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구 회장(왼쪽), 이구택 회장 | ||
현대자동차그룹과 포스코의 철강전쟁이 다시 한번 불붙을 조짐이다.
현대차와 포스코는 핫코일 문제를 둘러싸고 지난 2001년 정면 충돌한 바 있다. 당시 이 문제는 정몽구 회장과 유상부 전 회장이 단독으로 만나 해법의 실마리를 모색했으나 가닥을 잡지 못할 만큼 첨예했다.
그런 지 3년이 지난 2004년 말. 또다시 두 그룹은 철강 문제를 두고 정면 충돌이 예상된다.
두 그룹이 철강 문제를 두고 쉴 새 없이 맞부딪치는 이유는 포스코가 국내 철강 시장의 독점공급자이고, 현대차는 가장 철강을 많이 소비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기회만 있으면 철강공급선의 다변화를 모색해왔고, 이 문제로 두 그룹은 미묘한 신경전을 벌여왔다.
특히 두 회사의 긴장관계는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이 고로건설을 공식화하면서 더욱 표면화되고 있다. 고로건설에 나선다는 것은 철강생산에 진출한다는 의미여서 충돌이 불가피하다.
지난 10월21일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충남 당진의 한보철강을 방문한 자리에서 현대차동차 계열사에서 ‘고로 제철소’를 세우겠다는 것을 공식화했다.
과거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광양만 인근인 하동이나 아산만 등을 고로제철소 건설 후보지로 정하고 고로 제철소 건설을 시도하기는 했지만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IMF 직전에도 정몽구 당시 현대정공 회장이 고로 제철소 건설을 추진했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다 한보철강 인수를 계기로 마침내 고로 건설 의지를 공식화한 것이다.
정 회장은 지난 10월21일 한보철강 방문 현장에서 “자동차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냉연강판 등 품질 좋은 철강재 확보가 필수적”이라면서 “고품질의 철강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고로 사업 투자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고로 사업 추진 의지를 공식화했다.
그러자 포스코에서도 GM대우와의 협력 강화를 선언하는 등 국내 최대 자동차 생산업체 이외의 대안을 찾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실 현대차그룹의 철강 산업 진출 의지는 지난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그룹을 인수한 직후부터 감지됐다.
현대차는 지난 2000년 3월 정 회장의 사돈이 경영권을 갖고 있던 강원산업을 인수해 계열사인 인천제철(현 INI스틸)과 합병시켰다.
이어 2000년 12월엔 삼미특수강(현 BNG스틸)을 인수했다.
이렇게 라인업을 정비한 현대차는 철강 3사-INI스틸, 현대하이스코, BNG스틸을 앞세워 올해 한보철강 인수에 성공했다. 한보철강의 A지구의 철근생산라인을 INI스틸이 운영하고, B지구의 냉연공장을 현대하이스코가 분할운영에 나선 것.
특히 INI스틸은 내년부터 A지구에서 미니밀을 가동해 포스코가 30여 년동안 독점해오던 열연생산 독점을 깨게 된다.
물론 생산량은 포스코의 10%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두 업체간을 경쟁관계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현대차도 당분간 수요량의 많은 부분을 포스코에 의지해야 하는 만큼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고로 신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생산을 위한 것일 뿐”이라며 고로 신설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포스코에선 현대차그룹의 열연 시장 참여가 현실화되자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광양의 미니밀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발표하는 등 신경전이 가시화됐다.
포스코는 지난해 1월부터 가동을 중단했던 광양제철소의 미니밀 2호기를 지난 9월 중순부터 재가동해 열연강판 원료로 기존의 고로쇳물 대신 고철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포스코에 고철을 사용하게 되면 고철을 녹여서 쓰는 전기로 방식인 한보철강이 타격을 입게 된다. 실제로 이웃 일본에서도 이런 식으로 신규 미니밀 업체를 견제했던 적이 있었다.
현대차 입장에서 보면 미니밀 생산이 시작되기도 전에 원자재난에 시달려야 할 판이다.
포스코는 이어 지난 10월 말 GM대우와 협력관계 강화를 위한 협약 체결을 발표했다. 현대차가 고로 신설을 할 경우 계열사인 현대하이스코와 손잡고 나아가는 만큼 포스코 입장에선 그 대안으로 GM대우와의 협력 강화를 선언한 것.
이는 자동차할부시장에서 현대가 GE와 손잡고, GM은 삼성과 손잡고 서로 견제에 나선 것과 맥락이 상통하는 부분이다. 당장은 현대차가 포스코의 가장 큰 수요처의 하나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쟁구도로 가기 때문에 대안 마련에 나선 것.
포스코가 현대차의 고로 신설에 대응해 현대차의 철강사업에 대해 사방에서 견제에 들어가자 정몽구 회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 회장은 지난 10월24일 일본을 방문해 JFE스틸 사장을 만나는 등 철강생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원자재인 슬래브 확보 등에 대해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이 고로신설을 할 경우 국내 유일 고로사업자인 포스코의 협력과 기술이전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고, 원자재 확보나 자금, 기술 확보면에서 일본 업체와의 협력이 불가피한 것이라, 정 회장의 일본 방문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최근 아시아 지역에선 자동차용 강판재 수요가 급증해 공급이 달리고 있다.
이미 도요타나 닛산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철강재 부족으로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이들은 포스코에 자동차용 강판을 공급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내년 자동차 생산용 강판재 3백만t 정도 중 50% 정도는 포스코에서 공급받아야만 한다.
현대차로선 고로 완성 때까지 포스코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실정이긴 하다. 하지만 고로 완성은 시간문제여서 포스코로서는 현대차의 기세를 초반부터 꺾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실제로 포스코 관계자는 “현재 입장에서는 현대차가 자사에서 필요한 핫코일 등을 우리(포스코)에게서 조달받지 않으면 안되지만 고로건설이 끝나면 장차 조달물량이 줄어들 게 뻔하다. 포스코로선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현대차와 관계를 정리해나갈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현대차가 포스코에 대한 의존율이 줄어들기 전에 최대한 길을 들이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사실 포스코로선 철강제품의 최대수요처인 현대차에 대해 ‘불가원불가근’의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멀리할 수도 가까이 할 수도 없는 것.
포스코와 현대차의 철강전쟁이 다시 막을 올린 가운데 밀어붙이는 저돌적인 스타일의 경영자인 정몽구 회장이 포스코를 상대로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