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방 동기 정치인 통해 김무성 등 만난 뒤 인맥 넓혀…선물 공세, 명함 뿌리기, 친분 과시 ‘재능’ 꽃피워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의사는 지난해 9월 평소 알고 지내던 연예기획사 임원으로부터 김 씨를 소개받았다. 명함엔 처음 들어본 체육단체 회장 직함이 박혀 있었다. 김 씨는 이 의사에게 “자신과 친한 정치인, 연예인들의 미용 시술을 해주면 상당한 홍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의사는 손해 볼 게 없다고 생각, 이를 수락했다. 실제 김 씨는 TV에서나 봤던 몇몇 전직 의원들을 병원으로 데리고 왔다.
김 씨의 인맥 쌓기는 이런 식이었다. 카드를 돌려막는, 이른바 ‘카드깡 방식’ 이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에겐 무료로 미용시술을 받을 수 있다면서 호의를 사고, 의사들에겐 홍보를 앞세웠다는 얘기다. 이 의사는 “수완이 좋다고 해야 하나. 사실 피해를 크게 본 것은 없다. 오히려 도움이 됐을 수 있다. 지금 언론 등에 나오는 것을 보면 사기꾼에 불과해 보이는데, 이런 식으로 사람을 모았던 것 같다”고 귀띔했다.
‘생계형 범죄자’에 가까웠던 김 씨의 운명이 바뀐 것은 언론인 출신 정치권 인사 송 아무개 씨를 만나면서다. 사기죄로 2년형을 선고 받은 김 씨는 교도소에서 송 씨를 알게 됐다. 이른바 ‘감방 동기’인 셈이다. 과거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총선 출마를 시도하기도 했던 송 씨는 보수 인사들, 특히 TK(대구‧경북) 쪽 인맥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항 출신인 김 씨와 친해졌던 것도 이런 인연 때문이었다.
김 씨는 2017년 12월 사면으로 풀려난 뒤 먼저 출소했던 송 씨를 찾아갔다. 자신의 고향 집을 주소로 하는 수산업체를 설립한 김 씨는 송 씨가 운영하던 인터넷 매체의 부회장으로 임명됐다. 유력 인사들이 처음 만난 김 씨에 대해 크게 의심을 하지 않았던 것도 언론사 부회장 명함 덕분이었다. 김 씨는 송 씨를 통해 박영수 특검, 김무성 전 의원, 여러 언론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김 씨의 ‘재능(?)’은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김 씨는 송 씨로부터 소개받은 인사들을 바탕으로 인맥을 넓혀갔다. 언론사 부회장을 비롯해 자선단체 임원 등 여러 개의 명함을 뿌리고 다녔다. 고가의 선물들도 활용했다. 김 씨의 한 지인은 “선물 리스트를 본 적이 있는데, 얼핏 봐도 100명은 넘었다. 경찰, 검찰, 정치인, 연예인들에게 선물을 보낸다고 했다”고 귀띔했다.
김 씨 지인은 “김 씨는 강남 일대 룸살롱을 하루에만 여러 번 간 적도 있다. 수억 원짜리 차를 여러 번 바꿨다. 그의 재력을 의심하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김 씨가 물 쓰듯 썼다는 그 돈은 100억 원대의 사기 행각, 술집 운영 등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앞서의 지인은 “김 씨가 남한테 사기를 치고 다니는 것은 전혀 몰랐다. 고향에 있는 술집이 장사가 잘되는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이 지인은 김 씨와 남자 배우 A 사이에 있었던 일화도 들려줬다. 김 씨는 평소 A 와 가깝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둘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소문을 들은 A는 김 씨에게 연락을 해 “왜 내 이름을 팔고 다니느냐”고 항의했다. 이에 김 씨는 “직접 사과를 하고 싶다”면서 A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둘은 여러 차례 만나 친분을 쌓았고, 김 씨는 A에게 수산물 등의 선물을 보냈다.
김 씨는 연예인들과 알고 지내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자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씨와 한 차례 만난 적이 있다는 한 사업가는 “밥을 먹는데 느닷없이 한 여자 가수와 전화 연결을 해서 바꿔준 적이 있다. 다음에 같이 보자는 말까지 했다”면서 “김 씨는 굴지의 연예기획사 대표들과 친하다고 했다. 내가 운영하는 업체의 행사에 자신이 친한 가수들을 불러준다고도 했다”고 귀띔했다.
어느 순간부터 김 씨는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는 데 공을 들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김 씨 지인은 “정치인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전직 국회의원은 “친한 기자와의 식사 자리에 김 씨가 나왔었다. 인터넷 언론사 부회장이라고 소개했다. 명함엔 한 민간단체 의 임원이라고 돼 있었다”면서 “농담조로 ‘나중에 고향에서 큰일 해야죠’라고 했더니 김 씨가 ‘많이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하더라. 정치를 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지금까지 김 씨 사건에 거론되고 있는 정치인들은 대부분 국민의힘 소속이다. 하지만 김 씨는 여야 구분 없이 정치인들을 광범위하게 만났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유력 정치인들과의 거짓 친분을 내세우기도 했다. 예를 들면, 국민의힘 ‘박근혜계(친박) 인사들을 만날 땐 과거 ‘박근혜 정부 청와대 십상시’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전직 청와대 비서관 이름을 팔았다.
또 ‘이명박계(친이)’로 분류되는 정치인들에겐 이명박 전 대통령 지근거리의 인사 이름을 언급했다고 한다. 여당 인사들과의 만남에선 문재인 대통령 측근을 거론했다는 제보도 있다. 상대방에 따라 ‘맞춤형 인맥’을 활용한 셈인데, 경찰 관계자는 “김 씨가 일방적으로 이름을 판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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