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왕의 남자’로 군림해 온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 등 여권 핵심 실세들이 ‘한상률 비리’ 의혹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렸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 추이에 따라 정치권은 또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여기에 한 전 청장은 2007년 대선정국 당시 최대 쟁점이던 ‘도곡동 땅 실소유주’ 논란의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로 지목받고 있다. 한 전 청장의 ‘입’에 여야 정치권은 물론 청와대가 바짝 긴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연 숱한 의혹과 미스터리를 풀어줄 핵심 당사자로 지목받아 온 한 전 청장의 입을 통해 현 정권의 비밀스런 ‘판도라의 상자’는 열릴 수 있을까.
“한상률 전 청장의 증언에 따라 국세청과 검찰은 물론이고 형님권력과 대통령에게까지 피바람이 불 수 있을 것이다.”
한 전 청장의 귀국과 검찰 소환(2월 28일) 소식을 접한 민주당 이춘석 대변인이 던진 일성이다. 이 대변인은 2월 24일 브리핑을 통해 “한 전 청장은 지난 2007년 정권교체기에 청장 연임을 위해 대통령 형님을 만나고, 실세 로비자금 10억 원을 조성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며 여권 핵심 실세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을 직접 겨냥했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청와대까지 뒤흔들 수 있는 휘발성이 강한 시한폭탄이 터질 수 있음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한 전 청장은 현 정권 실세들의 이름이 오르내린 각종 대형 사건에 깊숙이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한 전 청장을 상대로 민주당과 참여연대 등이 고발한 ‘그림 로비’ 사건, 청장 연임 로비 의혹,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 과정에서 빚어진 직권남용 등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그림 로비’ 사건은 한 전 청장이 2007년 초 인사 청탁을 목적으로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고 최욱경 화백의 고가 작품 ‘학동마을’을 상납했다는 의혹이 골자다. 검찰은 한 전 청장이 이 그림을 한 갤러리에서 500만 원에 구입한 사실을 확인했으나 이를 청탁 목적으로 전 전 청장에게 전달했는지 여부는 아직 밝혀내지 못한 상태다. 또한 그가 로비를 위해 구입한 그림은 1점이 아닌 5점이고, 나머지 그림들은 현 정권 출범 후 아무개 실세에게 건네졌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연임 및 구명로비 사건에는 여권 실세들이 등장해 검찰 수사 추이에 따라 강력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한 전 청장은 국세청장이 된 직후인 2007년 말께 현 정권 실세들을 만나 골프 접대 등으로 연임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한 전 청장이 10억 원의 로비자금을 조성해 여권 실세에게 전달했다는 구체적인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 전 청장이 이상득 의원에게 골프 접대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연임 로비 의혹 등이 불거지자 여권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 한 전 청장을 해외로 도피시켰다는 이른바 ‘여권 비호설’도 끊이질 않았다.
한 전 청장은 또 ‘박연차 구명로비’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태광실업 세무조사가 시작된 2008년 7월 30일부터 박연차 전 회장이 검찰에 고발된 2008년 11월까지 박 전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고 구명로비를 벌인 혐의 등으로 기소된 천신일 회장이 한 전 청장과 이상득 의원 등에게 수차례 전화해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했다는 것이 사건의 핵심이다.
검찰은 천 회장을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지만 한 전 청장과 이 의원이 ‘구명로비’에 어느 정도 개입했고, 실제로 박 전 회장 구명과 관련해 모종의 역할을 했는지 여부 등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한 전 청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2009년 5월)를 야기한 태광실업에 대한 표적 세무조사를 지시한 장본인이고, 세무조사 결과를 이 대통령에게 직보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로 한 전 청장은 국세청장 시절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관할인 부산지방국세청이 아닌 ‘국세청의 중수부’로 통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에 배당해 직권을 남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재계 순위 620위에 불과한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치고는 극히 이례적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이에 대해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2009년 4월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이 한 전 청장에게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지시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당시 박 원내대표는 “국세청이 입수한 박 회장 여비서의 다이어리에는 이 대통령 측에 건너간 자금 리스트가 있는데, 이것을 한 전 청장이 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를 했다”며 “검찰에 넘겨 준 리스트에는 이 대통령 대선자금이 삭제돼 있으며, 당시 민정수석이 국세청장에게 (자신을) 경유하지 않고 직보한 것에 대해 꾸짖은 적도 있다”고 주장해 파문을 야기하기도 했다. 박 원내대표가 2월 2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이상득 의원 정계 퇴진’을 요구한 것은 한 전 청장의 귀국 기류를 사전에 인지하고 미리 여권에 선전포고를 한 게 아니냐는 시각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비록 ‘박연차 게이트’ 사건은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사실상 종결됐지만 이 사건을 촉발시킨 ‘키맨’으로 지목받고 있는 한 전 청장이 청와대나 여권 실세 개입 여부 등과 관련한 메가톤급 증언을 할 경우 정치권 전체가 또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여권과 청와대는 한 전 청장이 2007년 대선정국 당시 최대 핵뇌관이었던 ‘도곡동 땅 실소유주’ 논란의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구속된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은 포스코건설 세무조사 과정에서 도곡동 땅이 이 대통령 소유라고 나온 전표를 봤다고 진술한 바 있다. 한 전 청장은 안 전 국장의 진술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갖고 있는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 전 청장이 연임로비 과정에서 국세청이 보유하고 있던 이 대통령 관련 BBK 자료를 무기로 여권 실세 쪽과 거래를 시도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한 전 청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이미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한 민주당은 검찰 수사를 지켜본 뒤 미흡할 경우 국정조사나 특검 도입을 적극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아직 2년여의 임기가 남아 있는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한 전 청장과 검찰이 정면 승부를 펼치기에는 분명 현실적인 한계가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2년여 세월을 외국에서 체류해 온 한 전 청장이 불쑥 귀국을 선택한 것도 청와대나 검찰과의 사전 조율 등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한 전 청장의 귀국이 여의도 정치권과 청와대를 뒤흔드는 핵폭탄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찻잔속의 태풍’으로 그칠지 정치권과 국민적 시선이 서초동 검찰청사로 쏠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