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대우건설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 소환된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이 17시간의 조사를 받고 19일 새벽 귀가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인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은 행시 15회 출신으로 1974년 공직에 입문했다. 경제기획원 등 경제관련 부처에서만 25년 넘게 일해 온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 2004년부터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초대청장으로 일하다 2007년 돌연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한나라당 일류국가비전위원회 정책팀장을 역임한 그는 곧 이명박 대통령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그가 대선캠프에 들어간 배경에는 경남고 선배인 강만수 청와대 경제특보의 역할이 컸다고 전해진다. 그가 강만수 사단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 전 청장은 강 특보와 함께 ‘7·4·7’(연 7% 경제성장, 10년 내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경제 7위 경제대국)로 대표되는 경제공약인 이른바 ‘MB 노믹스’의 근간을 닦았다. 이 대통령 당선 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으로 일하면서 경제정책 공약 실천을 위한 바탕을 마련하기도 했다. 당시 그가 주장한 대표적인 정책이 고유가 위기 극복이다. 취임 초 에너지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이 대통령의 경제철학도 따지고 보면 장 전 청장으로부터 나온 것들이다. 그만큼 그는 현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 축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정권 출범 후 그가 일한 곳은 조달청과 국방부 방위사업청 등 수십조 원의 예산을 다루는 부처들이었다. 경제관료 출신인 그가 주로 경제부처가 아닌 곳에서 일했던 이유는 두 가지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4대강 사업에 들어가는 막대한 예산을 조달하기 위해 거액의 예산을 ‘핸들링’할 수 있는 부처에 장 전 청장을 임명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또 다른 이유는 국방 사업에 대한 이 대통령의 깊은 불신 때문이었다.
장 전 청장이 2009년 1월 국방부 차관에 임명되면서 정치권에서는 ‘차관정치’라는 말이 회자됐다. 이는 당시 장 차관을 비롯해 박영준 국무총리실 차장(차관급, 현 지식경제부 차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현 장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사퇴) 등 장관보다 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네 차관을 두고 나온 말이었다. 이 중에서도 장 전 청장은 이 대통령을 많이 닮았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강한 추진력으로 일하다 보니 장성들과 마찰도 많았다는 후문이다. 특히 일부 장성들에게 반말까지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른바 ‘국방부 하극상’으로 불리는 사건은 ‘왕차관’이었던 장 전 청장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2009년 1월 국방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국방부 예산 삭감을 주도했다. 최초의 민간인 출신 차관인 그가 수조 원에 달하는 국방예산 삭감안을 들고 나오자 군 내부의 강한 반발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장 전 청장은 당시 이상희 국방부 장관에게 예산안을 보고하지 않은 채 청와대에 직보했다. 이 장관은 장 전 청장의 이런 행동을 “하극상”이라고 표현하며 청와대에 항의했다. 그러나 정작 옷을 벗은 이는 이 장관이었다. 군 내부에서는 장 전 청장의 예산 삭감안을 두고 ‘표면적인 이유는 국방개혁이지만 실제 이유는 정부 예산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국방비를 줄여 4대강 사업에 사용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장 전 청장은 지난해 8월 방위사업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노무현 정권 당시 군납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세워졌던 방사청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 폐지 논란에 휩싸이며 풍전등화의 위기 가운데 있었다. 정부 여당은 방사청이 참여정부가 만든 대표적 ‘옥상옥’ 기관이라며 폐지를 주장했으나 이 대통령은 오히려 핵심 측근인 그를 방사청장에 앉혔다. 이 대통령이 군납 비리 척결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이후다. 장 전 청장에 대한 대통령의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가 방사청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군 내부에서는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방사청 관계자에 따르면 방사청장은 차관보급으로 군내 서열로 따져 봐도 ‘장관-차관-합참의장-각 군 참모총장-해병대 사령관’ 다음 서열로, 차관에서 이동한 것은 사실상의 하향 전보였다. 한 방위사업체 사장은 “그가 이런 인사를 기꺼이 받아들인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고 밝혔다. 국방부 차관 재직 당시 그에게 곱지 않던 눈초리를 보내던 육·해·공군 장성들은 그가 방사청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사실상 국방사업 예산의 전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퇴임 때까지 실세로 군림할 것 같았던 장 전 청장은 결국 방사청장으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비리 의혹에 연루되어 낙마하게 됐다. 검찰에 따르면 장 전 청장은 대우건설로부터 수천만 원어치의 상품권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최근 대우건설 관계자들을 불러 상품권 매입규모와 경위 및 용처를 조사했으며 “서종욱 사장이 고려대 경제학과 1년 후배인 장 전 청장에게 상품권을 건넨 것으로 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해 4월 국방부가 발주한 특전사령부 및 제3공수여단사령부 이전사업 공사를 대우건설이 따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대우건설 측이 공사 수주 이후 사업 추진 과정에서 편의를 봐달라는 취지로 장 전 청장에게 상품권을 건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대우건설이 공사를 따낸 시점에 장 전 청장은 국방부 차관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장 전 청장은 사의를 표명하면서 “자긍심을 무기로 일하는 직원과 군 장병은 물론 공직사회 전체와 이명박 정부에 저와 관련해 각종 의혹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사태는 혐의의 진실 여부를 떠나 분명 당혹스러운 일로 생각된다”며 “더 이상 저 때문에 청의 막중한 임무가 차질을 빚어선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사직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한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그의 낙마는 현 정권에 큰 상처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