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건우를 임신했을 때였어요. 한창 시즌 중이었고, 클리블랜드에 머물 당시였는데 아내가 갑자기 한국 음식을, 그것도 시카고 원정 때 찾았던 한국식당을 꼭 가고 싶다고 해서, 쉬는 날 차로 5시간 30분을 운전해서 시카고에 다녀온 적도 있었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돌아다니면서 배가 불러도 먹고 또 먹고를 반복했더랬어요. 왕복 11시간 운전하느라 솔직히 힘들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만약 평상시에 그런 부탁을 했더라면 안 들어줬을 거예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내가 임신 동안만 여왕 대접을 받는다는 게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감사하기도 합니다. 어린 나이에 저와 결혼해서 어느새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운동선수의 내조자로,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우리 가족들을 위해 희생을 다하는 하원미 여사가 정말 사랑스럽니다.
2월 14일부터 투수조와 포수조가 본격적인 스프링트레이닝을 시작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선 야수조가 가장 늦게 스타트를 하죠. 하지만 말만 본격적이지, 실은 2월 초부터 모두 나와서 개인 훈련을 해왔어요.
요즘 훈련장에 나가면 모든 선수들이 다 모여서 연습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시끌벅적합니다. 2011년 시즌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고, 스프링트레이닝 동안 펼쳐질 시범경기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저의 일상도 이전 시즌과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서 차를 끓이고 그걸 보온병에 담아서 새벽길을 나섭니다. 훈련장에 도착하면 정확히 5시30분이 됩니다. 가볍게 웨이트트레이닝을 한 뒤 7시 정도에 다시 샤워하고 트레이닝실에서 마사지 등 치료를 받고, 7시30분에 아침 식사를 합니다. 8시30분에 배팅게이지에서 타격 훈련을 한 뒤 9시30분에 팀 전체 훈련이 시작되는데, 팀 훈련 전까지 4시간 동안 온전히 개인 훈련을 할 수 있는 셈이죠.
어느 선수보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건, 시애틀 시절에도 있었지만 클리블랜드로 이적 후 제대로 시행을 했던 것 같아요. 스프링트레이닝 동안의 이런 ‘의식’ 같은 일상들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기존의 동료 선수들은 저의 이런 부분들을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새로 입단했거나 트레이드 돼 온 선수들은 제 모습이 이해가 안 되는 모양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일찍 나오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다른 선수들 얘길 듣고 신기하다는 듯이 이렇게 물어보더라고요. “추, 너처럼 일찍 나오면 홈런 많이 칠 수 있니?”
오늘 어느 기사에서 임창용 선배님이 하신 말씀이 아주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돈을 안 받더라도 선수 은퇴하기 전에 꼭 메이저리그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야구를 하다보면 메이저리그라는 무대는 꼭 한 번 서보고 싶은 도전의 대상이 됩니다. 저도 그래서 11년 전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의 심정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것이고요. 시기는 문제가 안 됩니다. 야구의 처음을 다른 리그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돈을 적게 받는다고 해도, 야구를 시작하면서 항상 갈구했던 그 무대에 서겠다는 건, 야구 인생을 ‘후회’나 ‘아쉬움’으로 물들지 않게 하려는 게 아닐까요.
임창용 선배님, 제가 선배님의 뱀직구를 메이저리그 타석에서 쳐낼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때’ 꼭 뵙겠습니다.
LA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