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부터 요직에서 한직으로…법원에서 사법연수원장은 여전히 ‘영전’의 자리
#승진 대기석에서 좌천의 상징까지
교도관학교를 흡수 통합하면서 설립된 법무연수원은 1972년 현재 이름을 달게 됐다. 모태는 1951년 설립된 형무관학교로, 형무소와 형무관이라는 일제강점기의 용어가 1960년대 들어 교도소와 교도관으로 바뀌면서 이 기관의 이름도 교도관학교로 변경됐다. 그 후 1972년 법무연수원으로 명칭이 변경됐고, 검사 등 법무부 공직자들을 교육하게 됐다. 신임 검사·법무부 소속 공무원을 비롯해 승진하게 된 검사 같은 경력 검사 등의 교육을 담당한다.
법무연수원의 장 자리에는 차관급이 임명됐다.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법무실장, 검찰국장, 범죄예방정책국장,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사법연수원 부원장,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등과 함께 검사장들의 자리가 됐다.
비교적 요직으로 분류됐던 적도 있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시절 법무연수원장을 거쳐 간 김기춘 대통령 전 비서실장은 그 후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이 밖에 법무부 장관(송정호), 검찰총장(박종철, 김기수, 임채진), 국무총리(정홍원), 헌법재판관(주선회), 국회의원(김학재, 임내현, 소병철) 등 다수의 법무연수원장들은 이후 법조계나 정치계에서 중요한 보직을 맡았다.
법무연수원이 ‘영전’의 자리로 불렸던 것은 지난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정부는 6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검사를 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마땅히 임명시킬 자리가 없자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직을 검사장급 보직으로 신설하고 박철언 검사를 앉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법무연수원은 원장뿐 아니라 연구위원들까지 검사장이나 검사장 승진을 앞둔 검찰 고위 간부들이 ‘쉬다’가 가는 곳이 됐다.
법무연수원 근무 경험이 있는 검사장 출신의 법조인은 “법무연수원은 신임 검사 교육으로 의미가 있는 자리지만 비수사 보직으로 일이 적은 편에 속해 호불호가 나뉘는 곳이었는데, 과거에는 법무연수원장은 물론 연구위원도 지금처럼 ‘좌천’으로 분류됐던 곳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법무부가 이 자리를 징계가 진행 중이거나 의혹이 있는 인사들을 잠시 보직에서 배제시키기 위해 활용하면서 성격이 바뀌었다. 김대웅 전 광주고검장이 시작이었다. 국민의 정부 말기인 2002년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현직 고검장 신분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기소됐는데, 김 전 고검장에게 줄 마땅한 보직을 찾던 법무부는 결국 직제를 바꿔 고검장, 검사장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에 임명될 수 있도록 했다.
그 후 민유태 전 전주지검장 역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한테 1만 달러 이상의 부정한 돈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됐다.
자연스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직은 승진에서 누락됐거나 감찰 또는 수사를 받는 이들이 퇴임 직전에 가는 자리로 전락했다. 이번 정권에선 한동훈 검사장이 검언유착 의혹이 터지자마자 법무연수원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앞선 법조인은 “원래 법무연수원장도 ‘그 전에 어떤 보직에 있던 인물이 가느냐’에 따라 좌천이 아닌 곳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연구위원처럼 좌천성 성격이 짙어진 곳이 됐다”며 “사법연수원 25기가 고검장이 된 상황에서 24기인 대검 차장 출신 조남관과 고검장 출신 23기 구본선의 전보는 누가 봐도 좌천성 인사”라고 평가했다. 조남관은 법무연수원장으로, 구본선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옮겼다.
#법무연수원과는 또 다른 사법연수원
법무연수원에 있던 한동훈 검사장이 이번에 임명된 자리인 사법연수원은 어떤 조직일까. 이름은 비슷하지만 역할은 다르다. 명칭 자체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의 사법연수소(1946년 설치)를 모방하여 설치한 기관으로, 사법시험을 합격한 사법연수생들의 교육 기관이었다.
1971년 사법연수원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대학원에 입학해 수료하여야만 판·검사 또는 변호사로의 임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를 1971년 1월 1일 ‘법원조직법’을 개정, 사법대학원을 폐지하고 대법원에 사법연수원을 설치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서울 서소문에서 개원해 1982년 서울 서초동으로 이전했고, 사법시험 합격자가 1000명으로 늘어나면서 경기도 고양시에 신청사를 건립하여 2001년 12월 이전했다.
판사-검사-변호사로 나뉘기 전 교육을 하는 곳으로 동기 간 등수를 구분 짓는 곳이기도 했다. 사법부(대법원장)가 임명하는 판사가 장(長)을 맡았지만, 검찰 몫의 자리(부원장, 교수)를 배정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검찰 관련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검사들의 파견이 이뤄졌고 부원장은 고등부장판사가 오는 원장의 직급을 고려해 검사장들이 임명됐다.
하지만 사법시험 제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하나 남아 있던 연수생도 대형로펌으로 입사하면서 이제는 예비 법조인인 아닌 법관들의 재교육을 맡은 곳으로 변했다. 참고로 마지막 한 명의 연수생을 위해 연수원 교수들이 일대일로 교육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제는 판사나 법원 조직 내 공무원들이 승진하거나 연차가 차면 관련 교육을 전담하는 곳이 바로 사법연수원이다.
이번 한동훈 검사장의 사법연수원 부원장 행을 놓고, 법원에서 말이 나오는 대목이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현재 사법연수원은 연수생이 아니라, 현직 판사들의 교육이 전부인 ‘법관연수원’이 되지 않았냐”며 “사실 검찰 소속으로 누구도 올 필요성이 전혀 없는데, 검찰 내 좌천성 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사법연수원이 활용된 것 같다”고 비판했다.
과거 법조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시작 지점이 사법연수원이다 보니, 법원 내에서 사법연수원으로 인사는 거부감이 덜한 편이라는 게 중론이다. 사법연수원 교수 근무 경험이 있는 한 판사는 “신입 법조인에게 법리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자리이고, 자연스레 법원 내에서 법리가 탄탄한 사람만 보낸다는 인식이 있었다”며 “교수로 임명됐던 순간에 엘리트 조직인 법원에서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고 털어놨다.
법원에서는 사법연수원장이 여전히 영전의 자리다. 사법연수원장은 대법관을 제외하면, 가장 공식 행사에서 서열이 높다. 때문에 법원행정처 등에서 사법연수원장이 회의를 진행하거나 주도하는 경우도 많다. 김이수(헌법재판관), 최재형(감사원장) 등 사법연수원을 거치고 법조계나 행정부처에서 주요 업무를 맡은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재 사법연수원장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으로 유명한 김영란 양형위원회 위원장의 동생인 김문석 판사(사법연수원 13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 항소심에서 징역 25년과 벌금 200억 원을, 최순실 씨에게는 징역 20년과 벌금 200억 원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던 그는 법원 내에서 실력이나 인품을 인정받는 인물이라고 한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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