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시즌 한국바둑리그를 우승한 신안천일염은 이세돌 9단(왼쪽)이 선수로 출전하고 친형 이상훈 7단이 감독을 맡았다. |
전국 지자체 중 재정 자립도가 뒤에서 1~2등을 다투는 신안군이 한국리그에 뛰어든 것은 순전히 이세돌 9단 때문이었고 주변에서도 모두 이 9단이 신안천일염 팀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걸로 보고 있었는데, 창단 첫 해인 2009년 시즌 정작 본인이 천만뜻밖에도 “사전 상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불참을 선언해 여러 사람을 당황케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면서 서로 오해가 풀렸고, 팀 감독으로 이세돌 9단의 친형 이상훈 7단이 부임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출발한 데다가 보란 듯이 우승을 일구어냈으니 의미가 각별한 것.
9개 팀이 참가한 이번 한국리그 정규 시즌의 성적표는 한게임이 1등, 충북건국우유가 2등, 신안천일염은 3위였고, 하이트진로, Kixx, 티브로드, 포스코컴텍, 넷마블, 영남일보가 4~9위였다.
충북건국우유, 넷마블, 포스코컴텍은 신생팀이었는데, 포스코컴텍(감독 이홍열 9단)이 7위, 넷마블(감독 양건 9단)이 8위로 하위권에 머문 것과 달리 영환도사 김영환 9단이 이끈 충북건국우유의 2위 도약은 단연 돋보였고, 그에 반해 이전 시즌까지 한국리그 3연패의 빛나는 행진을 했던 영남일보가 9위로 추락한 것은 이변이자 의외였다. 감독 최규병 9단이 기사회장의 공사다망한 업무에 시간을 빼앗긴 것이 영남일보 추락의 원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전통의 강호 광주 Kixx가 그저 그런 5위에 그치고 만 것도 감독 양재호 9단이 아시안게임 총감독으로 팀에 앞서 국가대표 팀에 전력을 쏟았던 탓일 것이다. 최규병과 양재호, 현재 한국기원의 실세로 불리는 동문이자 동갑의 두 중견이 2010년에는 공(公)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사(私)에서는 점수를 좀 잃은 셈이다. 서봉수 9단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티브로드는 6위, 역시 만족할 만한 성적은 아니었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팀은 상위 네 팀. 정규 시즌 3위의 신안천일염은 포스트 시즌에서 다시 전력을 풀가동하며 준플레이오프에서 만난 하이트진로(감독 강훈 9단)를 3승1패로 눌렀고, 플레이오프에서는 충북건국우유를 3승2패로 제치며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한 것.
신안천일염의 기세가 사뭇 사나웠지만, 바둑보다 국제 갬블러로 더 유명한 포커페이스 차민수 4단이 사령탑을 맡고 있는 한게임은 역시 정규 리그 우승 팀답게 만만치 않았다. 신안천일염 팀은 주장 이세돌을 필두로 한상훈 5단(23), 이춘규 3단(22), 이호범 2단(19), 안국현 2단(19)의 라인업. 한게임은 주장 강동윤 9단(22)에 지난해 소리 소문 없이 9단에 오른 김주호(27), 알려진 맹장 이영구 8단(24), 신진강호 진시영 4단(22), 나란히 입단하고 성적도 나란히 좋은 안형준(22)-안성준(20) 형제 중 형인 안형준 2단의 진용. 정규 시즌 성적도 그렇지만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신안천일염에 조금 앞서 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러나 포스트 시즌의 묘미는 계속 실전을 치르면서 올라간 팀과 상대를 기다리며 쉬고 있던 팀과의 대결이라는 점. 여기서는 객관적인 전력이나 성적표보다는 승부 호흡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는 것. 신안천일염은 그걸 다시 한 번 입증해 보였다. 넉넉하지 않은 여건에서 바둑에 전력투자하고 있는 신안 팀에 박수를 보낸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챔피언 결정전 대회장을 지켰다. 관심과 성의가 대단하다. 한게임은 부자 팀. 승부에서는 부자가 꼭 이기는 것이 아니다. 헝그리 정신, 이게 때로는 큰 무기가 된다.
이상훈 7단-이세돌 9단 형제에게 축하를 보낸다. 평소 좀 까칠한 언행으로 가끔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고 작년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기사휴직, 복직의 곡절도 겪었던 이 9단이 요즘은 많이 겸손해지고 부드러워졌다는 말을 듣는다. 신안 앞바다의 작은 섬마을, 히로시마 앞바다의 조그만 어촌. 이 9단도 슈사쿠 같은 기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새해 이 9단에게 덕담으로 건넨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멋진 묘수가 나온 바둑을 본다. 묘수의 주인공은 한게임의 이영구. 팀은 졌지만, 묘수는 큰 갈채를 받았다. 상대는 안국현. 이영구가 백이다.
<장면 2> 흑1에는 백2로 건너가 버리는 것. 안국현 2단은 우상변 흑3, 5로 잠깐 마음을 추스르고는 돌을 거두었다. <장면 1>의 백1 때….
<참고도 1> 흑1 쪽에서 단수치면 어떻게 될까. 백2로 나간다. 다음 흑3으로 이으면 백4를 선수한 후 6으로 건너간다. 또 흑3으로….
<참고도 2> 흑3으로 이쪽을 이으면 백4 선수로 한쪽을 완생하면서 6으로 젖혀 역시 건너간다. 계속해서….
<참고도 3> 흑1이면 백2로 끊는 수가 있다. 흑3에는 백4. 다음 흑5로 A에 따내든지 백Δ 자리에 잇든지 백6으로 몰고 B에 두어 이쪽도 완생. 백6에 흑C로 단수치는 것은 백D로 뒤에서 몰아도 그만인 것.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