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멈춘 ‘박연차의 저주’ 2008년 12월 세종증권 매각 비리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소환된 박연차 전 회장. 지난 1월 27일 대법원은 박 전 회장에게 징역 2년6월과 벌금 300억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박연차 게이트’는 검찰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홍기옥 세종캐피탈 사장 사이의 세종증권 매각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박 전 회장이 수많은 정관계 인사들에게 뇌물을 대량으로 살포해온 것을 밝혀내면서 그 서막이 올랐다.
검찰수사 진행사항을 토대로 살펴보면 이 사건은 박연차-정대근-홍기옥 간 세종증권 매각로비→노건평-정화삼 형제 연루→박 전 회장에게 로비를 받은 정관계 인사 수사→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의 4단계로 진행됐다.
사건은 2004~2005년 농협이 자회사인 휴켐스를 매각하고 세종증권을 인수하는 과정이 발단이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사건의 주역은 홍기옥 세종캐피탈 대표-정대근 전 농협회장-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등 3인이었다. 홍 대표는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해달라’는 명목으로 정 전 회장에게 50억 원을 전달했는데 중요한 것은 세종증권 로비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홍 대표는 ‘우회’해서 로비성 뇌물을 전달하는 방안을 생각했고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기인 정화삼 형제와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다. 결국 농협은 우선협상대상으로 세종증권을 선정하고 결국 인수, 로비는 성공하게 된다.
2008년 여름 농협이 휴켐스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특혜의혹이 있다는 진정서를 접수한 검찰은 이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고 이미 한 달 전부터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도 병행됐다. 2005년 인수와 관련해 세종증권 주식이 급등하고 박 전 회장이 이 과정에서 178억 원의 시세차익을 남긴 것이 포착된 것이다. 여기서 박 전 회장은 세종증권-농협 인수 관련 로비에 개입하고 세종증권 관련 시세차익을 남긴 혐의, 그리고 그 돈으로 휴켐스를 헐값에 인수한 의혹을 받았다. 수사의 핵심은 박 전 회장이 거액의 차익을 내는 과정에서 이득을 본 인물들이 누구인지, 또 그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였다. 그리고 홍 대표와 정화삼 형제, 노건평 씨가 줄줄이 구속된 데 이어 박 전 회장도 2008년 12월 12일 구속되기에 이른다. 당시 박 전 회장은 세종증권과 휴켐스 매각과 관련 차명거래를 통해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은 탈세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했지만 뇌물·로비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검찰 수사는 정·관계 로비수사로 선회한다. 검찰은 임시국회가 끝난 2009년 3월부터 박연차 정·관계 로비의혹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하는데, 로비 의혹을 받은 정치인들이 줄줄이 소환되기 시작한다. 3월 19일 이정옥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이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 송은복 추부길 이광재 박정규 박진 등 거물급 인사들이 소환조사를 받거나 구속됐다. 그러던 중 3월 말 태광실업 홍콩현지법인의 500만 달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철호 씨에게 들어간 정황이 포착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로비의 목적이 무엇인지, 로비의 최종 종착지가 어디인지가 핵심이었다. 박연차-연철호 라인에 다리 역할을 한 인물은 청와대 전 총무비서관인 정상문 씨로 연 씨는 ‘구두로 맺어진 투자금’이라 주장했지만 검찰은 박 씨의 비자금이 연 씨에게 흘러들어간 것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검찰 수사의 종착지는 노 전 대통령 측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세우려 했던 재단 논의에 정 씨가 참여했다는 것이 문제가 됐는데 시기상으로 박연차-연철호 500만 달러 사건과 비슷한 데다가 액수도 비슷하다는 점, 또 박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 역할을 해왔다는 점 등으로 인해 의혹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여기에 더욱 불을 지핀 것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의 등장이었다. 2007년 8월 박연차-강금원-정상문이 3자 회동을 한 다음달 (주)봉하가 세워졌고 당시 자본금이 강 회장이 내놓은 70억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2009년 4월 6일 강 회장이 탈세소환조사를 받으면서 (주)봉하에 불법자금이 흘러 들어갔을 거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그리고 같은 달 곧이어 두 가지 핵폭탄이 터진다. 노 전 대통령이 500만 달러의 실체를 퇴임 직후 알았다는 것,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가 돈(100만 달러+3억)을 받았다고 고백한 것이었다. 이때부터 정·관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했던 수사는 600만 달러 미스터리와 얽혀 노 전 대통령에게 집중된다.
