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자철 빈자리 누가…지난해 5월 월드컵대표팀 예비엔트리에 포함된 이근호(오른쪽)와 구자철이 훈련을 하는 모습. |
그러나 어느 순간 K리그는 유럽 리그들의 공급처가 됐을 뿐, 딱히 스포츠신문 1면을 장식할 만한 스타가 없어 고민을 거듭한다. 최악의 현상. 항상 그랬듯이 ‘스타 부재 → 텅 빈 경기장 → 구단 재정 악화’라는 악순환의 반복이 불 보듯 뻔해 보인다. 정말 K리그에서 더 이상 스타 탄생은 기대하기 어려울까.
최근 사석에서 만났던 프로축구연맹의 한 직원은 “구자철의 빈자리를 메우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시즌 제주 유나이티드 돌풍을 이끈 주역인 구자철이 독일 분데스리가 VfL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했다는 소식은 가뜩이나 스타가 부족한 K리그를 더욱 침울하게 했다.
그래도 이슈가 매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해외 리그를 경험한 뒤 K리그로 유턴한 몇몇 스타들의 복귀는 가뭄에 단비와 같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올해에는 울산 현대가 그 중심에 섰다.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와 일본 J리그를 두루 거친 이호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돌아온 송종국, J리그 교토 상가를 떠난 곽태휘 등이 울산에 둥지를 틀고 김호곤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뭔가 2% 아쉽다. 딱히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부족해 보인다. 통상 축구계에 ‘대어’라는 수식과 개념은 주로 스트라이커 포지션에 쏠린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1998프랑스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1무2패의 저조한 성과를 내고 쓸쓸한 귀국길에 올랐을 때조차 K리그는 풍성했다. 공격 트로이카 3인방으로 뇌리에 박혀 있는 안정환(당시 부산)과 이동국(당시 포항), 고종수(당시 수원)의 인기는 오히려 월드컵 이전보다 훨씬 불타올랐다. 하지만 그게 끝. 강력한 임팩트를 엮어낼 스타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있다. 전북 현대 스트라이커 이동국이 있고, 포항 스틸러스를 떠나 K리그 2번째 시즌을 맞이한 설기현(울산)이 있지만 두 명에 의존하기에는 K리그가 많이 성장했다.
당연히 용병들에게 걸 수 있는 기대도 한계가 있다. K리그를 누비는 용병 상당수가 고국 무대에서는 무명인 경우가 많다. 한 에이전트는 “지금이라면 박지성과 이영표가 와야 K리그 붐 조성을 조금이나마 기대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구단 수익의 근간은 활발한 마케팅. 그러나 팬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스타플레이어들이 여실히 부족한 상황 속에 흑자 경영은 거의 불가능하다. 모 지방 구단 관계자는 “기존 스타 대신 ‘스타 키우기’에 매진하려해도 당장 성적이 걸려 있어 오랜 시간을 투자하기도 어렵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실망만 할 필요는 없다. 영웅들의 계보를 이어갈 스타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결코 아니다. 주변에는 여전히 뉴스 메이커들이 많이 있다.
J리그 무대를 누비는 스트라이커 조재진과 이근호, 특급 미드필더 이천수 등 굵직굵직한 대어들의 K리그 유턴 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실 이들 3인방의 복귀 루머는 작년 중순부터 계속 흘러나왔다. 실제로 조재진, 이근호는 거의 합의점까지 도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문제는 연봉과 이적료 등 몸값.
이근호는 측근이 현 소속 팀 감바 오사카를 5차례나 방문하며 협의를 진행, 전북행이 거의 확정되는 듯했으나 이근호가 J리그로 옮기기 전 소속 팀인 대구FC에 줄 이적료가 발목을 잡았다. 최근 이근호는 물오른 컨디션을 보이며 국가대표팀 조광래호 재승선 얘기가 서서히 나오고 있다. 또 다른 황태자의 등장을 기대해도 좋은 상황.
조재진의 경우는 울산과 개괄적인 협의를 진행했지만 역시 높은 연봉이 걸림돌이었다. 외부에 알려진 조재진의 희망 연봉은 10억 원가량. 감바 오사카는 조재진을 풀어주면서 아무 조건을 내걸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소속 팀을 찾지 못하고 있다. FC서울과 수원 삼성 등은 조재진이 희망 연봉을 5억 원 수준으로 낮춘다면 영입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 특히 하태균의 부상 공백을 우려한 수원이 적극적인 자세다. 수원은 라이벌 서울에 비해 공격진이 부족하다. 최성국, 염기훈 등 섀도 스트라이커나 측면 윙 포워드를 소화할 수 있는 멤버들과 호흡을 맞출 뚜렷한 원톱 요원이 없다는 지적.
이천수에게는 괘씸죄가 적용되고 있다. 전남 드래곤즈를 떠날 때 모양새가 좋지 못한 이천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라며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전남은 이천수가 석고대죄하지 않으면 국내 복귀는 반대하겠다는 입장이다. 단순히 위약금 3억 원이 문제가 아닌, 이천수 본인의 진지한 사과를 원한다는 것. 전남 정해성 감독도 사견임을 전제로 이천수를 풀어줄 용의를 내비쳤으나 자존심을 완전히 버린 이천수의 사과가 없는 한, K리그 복귀는 불가하다.
그렇다면 잠시 잊혀진 영웅들은 어떨까. 수원을 떠난 이관우의 거취가 불투명하다. 프로연맹 등록 마감일인 2월 28일까지 이관우는 새 팀을 찾지 못했다. 이관우와 함께 ‘축구특별시’의 전설을 써 내려간 대전 시티즌이 프랜차이즈 이관우와 적극적으로 협상을 진행했으나 구단이 제시한 연봉 1억 원은 이관우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었다. 수원은 신인 드래프트 1순위 연봉인 5000만 원가량을 재계약을 위한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수원 유소년 팀 매탄고에서 코치를 하고 있는 고종수처럼 기본 연봉 2400만 원에 다양한 공격 옵션을 주는 방안 등이 모색됐지만 이관우와 대전은 2월 26일 최종 미팅에서도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부상이 잦아 ‘유리몸’이라는 비판 속에 이관우는 절치부심하지만 결코 밝은 미래는 아니다. 중국 슈퍼리그와 일본 J2리그 등이 대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일단 K리그를 누비는 이관우의 모습은 당분간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이관우가 아직 은퇴보다는 현역을 잇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사실. 역시 ‘파랑새’ 백지훈도 아직 수원에 적은 뒀지만 출전 엔트리에 포함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관우와 백지훈 등은 그저 현역 시절의 끝자락에서도 영웅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는 중국 다롄스더 안정환의 케이스가 부럽기만 하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