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민심투어 진행하며 입당 시기 저울질…이미지 겹치는 최재형 맹추격도 따돌려야
그러나 상륙이 대선고지 점령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제1야당 국민의힘을 상징하는 ‘2번 국도’를 타고 대선 고지로 진격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경로를 선택할지 결정해야 한다. 만만치 않은 화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 맹추격도 따돌려야 한다.
#총상 없이 무사 상륙?
압도적인 여론조사 지지율을 업고 지난 19대 대선에 도전했다가 출마 시동을 건 지 한 달도 채 안 돼 중도 포기했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사례는 계속해서 윤 전 총장을 유령처럼 따라다녔다. 대선 고지는커녕 정치권 첫 상륙 과정에서 난타당한 뒤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는 일부 예측 속에 윤 전 총장은 일단 정치권 상륙작전에는 성공한 모양새다.
윤 전 총장은 거침없이 직진하는 그의 장기답게 6월 29일 정치권 상륙작전도 우회로를 선택하지 않고 정공법을 택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사표를 던지면서 ‘권력 사유화’,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국민 약탈’ 등 위험수위까지 올라간 거친 표현으로 집권세력을 공격했다.
윤 전 총장은 출사표의 절반 이상을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강한 질타로 채웠다. 이 과정에서 ‘매표에 가까운 포퓰리즘 정책’, ‘윤리의식이 마비된 먹이사슬 구축’ 등의 문장을 써가며 문재인 정부를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으로 규정했다. 문재인 정부의 간판 정책인 소주성(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등도 하나씩 나열하며 ‘무도한 행태’라고 몰아붙였다. “도저히 이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말도 꺼내들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약 15분가량 선언문을 낭독한 뒤 곧바로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른바 'X파일' 논란부터 장모 의혹까지 민감한 질문 세례가 쏟아졌지만, 윤 전 총장은 비교적 차분한 어조로 답변을 이어갔다. 여권에선 윤 전 총장이 답변을 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돌린 것을 두고 ‘도리도리’라는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은 일단 정치 무대에 데뷔하면서 누리는 ‘컨벤션 효과’를 충분히 잡아챘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전 총장이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한 날, 윤봉길 의사 기념관 앞에는 전국 각지에서 도착한 화환 100여 개가 늘어섰고, 수십여 개의 현수막도 내걸렸다. 윤 전 총장의 대권 도전을 지지하는 내용이었다. 행사 시작 시간인 당일 오후 1시가 다가오자 지지자 수백여 명은 기념관 앞 공터에 운집해 ‘윤석열 대통령’을 연호했다.
시청률 조사회사 TNMS에 따르면 7개 TV채널이 생중계한 윤 전 총장의 기자회견 시청률 합은 11.0%였으며 모두 258만 명이 시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한 주 전 동시간대 시청률 7%보다 4%포인트나 상승한 것으로 시청자 수로는 89만 명이 더 본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국민의힘 현역의원 20여 명이 이날 현장에 와 윤 전 총장을 응원했다는 것이었다. 윤 전 총장이 수사를 주도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출신지인 대구·경북 의원들까지 이날 행사장을 찾았다.
윤 전 총장은 기자회견 이후 TV 생방송에도 나가 인터뷰를 했는데 거침없는 답변 태도를 이어나갔다. 윤 전 총장은 6월 30일에는 국회를 방문, 출입 기자들의 상주 공간인 소통관을 찾았는데 미묘한 질문은 요리조리 답을 피해가면서도,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하는 등 검사 티를 벗고 정치인으로 변신하려는 노력을 최대한 쏟는 모습이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6월 30일 매일신문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의 데뷔 무대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당연히 정치를 처음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도 보였지만 결론적으로 볼 때 윤 전 총장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고 했다. 이 대표는 “여의도 정치 문법에 대한 비토가 상당히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치는 경험을 많이 쌓았다고 반드시 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언급, 윤 전 총장과 같은 신진 정치인들이 일으키는 바람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어차피 갈 곳은 제1야당?
가장 어렵다는 상륙작전에 일단 성공한 만큼 고지를 향한 진격 작전이 속도를 낼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일단 보고 있다. 무엇보다 윤 전 총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그리고 현 정부에서도 정치권 이해관계와 밀접한 수사를 하면서 여러 차례 정치권과 겨뤄봤다. 이런 측면에서 여느 공무원 출신 정치인과는 갖고 있는 무기 체계부터 다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출마선언부터 잘 이뤄졌다. 검사가 다루는 사건 안에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메커니즘이 녹아 있기 때문에 윤 전 총장이 우리 사회의 가려운 부분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윤 총장은 독서량이 풍부하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 토론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정치학습 속도가 괜찮을 것이다.”
