가면 이건희 회장의 여동생이자 신세계그룹 총수인 이명희 회장의 집이 나온다. 재미있는 점은 이명희 회장의 집 골목이다. 이명희 회장 집과 현관을 마주하는 집이 이 회장의 외동아들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의 집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집이 있다.
골목 하나를 모두 재벌가가 차지하고 있는 것. 김 회장은 이곳 집의 소유권은 그대로 둔 채 유엔빌리지쪽으로 이사간 것으로 전해진다.
마주보고 있는 이명희 회장집과 정용진 부사장집은 여러 모로 대조적이다. 이 회장은 담을 따라 나무를 울창하게 심어 2층집임에도 거의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이와는 달리 이 회장 댁보다 조금 작은 규모의 정 부사장 집은 밖에서도 훤히 보이게 지어졌다.
스타일도 이 회장 집이 이층에 기와를 올린 70~80년대 ‘양옥집’ 스타일인 데 비해, 정 부사장 집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탓인지, 직사각형의 회랑 형태로 지어진 본체 외부를 유리와 콘크리트로 그대로 드러내는 현대적 스타일이었다. 이런 스타일의 집은 90년대 이후 성북동이나 한남동에 세워진 부호들의 집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그 골목을 나와 경사진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박성용 명예회장집 주차장 출입구 쪽으로 나오게 된다. 바로 그 골목 사거리에 이명희 회장의 언니인 이숙희씨 집이 보인다. 이숙희씨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 회장의 둘째 딸. 또 이숙희씨의 남편은 구자학 아워홈그룹 회장이다.
이숙희-구자학씨의 결혼은 삼성과 LG의 결혼이라는 점에서도 재계의 화제를 모았다. 구자학씨가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셋째 아들로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동생인 것.
▲ (맨위)한남동 매봉산 기슭에 위치한 구본무 회장의 자택. 구 회장은 현재 한남2동에 새 집을 짓고 있다. (아래왼쪽)박성용 명예회장 집은 한남동 재벌동네의 ‘랜드마크’다.(아래 오른쪽)이명희 회장 집 골목. 김준기 회장의 집도 있다. | ||
이층 슬래브 구조인 이숙희씨의 집은 동생인 이명희 회장의 집 규모(1층 면적만 68평가량)와 비슷하다. 다만 이층이 좀 더 크고 건물 외부를 검은색 계열의 돌로 치장했을 뿐 특이한 점은 없었다.
이숙희씨 집을 지나 경사로를 따라 50m쯤 내려가면 이건희 삼성 회장 집이 보인다. 형제들 중 가장 큰 규모(1층 면적만 1백20평가량)인 이 회장 집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고, 그 주위를 리움이 감싸고 있다. 이 회장 집 주변은 삼성생명이나 삼성전자가 지은 리움 등의 시설물이 회랑처럼 감싸고 있고, 근처에 삼성 계열의 세콤 직원 체육관이 있는 등 그 일대가 삼성타운화됐다.
이건희 회장쪽에선 일반인들이 몰려오는 리움 개장에 맞춰 이사를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건희 회장의 새집은 이태원동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의 집 골목에서 50m쯤 내려오면 장충동에서 이태원 방향의 도로를 만나게 된다. 그 골목 초입에 삼성미술관 사무실 건물이 있다. 2년 전만 해도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부사장 소유의 오픈타이드라는 벤처회사의 사무실이 있던 바로 그 자리다. 즉 이 삼성미술관 건물부터 박성용 회장 집까지 올라가는 길이 바로 삼성타운인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넓게 보아 이 한남동에 국내 3대 재벌이 모두 모여있다는 점이다. 위치가 조금씩 다를 뿐이지 남산 기슭에 이건희 회장, 한강쪽으로 정몽구 회장, 매봉산쪽에 구본무 회장 집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남2동에 새 집을 짓고 있는 구본무 회장은 한남동 직업훈련학교 뒤편 매봉산 기슭에 살고 있다. 구 회장의 집은 한옥식과 양식을 혼합한 형태다. 미색의 나무 대문과 전통기와로 지붕을 덮고 처마까지 갖춘 한식 스타일을 따르고 있는 것. 대문 입구의 소나무에는 풍경까지 달려있어서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LG가는 구본무 회장의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의 집이 ‘북촌’으로 유명한 계동에 있었다. 그러다 80년대 초 정주영 회장이 휘문고등학교 터를 사들여 계동 사옥을 짓고 들어오면서 위치상 현대그룹 건물에서 구 회장 안방까지 들여다 보이게 되자 계동 집을 비우고 이사했고, 구본무 회장도 한남동에 터를 잡은 것.
구 회장이 이 땅을 매입한 시기는 지난 1991년 5월이다. 구 회장의 자택이 있는 한남2동 726-×××번지는 땅 전체 부지만 3백여 평. 그의 집은 단층주택이다. 정원을 제외한 평수만 90여 평에 달한다.
구본무 회장 집 밑쪽의 도로변에 신격호 회장 소유의 집이 있는데, 현재 신 회장은 이곳에서 살지 않는다. 집 명의도 계열사인 (주)롯데기공 명의로 돼 있다. 토지만해도 2백50여 평에 달한다. 등기부등본상으로 보면 원래 이 땅은 J사업주식회사의 소유였으나, 이후 은행 담보로 들어갔다가 롯데에 넘어간 것으로 돼 있다. 신 회장은 방배동과 청파동에도 집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롯데호텔에 머물고 있다.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