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의 마구잡이식 기업인수가 재계의 시선을 받고 있다. 특히 두산의 기업인수 행태가 곰처럼 무차별적이어서 재계에서는 경계심을 갖고 있는 모습이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재계랭킹 10위권을 넘나들던 두산은 97년 IMF를 기점으로 부실문제가 대두하면서 위기에 몰렸다. 비교적 발빠르게 구조조정에 나섰던 두산은 2000년 이후 다시 몸집 불리기에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국중공업이라는 거대 공기업을 인수해 재계를 놀라게 한 두산은 또다시 매물로 나온 대우종합기계 인수전에서 우선협상자로 선정돼 또 한번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대우종기 인수전에선 두산이 1조8천억원, 효성이 1조3천억원, 팬택컨소시엄이 8천억원대의 인수 희망가를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두산이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자로 떠오른 것.
업계에선 무엇보다도 두산의 자금력에 놀라고 있다. 애초 대우종합기계 인수전의 유력한 후보는 대우종합기계 노조와 공동으로 컨소시엄을 결성한 팬택컨소시엄이었다. 하지만 두산이 팬택이 제시한 값보다 1조원을 더 써낸 것으로 밝혀지면서 막판 뒤집기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몇 년간 두산은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인수, 지난해 고려산업개발 인수, 그리고 최근에는 대우종합기계 인수전에 정식으로 참가했고, 대우조선 인수전과 진로 인수전에도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인수 합병 덕에 두산의 몸집은 다시 불었다.
지난 99년 IMF 직후 최대 주력사인 오비맥주를 매각하며 강력한 구조조정 끝에 부채비율을 낮추고 계열사를 14개사로 줄인지 5년 만에 21개사로 늘어난 것. 두산의 돈줄은 물론 오비맥주 매각 대금이다. 하지만 두산중공업 인수 이후 이어진 고려산업개발 인수부터는 다른 방법도 사용됐다.
지난해 두산건설 두산중업 등 두산컨소시엄이 고려산업개발을 인수할 때 두산의 주식인수 비율은 두산건설이 51%(1천1백18억원), 두산중공업이 49%(1천80억원)였다. 또 두산중공업은 별도로 고려산업개발이 발행한 회사채 1천1백66억원 어치를 사들였다.
두산은 인수할 때 고려산업개발의 독자경영을 약속했지만 인수 뒤 두산건설과 고려산업개발을 합병시켰다.
부채비율 35%인 고려산업개발과 부채비율이 5백%를 넘는 두산건설이 지난 5월 합병하면서 두산건설은 부채비율을 줄이는 효과를 보았고, 고려산업 개발에 들어갔던 두산중공업의 회사채 인수대금 1천1백66억원도 두산건설의 부채 개선 효과를 돕는 데 쓰이는 꼴이 됐다. 두산중공업이 과도한 부채비율에 시달리는 두산건설을 돕는 일석이조 효과를 발휘한 것. 때문에 이번 1조8천억원이라는 깜짝 놀랄만한 두산의 베팅 전략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증권가에선 두산중공업이 단독으로 인수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회의론도 없지 않다. 실제로 두산중공업이 동원할 수 있는 현금성 자산은 5천억원대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두산의 지주회사격인 두산도 현금 여력이 넉넉하지 않다. 때문에 두산이 대우종기를 인수할 경우 두산의 계열사가 동원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두산의 주가도 주춤거리고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두산에선 “대우종기를 인수한다 해도 별도의 독립회사로 운영할 것”이고 “두산중공업으로 들어오는 현금성 자산이 연말까지 1조원대에 달하기 때문에 인수 자금 마련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 사무직 생산직 노조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매각주체가 매각대금 극대화에 치우진 나머지 회사의 건전성 유지 및 고용안정 등 비가격 요소는 간과하고 있다”며 “권위있는 투자은행의 인수가격 적정 의견서 제출 의무화, 계약 이행보증금 부과, 전문가로 구성된 자금조달 평가위원회 설치” 등을 요구하고 있어 두산이 협상과정에서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럼에도 두산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또다른 인수합병전이 예상되고 있는 것도 의문이다. 대우종합기계에 이어 대우조선해양의 유력한 인수 후보자로 두산이 거론되고 있는 것. 증권거래소에선 이런 소문이 나돌자 조회공시를 요청했다. 그러자 두산중공업에선 지난 10월7일 조회공시를 통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검토한 사실이 없으며, 인수설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두산그룹에서도 “대우조선 인수설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매각 절차 개시가 임박한 소주업체 진로에 대해선 인수전 참가를 부인하지 않았다. 두산그룹쪽에선 “우리뿐 아니라 다른 그룹에서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관심을 숨기지 않았다. 두산은 “두산중공업이 해마다 흑자를 보고 있고, 현금 흐름도 양호하기 때문에 대우종기 인수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두산이 대우종기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경우 두산은 그룹의 본류가 식품 주류 패션 등 경공업에서 완전히 중공업 기업군으로 거듭나게 되는 한편, 공기업을 빼고는 10대 그룹 문턱에 서게 된다.
두산의 도박이 성공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