윤 전 총장의 서울대 법대 후배이며 같은 검사 출신으로 그를 잘 아는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은 대선 고지를 향해 무사히 진격해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을 상징하는 ‘2번 국도’로 진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윤 전 총장은 기자회견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선 2번 국도를 탈 명분이 아직 충분하게 쌓이지 않았다는 판단을 윤 전 총장 측은 하고 있다. 2번 국도가 대선고지로 향하는 데 있어서 쉽고 빠른 길이 될 수 있지만 ‘국민의힘에 가려고 검찰총장에 재직하는 동안 야당 편을 들어주는 정치 수사를 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유다. 때문에 윤 전 총장은 7월 민심투어를 계획하면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칠 방침이다.
명분이 아닌 현실론적 측면에서도 국민의힘 입당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윤 전 총장 측은 보고 있다. 국민의힘 내부 주자들 가운데 윤 전 총장에 필적한 만한 압도적 후보가 아직 없는데 굳이 조기에 입당, 혹시 모를 공격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윤 전 총장 측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정당 도움이 없으면 대선캠프는 돈 가뭄 때문에 버티기 어렵다는 정치권의 일반론이 있지만 요즘은 이 말도 구시대 유물이 됐다. 대통령 선거로부터 240일 전인 오는 7월 12일부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고, 동시에 예비후보의 정치 후원금 모금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조기 입당을 안 하더라도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된 셈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차기 대선 예비후보가 후원회를 개설하면 25억 6000만 원까지 모금할 수 있다고 최근 공고했다. 대선 캠프를 운영하기에는 충분한 자금이다. 이에 따라 윤 전 총장은 이르면 7월 중순쯤 예비후보 등록을 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한 다선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윤 전 총장이 출마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정치 철학은 국민의힘과 맞닿아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분명하게 했다. 윤 전 총장이 어딜 도망가겠나. 어차피 제1야당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자꾸 빨리 들어오라고 닦달하면서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보이기보다 기다려주는 것이 맞다. 오히려 지금 급선무는 국민의당과의 합당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서 제3지대를 확실하게 없애는 것이다. 그래야 윤 전 총장 선택 경로가 2번으로 조기에 굳어진다.”
#최재형, 전투력으로 누른다
윤 전 총장이 대선 고지를 향해 홀로 진격하는 것은 아니다. 제1야당 국민의힘 내부 주자들도 있고, 특히 그와 이미지가 상당 부분 겹치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장은 윤 전 총장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부분이다. 정치권에서는 최 전 원장이 대선 출마 선언을 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을 단순 비교한다면 보수정당 대선 후보로는 오히려 최 전 원장이 더 어울린다는 객관적 평가도 존재한다. 2일 장모의 법정구속으로 커지는 처가 논란 등 X파일이 따라다니는 윤 전 총장과 달리 도덕성과 관련된 시비가 최 전 원장에게는 일단 없다. 또 보수정당을 궤멸시킨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적폐수사의 주체라는 올가미가 윤 전 총장에게는 씌워져 있지만 최 전 원장은 이런 굴레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연장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전에 전격적으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하고, 자유로워진 두 전직 대통령이 자신들에게 가해졌던 무리한 수사 프레임을 들고 나올 경우에는 보수야당 대권주자로서의 윤 전 총장 위치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더욱이 최 전 원장이 보수정당 최대 지지층인 영남(경남 창원) 출신이라는 점도 서울 출신인 윤 전 총장보다는 더 많은 인센티브를 갖고 있다는 해석으로 연결된다. 최 전 원장 부친은 한국전쟁 참전 용사인 동시에 최 전 원장 집안은 최 전 원장을 포함해 3대가 군복무를 이행한 병역 명문가다. 또 최 전 원장이 아들 둘을 입양해 키워낸 감동 스토리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윤 전 총장에 비해 우월한 스펙으로 꼽힌다.
그러나 윤 전 총장 측은 전투력만큼은 최 전 원장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터라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적군을 한 명씩 제압하고 올라가는 것이 대선 고지 점령 방법인데 최 전 원장은 싸워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영남권의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얘기했다.
“여당 후보를 제압할 수 있는 후보를 내야 대선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데 지금 여당 상황을 보면 싸움닭 성향의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최종 후보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법으로 맞서야 하는데 최 전 원장으로는 거친 싸움을 할 수 있겠는가. 이번 대선은 정권 심판 성격인 만큼 앞뒤 가리지 않고 파고드는 투사형 후보가 결국 야권 후보로 선택받을 것이다. 최 전 원장은 반듯한 선비 스타일이지 투사는 아니지 않느냐.”
강민준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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