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집단 면역을 위한 백신 접종이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무진장' 오지로 꼽히는 무주군. 만 75세 이상 1차 접종이 마지막으로 이뤄지는 6월 7일~9일. 무주 6개 면 각 마을 거점엔 종일 어르신들을 접종 현장으로 모시고 가는 버스가 돌았다.
그동안 통 외출할 일 없었던 할머니들은 제일 고운 옷을 입고 오랜만에 마을 회관 앞에 모였다. 꼭 이런 날 미뤄뒀던 밭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장님의 오토바이가 출동한다.
기대와 염려 속에 시작된 백신 접종. '한 명이라도 더, 하루라도 더 빨리' 안전한 그 날을 만들기 위해 102세 할머니부터 27세 면사무소 직원까지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면역 대작전'이 펼쳐졌다.
1년 5개월, 굳게 닫혀있던 마을회관 앞이 떠들썩하다. 한동네 살아도 통 얼굴 볼일 없던 어르신들은 백신 접종하는 날 아침 간만에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한껏 들뜬 어르신들과는 달리 한 명도 빠짐없이 수송해야 하는 면사무소 직원들은 분주히 몸을 움직인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모시기 위해 면장님이 직접 나서는가 하면 귀가 어두운 어르신들에게 설명하느라 목이 쉬어라 소리치며 이름을 부르는 간호사까지. 그런데도 얼굴 마주하며 한마디 나누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는 사람들, 시끌벅적 백신 맞는 날의 풍경을 기록했다.
백신 예방접종이 이뤄지는 무주군 예체문화관은 각 마을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들어오기 전부터 분주하다. 오전 8시 10분이면 첫 마을의 접종이 시작되기 때문에 접종 시간보다 1시간은 먼저 나와 준비를 시작한다.
백신 접종 인원에 맞춰 백신을 미리 해동하고 주사기에 나눈다. 백신이 한 개라도 폐기되는 일 없도록 수시로 수량을 확인하고 나서야 예방접종 센터는 어르신들을 맞이한다.
올해 2월 27일 시작된 백신 접종, 초기엔 후유증으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자 많은 어르신이 백신 접종을 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접종 후 아무렇지 않다는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퍼지며 1차 접종이 마무리된 6월 무주군의 75세 이상 어르신 백신 접종률은 94%에 달한다.
나이를 먹어도 주사가 무섭기는 마찬가지, 주사실에 들어오는 어르신들이 제일 먼저 하는 말은 "안 아프게 놔줘"다. 주사를 놓는 사람들은 대부분 각 동네 보건소에서 나온 간호사들. 반가운 얼굴을 만난 어르신들은 한참 주사실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백신 2차 접종을 마친 병원과 요양원은 대면 면회가 재개됐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만져볼 수 없던 가족과 드디어 만나는 날. 치매로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와 1년 5개월 만에 손을 잡은 영숙 씨. 엄마의 기억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동안 해주고 싶었던 말을 이제야 쏟아냈다.
매일같이 함께 어울리던 마을 회관이 잠기고 많은 어르신이 고립감에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다. 그저 얼굴 보고 함께 밥 해먹을 수 있는 날이 오는 것, 산골 마을 어르신들의 바람은 소박하지만 간절하다.
그날을 기다리며 백신을 맞은 어르신들은 앞선 마음으로 마을 회관 단장을 시작했다. 마을 회관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는 어르신들. 단 하루라도 빨리 그날이 오기를 소망하며 산골 마을의 백신 접종기를 담았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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