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미국 등 전훈지 다양화
지난해 8개 구단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본을 전훈지로 택했다. 2009년 미국 하와이에 캠프를 차렸던 한화도 한대화 신임감독 취임 이후 일본으로 장소를 옮겼다. 현대 시절 미국 플로리다주 브래든턴을 앞마당 삼았던 히어로즈 역시 일본으로 무대를 바꿨다. 하지만, 일본이라고 다 같은 일본은 아니었다. 삼성, LG, SK, 한화는 오키나와에 머물렀다. KIA, 두산, 롯데, 히어로즈의 캠프는 미야자키와 가고시마 등 규슈지역이었다. 비행기로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라 오키나와 팀들과 규슈 팀들은 연습경기는 고사하고, 얼굴도 마주치지 못했다.
▲ 넥센 히어로즈가 미국 플로리다 세인트 피터스버그에 전지훈련장을 차렸다. 이곳은 주변에 술집 하나 없어 ‘수도원’으로 통한다.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
1월부터 2월 초까진 일본도 춥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키나와라도 밤이면 기온이 내려가 훈련에 지장을 받는다. 그래서 대부분 팀은 2월 초까진 괌, 사이판 등에서 몸을 만들고, 2월 초가 지난 뒤에야 일본으로 캠프를 옮긴다.일본에서 전훈장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한몫한다. 대개 전훈장은 야외구장과 실내연습장, 웨이트트레이닝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하나만 빠져도 의미가 없다. 오키나와는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최상급 전훈장이 많은 곳이다. 당연히 일본프로야구팀들이 선점한다. 재미난 건 일본은 1, 2군 전훈장이 따로라는 사실이다. 일본프로구단 1, 2군이 선점하고 나서야 한국 구단 차례가 오니 남아있는 수준급 전훈장이 많을 리 없다.
SK는 지난해 전훈장을 교체하느라 힘든 시기를 보냈다. 기존에 사용하던 오키나와 전훈장을 일본구단이 계약하는 바람에 대체 훈련지를 물색해야 했다. 그러나 웬만한 전훈장은 보통 전해 여름에 계약이 끝나게 마련. SK는 결국, 야수조와 투수조가 따로 훈련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이에 반해 삼성은 모든 구단의 부러움을 샀다. 삼성의 전훈지인 오키나와 온나손구장 때문이다. 온나손구장은 일본 최고의 명문구단도 탐낼 만큼 야외구장 3면에 최상급 실내훈련장을 갖추고 있다. 최근 시설을 증·개축하고, 구장 잔디상태도 최상이라 일본팀들이 제 발로 연습경기를 하자고 제안할 정도다.
원년엔 전훈 꿈도 못 꿔
▲ 한화 이글스(위)는 하와이에서 LG 트윈스는 사이판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LG 트윈스 |
삼성은 베로비치 캠프에서 훈련뿐만 아니라 다저스 코칭스태프로부터 고급야구를 전수받았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삼성의 수비포메이션은 지금도 당시 배운 다저스 수비법이 중심”이라고 회고했다.
삼성의 미국 전훈 이후 다른 팀에서도 하와이, 괌, 사이판 등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미국행을 주저하기 시작했다. 달러화가 뛰어 도저히 전훈비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즈음 등장한 대체 전훈지가 타이와 호주였다.
KIA는 한때 타이에 캠프를 차렸다. 하지만, 음식이 맞지 않고 계속 비가 쏟아지는 통에 성과를 내지 못했다. 호주는 음식과 기후는 맞았지만, 연습 상대가 없다는 게 단점이었다.
결국, 2000년 이후 8개 구단은 다시 전훈지를 일본으로 삼았다. 당시는 엔화가 싸던 시절이었다. 2000년대 중반 엔화가 치솟으며 국내 구단들은 일본 전훈지 대신 다른 나라를 물색했다. 하지만, 구장과 실내연습장이 갖춰진 곳이 일본과 미국 정도에 불과해 포기하고 말았다.
플로리다는 ‘수도원’ 수준
지난해 히어로즈는 일본 미야코지마·가고시마에서 훈련했다. 없는 살림에도 전해 플로리다 브래든턴에 전훈지를 차렸던 히어로즈였다. 알려진 바로는 경비절감 차원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일본이나 미국이나 전훈비는 비슷했다. 정작 이유는 브래든턴 전지훈련장의 원래 주인인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히어로즈의 구장 사용에 난색을 나타낸 데 있었다. 2월 초순이 넘어 슬슬 캠프에 합류하던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갈수록 일찍 합류하며 피츠버그의 구장 사용시간이 늘어났고, 상대적으로 히어로즈의 사용빈도는 줄었다. 일본에 캠프를 차리면 국내 구단과 연습경기를 자주 치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히어로즈는 지난해 스프링캠프를 일본에 차린 뒤 올해 다시 미국으로 옮겼다. 1년 만의 번복이었다. 히어로즈 홍보팀은 “플로리다 세인트 피터스버그에 좋은 구장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전훈지 교체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의 홈 도시이기도 한 세인트 피터스버그는 5개의 구장과 1개 보조구장을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구단 고위관계자는 “숨은 이유는 따로 있다”고 귀띔했다. 그게 뭘까? “지난해 구단 최고위층 인사가 가고시마에 선수단 격려차 갔다. 그때 코칭스태프 가운데 상당수와 선수들이 훈련만 끝나면 파친코에 가는 걸 목격했다. 그제야 왜 현대가 머나먼 플로리다로 떠났는가 실감한 모양인지 ‘내년 전훈지는 무조건 미국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실제로 가고시마는 호텔로 나가 20m가 걸으면 파친코장이 나온다. 하지만, 플로리다는 파친코는 고사하고 술집도 없다. 히어로즈 베테랑 선수들이 플로리다를 “수도원”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