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11월 경기도 성남 금광2동 여성 근로자를 위한 임대 아파트 준공식에 참석한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오른쪽)와 이대엽 성남시장. 연합뉴스 |
여권 일각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2006년 지방선거 당시 당 대표를 맡고 있었고, 이 전 시장이 친박(친 박근혜)계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대엽 사건’의 불똥이 박 전 대표에게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정치권 주변에서는 여권 핵심부가 사정당국과의 교감하에 공천헌금 등 이 전 시장과 친박계 간의 은밀한 거래를 내사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기도 하다.
‘비리 백화점’을 넘어 한나라당 차기 대권구도에 영향을 미칠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대엽 비리’ 사건의 또 다른 속살을 들여다봤다.
“이대엽 비리’ 사건은 거침없는 ‘박근혜 대세론’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다.”
최근 기자와 만난 친이계 중진 A 의원이 던진 일성이다. 1월 18일 기자와 만난 A 의원은 “이대엽 전 시장의 비리 사건은 개인비리를 넘어 한나라당의 도덕성에도 치명타를 안겼다”며 “성남시장 첫 임기(2002.6~2006.6) 때부터 각종 구설수에 오르내렸던 이 전 시장을 2006년 지방선거 때 또다시 공천해 사태를 악화시킨 당시 지도부는 반드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당 대표가 박근혜 전 대표였는데 박 전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냐’는 기자의 질문에 A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당시 공천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정치적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며 “이 전 시장은 당시 공천 과정에서 거액의 공천 헌금설이 나도는 등 잡음이 많았던 만큼 당시 당 지도부와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한 인사들 역시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하진 않았지만 다분히 박 전 대표와 친박계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대엽 비리’ 사건이 개인비리를 넘어 정치권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실제로 이 전 시장에 대한 검찰 수사 발표로 한나라당은 적잖은 도덕적 상처를 입었다. 한나라당 공천으로 민선 3, 4기 성남시장을 역임한 이 전 시장은 재임 8년 동안 조카 등 일가와 함께 승진과 관급공사 인허가 등의 명목으로 약 15억 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전 시장 일가는 이 돈을 부동산에 투자해 2배 이상의 이익을 챙기기도 했다.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이른바 ‘이대엽 왕조’의 검은 비리가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는 지난해 12월 10일 이 전 시장을 특가법상 뇌물과 제3자뇌물수수, 국고 등 손실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가뜩이나 호화청사로 물의를 빚은 바 있는 이 전 시장의 검은 비리가 검찰 수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자 성남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 전 시장이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점에서 여권 또한 불편한 심기가 역력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이 3선에 도전한 이 전 시장을 공천심사 과정에서 탈락시킨 배경에도 이 전 시장 일가의 각종 비리 의혹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전 시장은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고,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펼쳤던 황준기 한나라당 후보는 결국 석패하고 말았다. 결과론이지만 이 전 시장은 자신을 두 번이나 성남시장에 당선시켰던 친정(한나라당)과 맞서 공멸을 자초했고, 선거 패배 후에는 검찰에 구속되면서 초라하기 짝이 없는 정치인생 말년을 보내게 된 셈이다.
