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청구권, 소송으로 행사할 수 없어”…3년 전 대법 판례와 달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는 7일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80여 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전범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측의 소송을 각하한다며 패소로 판결했다.
이날 재판부는 “판결문이 길어 결론만 말씀드린다”며 “개인 청구권이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서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할 수는 없다”고 판결 근거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소송 비용 역시 원고 측이 부담하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청구권협정 및 관련 양해문서상 문언, 협정의 체결 경위나 후속 조치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해당한다”며 “청구권협정 제2조에서 규정하는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해결’이나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는 문언의 뜻은 개인청구권의 완전한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는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인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소수의견과 결론적으로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당시 대법 전합은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다수 의견으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반면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의 경우 당시 소수의견으로 “청구권협정에 따라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제한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전합 결정과 반대의견을 낸 바 있다.
또한 “비엔나협약 제27조에 따르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국내법적 사정만으로, 식민지배의 적법 또는 불법에 관해 상호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청구권협정의 ‘불이행’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며 “이 사건 청구를 인용한다면 비엔나협약 제27조와 금반언의 원칙 등 국제법을 위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금반언의 원칙이란 이미 밝힌 자기의 언행에 대해서 모순되는 행위를 스스로 할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한다.
당초 10일 예정됐던 선고기일이 이날로 변경된 이유에 대해서는 “법정의 평온과 안정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선고기일을 변경하고, 소송대리인들에게는 전자송달 및 전화연락 등으로 고지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소송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피해자들이 청구한 손해배상금 총액은 86억 원이었다. 일본기업들은 피해자들이 지난 2015년 5월 해당 소송을 제기한 뒤 줄곧 ‘무대응’으로 일관해오다 올 3월에서야 공시송달을 받고 뒤늦게 국내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하고 나섰다.
재판을 지켜본 피해자 및 유족 측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피해자들의 소송을 대리해 온 강길 변호사는 “자세한 내용은 판결문을 봐야 하지만 오늘 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정반대로 배치돼 매우 부당하다”며 “재판부가 양국 간 예민한 사안이라 다르게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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