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없었지만 상해·질병 유발케 해 ‘몰라서 방치’ 많아…입증 애매, 처벌법 유명무실
경찰은 세입자 A 씨에 대해 동물보호법위반혐의로 법률 검토를 했지만, 반려묘 유기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해 거짓 신고에 대해서만 묻기로 했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키울 능력이 안 돼 입양 절차 등을 알아보다 방법을 찾지 못해 거짓 신고를 하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물 유기 행위는 3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지만 거짓 신고는 60만 원 이하 과태료 대상이다.
한편 온라인상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저 정도면 애니멀 호더 아니냐’ ‘애니멀 호딩 관련 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냐’ 등의 의견이 나왔다. 이에 대해 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A 씨가 어떤 환경에서 고양이를 키워왔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유기를 목적으로 거짓 신고를 한 것은 명백하다”고 비판했다.
‘애니멀 호딩(Animal Hoarding·과잉다두사육)’은 개인이 능력이나 여건이 되지 않는데도 동물을 수집하듯 과다하게 기르면서 결국은 방치하게 되는 일종의 학대 행위를 말한다. 정신질환인 저장강박의 대상이 동물이 된 경우다.
#지식 부족이 애니멀 호딩으로 이어져
애니멀 호더가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정서적 결핍이나 강박증 등의 정신적 문제에서 발현되기도 하지만,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반려동물을 양육하다 의도치 않게 애니멀 호딩에 이르게 된 경우도 있다.
김애라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대표는 16일 일요신문에 “처음부터 학대를 목적으로 반려동물을 데려온 애니멀 호더는 많이 보지 못 했다”며 “(경험상) 대부분은 좋은 마음으로 동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문제는 동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나 반려동물 양육에 대한 경험 부족 등이 심각한 상황으로 번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2019년에 있었던 통영 노부부의 사례가 그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9년 3월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산골에 있는 한 주택에서 반려견 100여 마리가 구조된 사례가 있었다. 구조단체가 현장을 방문했을 때에는 건물 입구부터 심한 악취가 풍겨왔고 주변은 온통 오물로 뒤덮여 있었다. 게다가 100여 마리 가운데 상당수가 사회화 교육을 받지 않아 매우 사나워 접근조차 힘든 상태였다. 주인이었던 70대 노부부는 10여 년 전, 적적한 마음에 길가에 버려진 암컷과 수컷 한 쌍을 기르기 시작했는데, 두 마리가 교배를 시작하면서 개체 수가 급속히 증가했고 100여 마리까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안락사 위기에 놓였던 개 50여 마리는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에서 모두 입양했다.
2018년 경기도 안산시에서는 노부부가 기르던 30여 마리의 고양이가 이웃들의 신고로 구조되기도 했다. 당시 고양이를 구조했던 동물보호단체 ‘카라’에 따르면 이 노부부도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고양이를 키운 건 아니었다. 2014년에는 수컷 고양이 한 마리와 암컷 고양이 두 마리를 길렀는데 발정이 난 고양이들이 집을 나가 임신을 반복하면서 개체 수가 손쓸 수 없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중성화수술(TNR)에 대한 지식도 없었고, 온라인을 통해 고양이를 입양시키는 법도 몰랐다.
안산시 노부부의 경우 고양이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건네주는 등 나름의 노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장 구조자들은 “의도와 결과는 명백히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애니멀 호더들의 집에서 구조된 동물 가운데 일부는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태어나거나 장기간 병에 걸린 채 방치돼 구조된 뒤에도 병을 앓거나 사망한다고 했다. 두 쌍의 노부부 모두 물리적으로 동물을 폭행하지는 않았으나 상해와 질병을 유발하게 함으로써 학대를 한 셈이다.
#학대자 소유권 박탈 못 해
처벌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8년 9월 애니멀 호딩을 동물 학대의 한 유형으로 규정하고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된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반려 목적으로 기르는 개, 고양이 등의 동물에게 최소한의 사육 공간 제공 등 농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사육·관리 의무를 위반해 상해를 입히거나 질병을 유발시킬 경우’를 학대행위로 간주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동물학대로 인해 동물이 죽음에 이를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실제 처벌을 한 사례는 없다. 현장에서는 해당 법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구조가 필요한 상태는 맞지만, 상해나 질병이 없으면 학대로 인정받지 못할 뿐더러 상해와 질병이 있다고 해도 입증하기도 애매하고 질병을 앓는다고 해도 해당 질병과 환경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히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 학대자로부터 동물의 소유권을 제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학대자가 비용을 지불하고 동물 반환을 요구하면 돌려받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국내에는 애니멀 호더를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전문 인력도 부족하다. 현장에서 구조 업무를 진행하는 이들에 따르면 애니멀 호더 혹은 위험군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취약 계층으로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었다.
이에 대해 한 비영리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학대를 목적으로 동물을 수집하는 애니멀 호더를 제외하면,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라서’ 혹은 ‘해결 방법을 몰라서’ 손을 놓고 있다가 애니멀 호더가 되어버린 분들도 많았다. 충분한 교육과 사회적 지원이 있었다면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던 문제”라며 “동물을 소유하기 전 충분한 교육을 받도록 하고 학대행위 발생 시 학대자로부터 소유권을 박탈시킬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동물학대자의 소유권을 제한하는 개정 법안은 2013년에 이어 2017년과 2018년에도 발의됐으나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초됐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관련 내용을 담은 동물보호법 개정 법안 두 건이 발의됐으며, 각각 소관위 심사와 접수 단계에 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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