문제는 ‘이대엽 비리’ 사건이 이 전 시장의 개인비리에 그치지 않고 정치권으로 그 불똥이 튈 조짐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도 성남시는 인구 100만여 명에 4개의 국회의원 지역구를 두고 있어 여야 정치권이 수도권 전략적 요충지로 삼고 있는 지역이다. 정치권은 한나라당 출신인 이 전 시장이 2002년 6월부터 2010년 8월까지 8년간 집권했고, 2008년 실시된 18대 총선 때는 4개 지역구를 한나라당이 싹쓸이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 텃밭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지방선거 때 이 전 시장의 각종 비리 의혹에 한나라당의 자중지란을 틈타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성남시장에 당선되면서 이 지역은 여야의 치열한 각축장으로 변했다. 이런 추세라면 2012년 총선 및 대선정국에서도 여권은 수도권 전략지역인 성남시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여권 주변에서 ‘이대엽 사건’에 따른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과 맞물려 있다. 더 나아가 친이계 일각에서는 이 전 시장이 친박계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박 전 대표와 친박계를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친이계 중진인 A 의원이 ‘이대엽 사건’ 책임론을 거론하며 박 전 대표와 친박계를 겨냥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 전 시장은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 무소속 출마로 힘겨운 선거전을 치르는 와중에 자신이 친박계임을 강조했었고, 친박연합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 전 시장은 지난해 5월 20일 선거사무소 출정식에서 “인지도와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자신이) 친박이라는 이유로 공천에서 배제했다”며 친박계임을 강조했다. 당시 이 전 시장 캠프 관계자들도 “이 후보와 박 전 대표는 공화당 시절부터 이어져온 오랜 정치적 동지”라며 ‘박근혜 마케팅’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인 박준홍 대표가 이끌었던 친박연합도 당시 이 전 시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친이계 일각에서는 2006년 지방선거 때 구설이 끊이질 않았던 이 전 시장을 공천한 당시 당 지도부에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에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를 맡고 있었다는 점에서 다분히 박 전 대표와 친박계를 겨냥한 포석으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로 친이계는 2006년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이 전 시장이 성남시장 후보로 공천되자 크게 반발한 전례가 있다. 당시 성남 1공단 관련 특혜 용도변경 및 탈세의혹, 친인척 비리의혹과 함께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었던 이 전 시장을 공천한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였다. 여기에 한나라당 경기도당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 전 시장의 ‘교체지수’가 높게 나타나는 등 지역 여론도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공천 과정에서는 경기도당의 공심위원회가 성남시장 공천 신청자인 이관용 예비후보가 표결에서 최종 결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재투표를 주장해 결과를 번복시킨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재투표 과정에서는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개입해 편파 공천을 조장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불공정 공천 시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중앙당 최고위원회는 경기도당이 최종 공천 심사결과로 올린 이 전 시장을 성남시장 후보로 추인했다.
중앙당이 이 전 시장을 최종 후보자로 추인하자 당시 경기도당 공심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친이계 실세인 임태희 비서실장이 공심위를 사퇴하는 등 공천 파동으로 비화됐다. 임 실장은 당시 “공심위원들이 (친박계로부터) 압력을 받았는지 순식간에 번복하는 것을 보고 회의를 느꼈다”며 “자질보다는 친소관계에 따라 후보자가 결정되는 현실에서 더 이상 공심위에 몸담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사퇴이유를 설명했다.
당시 친이계 일각에서는 이 전 시장이 재공천을 받기 위해 당 지도부와 친박계 진영에 수억대의 공천헌금을 제공했을 것이란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다만 박 전 대표가 진두지휘했던 2006년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리면서 공천헌금설 등 이 전 시장과 친박계 간의 ‘검은 거래’ 소문은 점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대엽 사건’ 뇌관이 터지고 여권 일각에서 책임론이 제기되면서 공천헌금 의혹이 재부상할 조짐이 일고 있다. 특히 여권 내부에서 차기 대선구도를 놓고 친이계와 친박계가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대혈전을 치르게 될 것이란 관점에 비춰볼 때 이 전 시장과 친박계 간의 ‘검은 거래’ 의혹은 갈수록 확대·재생산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친이계를 중심으로 한 여권 핵심부가 사정당국과의 교감하에 공천헌금 등 이 전 시장과 친박계 간의 은밀한 거래를 내사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A 의원의 주장처럼 ‘이대엽 비리’ 사건이 ‘박근혜 대세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뇌관으로 부상할 수 있을까. 개인비리를 넘어 박 전 대표와 친박계로 그 불똥이 튈 조짐이 일고 있는 ‘이대엽 비리’ 사건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