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갖은 악재로 코너에 몰린 이웅렬 코오롱 회장이 반전에 성공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 ||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직원들이 그룹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수백억원대의 횡령사고가 일어나고, 연말이 다가오는 시점에 계열사의 장부에서는 거액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고, 횡령 사건과 관련돼 경영진 개입 의혹이 재판과정에서 불거지고, 한켠에선 선대회장과 관련된 스캔들성 친자확인소송이 벌어지고….
이만하면 가히 총체적인 난국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 코오롱그룹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뿐이 아니다. 코오롱그룹의 주력사인 (주)코오롱은 지난 7, 8월 두 달간 구미공장 노조 파업 등으로 올 3분기에 2백32억원의 적자를 냈다. 한때 잘나가던 FnC코오롱도 지난 3분기에 6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겨우 봉합됐던 노사 갈등은 코오롱 계열사인 코오롱캐피탈의 거액 횡령 사고가 나면서 4분기에 다시 핫이슈로 불거졌다. 횡령액을 계열사들이 분담하며 메우는 과정에서 다시 구조조정 필요성이 제기되자 계열사 노조에서 강력반발하고 있는 것.
이 문제는 지난 9월 초 터졌다.
코오롱의 유일한 금융계열사인 코오롱캐피탈은 코오롱이 지분 85% 이상을 갖고 있는 회사다. 코오롱은 이 회사를 하나은행에 넘기기로 하고 자산 실사를 진행중이었다. 자산 실사중 4백70여억원의 횡령 사실이 드러난 것. 이 액수는 코오롱캐피탈의 총자산액 8백92억원의 52.9%에 해당하는 규모로 회사 존립 자체를 뒤흔들 만한 사안이었다.
결국 코오롱에선 이 횡령액을 보전해 주기로 하고 계열사에서 코오롱캐피탈의 증자에 참여하기로 했다. 코오롱캐피탈의 자본금을 3백11억원으로 감자한 뒤 코오롱이 2백51억원, 코오롱건설이 68억원, 코오롱제약이 58억원,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이 43억원 등 총 4백73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키로 결의했다.
하지만 코오롱 오너의 이런 결정에 대해 각 계열사 노조는 반대하고 나섰다. 회사측의 유상증자 참여안이 발표되고 난 뒤 코오롱 계열사 노조의 반발은 9월 말 (주)코오롱과 코오롱건설의 노조는 민노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코오롱캐피탈의 횡령으로 인한 손실을 계열사들의 출자로 보전키로 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웅렬 회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 회장의 경영실패를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계열사에 전가한다는 것. 이들 코오롱 노조는 연일 구미 코오롱 공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코오롱 건설 노조도 단식 시위를 벌이는 등 코오롱 경영진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3분기 내내 이런 안팎의 악재에 시달리던 코오롱그룹에선 4분기 들어 승부수를 던졌다. 분위기 일신을 위해 대폭적인 물갈이와 함께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 등 구조조정안을 내놓았다.
코오롱은 지난 11월 말 인사에서 임원급 34명을 물러나게 하고 신규 임원을 5명만 임명하는 등 전체적으로 임원수를 1백27명에서 98명으로 줄였다. 물러난 인사 중에는 송대평 조왕하 김주성 부회장 등 부회장급 임원만 3명이나 됐다.
코오롱은 이번 인사에 대해 “올해 실적 부진에 따른 책임 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밝혀 세대교체 겸 구조조정에 나선 것임을 명백히 했다.
이어 12월 들어 주력사인 (주)코오롱에서 ‘조기 퇴직 우대제’라는 이름으로 ‘만 35세 이상, 근속연수 만 8년 이상’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자를 모으는 등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코오롱은 이 조기퇴직 우대제에 대해 “2004년 사상 최대의 적자가 예상되는 등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경영상 해고라는 극단적 상황을 피하고 퇴직 후 생활안정 및 진로 재설계에 도움을 주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코오롱 내부에서도 이미 2004년을 ‘사상 최대 적자의 해’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코오롱 노조 등 내부 구성원들 일부가 이번 ‘조기 퇴직 우대제’에 대해 코오롱캐피탈 횡령 사고로 인해 엉뚱하게 그룹 계열사 직원들만 피해를 본다고 인식하고 있어서 사태가 복잡하게 꼬이고 있다. 코오롱 노조에선 “코오롱의 경영 위기는 경영진의 판단잘못에서 비롯된 부실 누적 때문”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들은 그 근거로 “비자금 조성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는 코오롱캐피탈 자금횡령 사건이나 코오롱이 지분 47%를 출자한 HBC코오롱의 70% 자본잠식 사례 등 부도덕하고 상식의 범위를 벗어난 무책임 경영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HBC코오롱은 구두나 차량, 오디오 기기 등 고가 사치품 수입업체로 이 회장의 개인 지분이 들어가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노조의 비난이 점차 이웅렬 회장 등 오너 경영인에게 모아지고 있는 점도 코오롱그룹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점입가경으로 코오롱 창업주 이원만 회장의 숨겨둔 아들임을 자임하는 사람이 미국에서 친자확인 소송을 낸 게 외부에 알려졌다.
지난 11월 말 이동구(미국 이름 피터)라는 이름을 가진 20대 중반의 한국계 미국인이 미국 LA지방법원에 5백만달러의 상속권을 요구하는 소송을 낸 것이 미국 현지 유력 언론
특히 코오롱의 경영위기와 오너의 책임경영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오너 일가족 내부의 스캔들이 터져 이웅렬 회장쪽에선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의 경우 방향이 어떤 쪽으로 가닥을 잡던 간에 오너 일가에 대한 신뢰성에 적잖은 타격을 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
IMF 직후 그룹경영권을 이어받은 이웅렬 회장. 40대 오너 2세의 선두주자로 각광받았던 이 회장의 경영가도에 뜻밖의 악재들이 일시에 몰려들고 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이웅렬 회장이 구조조정이라는 강수로 이 사태를 진정시키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