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익~”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선수들 얼굴에 희비가 교차했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스코어 차이였다. 경기에 패한 A 고등학교 농구부 선수들은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후회 없는 경기였다. 패배를 인정하고 상대팀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A 고등학교 농구부 코치가 상대팀 코치의 머리끄덩이를 잡았다. 둘 사이에 언성이 오갔고 이는 결국 지도자들끼리의 멱살잡이로 이어졌다. 선수들도 덩달아 흥분했다. 코트 위에 뒤엉킨 선수, 코치들의 모습에 그 자리에 있던 학부모, 농구 관계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후 경기를 지켜보던 이들의 만류 덕분에 사태는 겨우 진정됐고, 상대팀 코치의 멱살을 잡은 A 고교 코치는 결국 3개월 자격정지 징계 처분을 받았다. 상대 선수를 때려 코피를 나게 한 A 고교 선수 한 명 역시 2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관계자들 입에선 “단순히 경기에 졌기 때문에 벌어진 일만은 아닐 것”이란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A 고교 코치가 코트 위에서 이성을 잃을 만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것.
사건 다음날 B 고교 코치가 입을 열었다. 춘계연맹 대회가 시작하기 전부터 두 코치는 몇 번의 만남을 가졌다. 중학교 선수들 중 수준급 실력을 자랑하는 C 선수 스카우트 문제 때문이었다. C 선수는 A 고교 코치가 3년간 지도해온 선수였다. 이 선수가 B 고교로 스카우트되는 과정에서 마찰이 있었던 것. 게다가 B 고교 코치가 “A 고교 코치가 C선수를 1년간 뛰게 하지 말라며 정강이를 발로 차는 물리력을 행사했고, 코치직을 그만두든지 스카우트 비용을 지불하라는 말도 했다”고 밝히자 파장은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했다. C 선수는 A 중학교를 졸업하고 B 고교에 입학할 예정이다.
C 선수의 학부모 역시 마음이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아들의 스카우트 문제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3년 동안 가르쳐주고 뒷바라지해준 A 고교 코치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러나 선수와 가족이 희망해 결정한 사항이다. 코치가 이를 막을 순 없다. 17일 기자와 통화한 A 고교 코치 역시 이러한 학부모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이 장래가 걸렸는데 내가 이 문제에 함부로 개입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C 선수뿐만 아니라 A 중학교 선수들을 3년간 지도하면서 아이들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보람을 많이 느꼈다. 이 선수 모두 A 고등학교로 같이 올라가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A 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선수들에 대한 애착이 컸다. 하지만 너무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우리 학교와 농구부 선수들에게 누를 끼치게 돼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는 경기 전에 B 고교 코치를 만나 스카우트 문제로 서로 언성을 높인 건 사실이지만 협박이나 폭행은 없었다고 밝혔다.
“B 고교엔 쟁쟁한 선수들이 많은데다 전력도 좋다. 그래서 혹시 B 고교와 C 선수 사이에 의견 조절이 가능하다면 스카우트 문제를 다시 생각해볼 순 없느냐고 부탁을 했을 뿐이다. B 고교 코치 역시 그런 사정을 이해하고 스카우트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후로 B 고교 코치가 몇 번씩 이를 번복했다. 확답을 주지 않은 상태로 시간이 계속 흘러가니 나도 답답하지 않았겠나. 그러다 언성이 높아지게 됐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우발적으로 그의 멱살을 잡은 건 정말 잘못된 행동이었다.”
사건 직후 그는 B 고교 코치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를 했고, 서로 화해한 상태라고 전했다. B 고교 코치 역시 미안하단 이야길 전했단다. A 고교 선수 때문에 다친 선수에 대해선 그의 학부모를 만나 소정의 치료비를 지불하고 죄송하단 말을 전했다. 농구계를 당황케 한 폭행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기자와 통화한 B 고교 감독 역시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호흡곤란을 일으킨 학생이 있긴 한데 이제 괜찮아졌다. 응급차가 왔다는 기사가 나왔던데 본 적 없다. 그 자리에서 다친 학생을 진정시켰다. 아직 춘계연맹 경기도 남아있는 데다 코치도 예민해진 상태라 이 문제가 계속 불거지길 원치 않는다. 팀 분위기가 예전으로 다시 돌아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사건이 완전히 진정된 후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속 시원히 털어놓겠다.”
선수들이 유명 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나 지역 간, 학교 간 극심한 선수 불균형 문제는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 한국중고등농구연맹 박안준 사무국장은 “지역 균형 차원에서 선수가 다른 시·도에 있는 학교로 진학할 경우 1년 동안 출전 정지 제한을 받는다. 같은 시·도의 학교로 진학할 땐 제한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 역시 행복추구권 차원에서 선수 인권에 위배된단 의견이 많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일본처럼 전문적인 농구 동아리를 육성해 선수 수급에 다양화를 꾀하는 방법은 어떨까. 박 국장은 “그렇지 않아도 이번 고려대총장배에서 동아리 클럽팀을 참여시켜 경기를 벌였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이후 참여를 원한다는 문의가 빗발쳤다. 우리도 동아리 클럽팀 참여 확대 방안을 고려중이다. 아직 준비가 부족한 단계지만 차차 개선해갈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