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왼쪽)과 정의선 기아차 부사장. | ||
특히 현재 내수부진으로 다소 고전하곤 있지만 현대자동차의 실적이 수출회복으로 크게 호전되면서 정몽구 회장의 재력도 날로 커지고 있다.
현재 증시의 관심을 받고 있는 글로비스의 경우 정의선 부사장이 전체 지분의 59.85%를 갖고 있는 대주주다. 나머지 지분 40.15%는 부친인 정몽구 회장이 보유중이다. 따라서 이 회사는 사실상 정몽구-의선 부자가 100% 지분을 보유한 개인회사인 셈.
글로비스는 지난 2001년에 설립된 이후 현대차그룹 16개 계열사의 물류 운송을 도맡아하면서 급성장한 회사다. 지난해 매출액은 5천7백88억원, 순익 4백3억원을 낸 알짜회사로 엠코라는 건설회사의 지분 59.96%를 가지고 있다.
엠코는 현대차 그룹의 유일한 건설회사로 지난해 순익 1백23억원을 낸 ‘유망’한 회사. 이 회사는 내년부터 민간주택시장에도 진출할 예정이어서 건설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차그룹은 글로비스의 지분 25%를 1억달러를 받고 노르웨이 해운업체인 빌헬름센에 매각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빌헬름센은 지난 2002년 현대상선의 현대차 수송물량을 따로 떼내 현대차(10%), 스웨덴의 해상운송업체 발레니우스(40%), 빌헬름센(40%) 합작으로 유코카캐리어스라는 법인을 세운 바 있다.
글로비스는 회사내용도 좋고 운송기업으로서 당장 큰 고정 투자비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해외물류는 이미 빌헬름센과의 합작법인에서 담당하고 있음에도 왜 정씨 부자는 글로비스의 지분을 매각하려는 것일까.
일단 증권가에선 글로비스 매각 자금이 정 부사장의 현대차그룹 경영권 상속을 위한 지분 확대용으로 쓰일 것으로 보고 있다. 빌헬름센이 글로비스의 지분 25%를 1억달러에 샀다는 얘기는 글로비스의 기업가치가 4억달러, 우리돈으로 4천5백억원쯤 된다는 얘기다. 이 4천5백억원의 60%는 정 부사장의 돈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정 부사장은 글로비스(59.96%)와 카오디오업체인 본텍(60%) 외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주식 재산이 없다.
때문에 증권가에선 글로비스 매각자금이 정 부사장의 현대차 계열사 지분 매입의 지렛대로 활용될 것이라는 얘기가 지배적이다. 그래서 증시에 정 부사장이 현대차나 기아차, 현대오토넷 등의 주가흐름을 끌어올릴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정씨 부자는 지난 10월 정식 계약을 맺은 현대캐피탈과 GE소비자금융(GECF)의 합작 과정에서 GE에 현대캐피탈 지분을 매각하면서 최소한 2천억원대의 현금을 확보하기도 했다.
당시 현대차 그룹은 현대차(22%), 정몽구 회장(8.45%), 우리사주조합(6%), 정의선 부사장(0.42%) 등 현대캐피탈의 지분 38%를 주당 1만6천원씩 받고 GECF에 매각해 4천3백17억원의 현금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런 글로비스 지분 매각, 현대캐피탈 지분 매각 등 해외 큰손들에게 계열사 지분을 팔아 확보한 현금이 결국 정씨 부자의 현대차 지배력을 높이는 데 쓰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정씨 부자의 현금 확보로 가장 먼저 주가에서 덕을 본 업체는 현대오토넷이다. 지난 2002년에도 현대차에서 정 부사장이 대주주인 본텍과 현대차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모비스의 합병을 추진하다가 시장의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다.
만약 정 부사장이 현대오토넷을 인수하고, 본텍과 현대모비스, 현대오토넷의 삼자합병을 추진할 경우 2002년과는 달리 수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시나리오의 문제는 본텍이나 현대오토넷의 업종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본텍은 카오디오와 내비게이션, 에어백 등을 생산하면서 꾸준히 현대오토넷의 영역을 잠식해들어가고 있다. 때문에 현대오토넷과의 합병이 중복투자라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다. 하지만 예금보험공사의 관리를 받고 있는 현대오토넷의 인수 예상가액이 1천6백억~1천8백억원선이라는 점에서, 또 현대오토넷의 현대차 매출 의존도가 50%가 넘는다는 점에서 ‘3사 합병 뒤 구획정리’라는 카드도 무시할 수 없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일부 증권사들은 현대오토넷보다는 기아차나 현대차를 매수추천하고 있다. 동원증권은 기아차에 대한 매수의견을 내고 있다.
정씨 부자가 기아차 주식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은 데다, 주가 때문에 같은 2천억원이라도 현대차 지분을 살 수 있는 물량이 1.7%인데 반해 기아차는 5.7%의 지분 매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현대모비스가 갖고 있는 현대차 지분이 35% 수준이라 지분매집을 통한 경영권 방어에 나설 만한 이유도 없다는 게 동원증권쪽의 시각이다. 때문에 이들은 정씨 부자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의 순환출자구조 중 기아차 고리를 노릴 것이라며 기아차 주가가 정씨 부자의 매집으로 오를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면 하나증권에선 “현대차의 경영권 안정을 위해 현 주가 수준이 높지 않을 때 높이는 방향으로 쓰이는 것이 더 합당한 투자안으로 보이기 때문”에 글로비스 매각대금이 현대차 지분 매입에 쓰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조금씩 엇갈리는 이들 증권가 시각의 공통점은 정의선 부사장이 계열사 지분을 확대할 것이라는 점이다. 어떤 계열사를 고를 것이냐만 다를 뿐.
여러모로 재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는 삼성그룹에선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상무가 지난 95년 부친에게서 증여받은 44억원으로 ‘재테크’를 해 지난 10월 주식 재산 1조1천6백10억원으로 국내 2위의 부자로 등극(온라인 경제매거진 에퀴터블)했다.
정 부사장이 어떤 계열사를 골라 주식 재테크를 통한 현대차그룹 사전상속 행보를 보일지 증권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