즉 이 사건은 ▲박연차-정상문-노무현·권양숙에게 흘러들어간 100만 달러+3억을 언제 알았고 어디에 썼는가 ▲박연차-홍콩 APC-연철호(노건호)로 흘러들어간 500만 달러를 언제 받았으며 어떤 명목이었는가, 즉 ‘몸통’이 누구냐가 수사의 핵심이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100만 달러에 대해 빚을 갚기 위해 빌린 돈, 500만 달러에 대해 조카사위 연철호 씨에 대한 정상적 투자금이라 주장했지만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요구해 건넨 돈”이라는 박 전 회장의 진술에 따라 대통령 직무 관련 ‘포괄적 뇌물’ 가능성 쪽으로 가닥을 잡고 수사를 진행했다. 4월 12일에는 연 씨가 500만 달러 투자청탁을 할 때 동행했다는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 씨가 소환되는 등 600만 달러를 둘러싼 진실공방은 계속됐다.
▲ 지난 1월 27일 이광재 강원도지사가 대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등을 선고받고 7개월 만에 지사직에서 물러났다. 이날 이 지사가 기자회견을 마치고 강원도청을 나서는 모습.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구 정권 수장과 그 일가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박연차의 저주를 피해가지 못했다. 조사결과 박 전 회장은 전·현 정권 핵심인사들을 포함한 수많은 정·관계 인사들을 상대로 문어발식 로비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세종증권 비리의혹 수사의 연장선상에서 시작된 사건이 ‘지방 토호의 무차별 돈 살포’ 수준을 넘어 수많은 정·관계 거물급 인사들을 단박에 ‘무덤’으로 보내버린 초대형 사건으로 번진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재판에 넘겨진 사람만 총 21명에 달했다.
박 전 회장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은 이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오죽하면 ‘박연차의 저주’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그들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혐의로 줄줄이 법정에 서는 수모를 당해야했다.
특히 노무현 정권 시절 요직을 거머쥐었던 인사들은 ‘박연차’와의 ‘악연’으로 인해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김원기 전 국회의장,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광재 서갑원 최철국 의원, 장인태 전 행자부 장관, 김태웅 전 김해시장,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 등 수많은 인사들이 박 전 회장으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현 정권 인사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박진·김정권 의원, 추부길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송은복 전 김해시장 등이 줄줄이 기소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죽마고우인 천신일 세중나모 여행 회장도 연루됐으며 40대 젊은 총리로 정치권의 기린아로 부상했던 김태호 총리후보자도 박 전 회장으로 인해 21일 만에 낙마했다.
하지만 이 수사는 죽은 권력을 겨냥했다는 정치적 편향성과 표적수사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검찰 책임론’까지 제기하며 맹공에 나섰고 검찰은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리며 수사를 종결했다. 수사의 최종 종착지자 핵심 피의자였던 노 전 대통령의 자살로 수사가 성급히 종결되어 결론적으로 용두사미에 그쳤다는 비판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대검 중수부는 6월 12일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마무리했는데 핵심의혹 규명에는 실패, 여전히 많은 의혹들이 산재해 있다. 우선 사건의 핵심이었던 노 전 대통령 관련 의혹은 영구미제로 남게 됐고 현 여권 실세의 개입의혹이 제기됐던 세무조사 무마 로비의혹 역시 ‘몸통’을 찾아내지 못한 채 유야무야됐다. 뿐만 아니라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2007년 4월 50억 원을 박 전 회장 계좌로 입금했고 박 전 회장은 이 중 10억 원을 빼내 고가의 그림 2점을 사들인 뒤 후에 그만큼 채워 넣은 것을 포착한 검찰은 돈의 성격과 출처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판단,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기동력을 상실한 검찰은 라 회장을 피내사자 신분으로 한 차례 소환조사한 것을 끝으로 내사종결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박연차 게이트에 오른 인물들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상당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검찰이 수사에 착수조차 못해 기사회생한 ‘행운의 사나이’들이 여전히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정·관계 안팎에서는 박 전 회장과 지저분하게 얽힌 인물들이 수두룩하며 따라서 그 후유증이 최소 10년은 갈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전직 대통령은 물론이고 수많은 정관계 거물급 인사들의 피를 불러온 박연차 사건, 정치권 일각에서 악몽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