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야구선수 은퇴 이후 해설가로 변신한 양준혁을 양재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이 사무실은 언제 마련한 것인가.
▲사무실을 오픈한 건 한 달가량 됐다. 양준혁 장학 재단을 준비하다보니 사무실이 필요했다. 평소 친하게 지낸 홍명보 감독과 산악인 엄홍길 선생님의 도움으로 장학 재단을 준비 중이다. 앞으로 홍 감독의 장학재단과 엄 선생님의 휴먼재단에다 내가 진행하는 야구재단이 손을 잡고 스포츠 전체를 아우를 수 있도록, 그래서 스포츠를 좋아하고 스포츠 선수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말 대전에서 청소년 야구 대축제를 개최했었다. 그게 장학재단을 만드는 시발점이 된 것인가.
▲사실 청소년 야구 축제는 2년 전부터 준비해 왔었다. 2009년에는 언론에 알리지 않고 시험삼아 야구대회를 열었고, 지난해 본격적으로 대축제 형식으로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당시 전국 55개 클럽, 1000여 명의 청소년들이 참가할 정도로 호응이 좋았고, 처음엔 아이들 공부 때문에 야구대회 참가를 꺼리던 부모님들이 워낙 반응이 좋으니까 나중에는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주셨다. 그 대회를 치르며 내 인생의 목표를 수정했다.
―어떻게 수정했다는 얘기인지 궁금하다.
▲난 아이들이 야구를 통해 인성 교육을 받기 원한다. 야구는 번트를 쳐서 팀을 위해 희생하는 정신도 필요하고 홈런으로 대박을 내는 플레이도 필요하다. 위기도 맞고, 좌절을 맛보기도 하고, 그러다 기사회생하면서 비상하기도 하고…, 야구 안에 인생의 모든 게 들어 있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하는 인성을 야구를 통해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그 청소년 야구 대회를 진행하면서 하게 됐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은퇴 후에 하고 싶어 하는 일이 프로야구 감독이다. 나 또한 그랬다. 그 대회를 치르기 전까지만 해도. 그러나 아이들이 드넓은 야구장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까 내가 앞으로 할 일은 지도자가 아닌 청소년들을 위해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럼 앞으로 감독 양준혁은 볼 수 없는 건가.
▲언젠가 지도자를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지금까지 야구를 열심히 해왔고, 덕분에 팬들의 엄청난 사랑도 받았다. 그 보답을 코치, 감독하면서 주류에 들어가는 것으로 돌려주기보단 그 이상의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래서 낮은 자세로 봉사하는 길을 택했다.
―강사 양준혁도 새로운 모습이다. 그동안 강의했던 대상자들이 굉장히 다양한데, 가장 기억나는 강의가 있다면?
▲프로야구 신인 선수들을 대상으로 얘기를 풀어 가는데, KBO 관계자들은 정말 유익하고 재미있는 내용이었다며 칭찬을 해주신 반면, 정작 신인 선수들의 반응은 ‘무’였다. 무슨 얘길하면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강의 내내 미동도 안 하고 조용히 앉아 있으니까 ‘내가 강의를 잘못하나?’ 싶었다. 중학생들을 데리고 할 때는 정말 갑갑하더라. 자기들끼리 마구 뛰어다니질 않나,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통제도 안 되고…, 그 강의 이후로 잠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앞으로 이 일을 계속 해야 할지, 어떨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이다(웃음).
―올 시즌 SBS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하게 되는데, 첫 번째 일이 일본 전지훈련지 탐방이었다. 오랜만에 감독도 만나고 후배들과 해후한 소감이 어떠했나.
▲아직은 그 타이틀이 낯설기만 하다. 특히 유니폼 대신 사복을 입고 선수들을 만난다는 게 익숙하진 않다. 은퇴 후 한동안 야구를 멀리했었다. 다시 야구가 하고 싶어질까봐 애써 외면하고 살았다. 그런데 일본에 가니까 또 다시 야구가 하고 싶어지더라.
―삼성 라이온즈 전훈지도 방문했었다. 감독 바뀐 후 팀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하던데.
▲정말 그랬다. 류중일 감독 체제 하에서 정말 많이 바뀌었더라. 그 전까지만 해도 선수들이 훈련할 때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던 반면, 지금은 아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즐겁게 훈련하고 있었다. 전훈 동안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해냈다고 했는데, 표정은 밝고 선수들 몸은 한층 탄탄해지고, 이전의 삼성과는 180도 달랐다. 전훈지에 직접 가보기 전까진 삼성이 우승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돌아보니까 삼성이 두산과 함께 SK를 대적할 수 있는 대항마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감독님도, 선수들도 즐거운 야구에 푹 빠져 지내고 있어 내심 부럽기도 했다.
―만약 류중일 감독이 좀 더 일찍 팀을 맡았다면 은퇴 시기가 달라질 수도 있었겠나.
▲아마 3년은 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은퇴한 걸 후회하진 않는다.
―은퇴 직전에 벤치 신세로 전락했고 배팅볼 투수로 나서기도 했다.
▲당시엔 정말 도 닦는 심정으로 했다. 도를 닦지 않으면 어쩌겠나. 나도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안 하면 너무 힘든데, 감독이 출전시키지 않는 상황에서 선수인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배팅볼 투수든 뭐든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다. 팀 고참이었던 나로선 최선의 선택이었다.
―다른 팀에서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어 했지만 결국 은퇴를 선택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문제다. 솔직히 다른 팀으로 가고 싶었다. 내가 갖고 있는 기록들이 많았고 그걸 이어나가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모든 걸 다 버린다고 해도 선수 생활을 계속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야구를 처음 시작한 곳에서 마무리하는 게 더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마음을 고쳐먹었다. 구단에서는 고맙게도 어딜 가더라도 풀어주겠다고 했지만 내가 깨끗이 포기했다. 아마도 그런 점들이 은퇴식 때 많은 팬들을 불러모으게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 대구구장 역사상 가장 많은 팬들이 들어왔다고 했으니까.
―은퇴 후 혼자라는 느낌, 외롭다는 생각, 해본 적이 있나.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구단에 들어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경산볼파크 정문을 나서는데, 순간 두려움이 엄습해 오더라. 이제까지 내가 집처럼 드나들었던 곳을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사실과 누구의 도움도 지원도 받지 못하고 혼자 살아가야 하는데,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 문을 통과하기가 겁이 났다. 다행히 은퇴하자마자 방송에다 강연 등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딴 생각할 틈이 없었다.
―선수 때 깊은 인연을 맺은 김응용 사장, 김재하 단장 등이 모두 퇴진했다.
▲개인적으로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그분들 계실 때 은퇴할 수 있어서 난 행복한 놈이다. 그분들은 양준혁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셨다. 뭐, 내 위주로 좋게 좋게 해석하는 거다(웃음).
“선수 때보다 더 바쁘게 살아”
―송진우, 양준혁이 은퇴하면서 지금 프로야구 최고의 노장 선수는 이종범이 돼버렸다.
▲종범이만이라도 오래 오래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종범이가 부러운 건 감독님이 종범이의 가치를 인정하고 많이 안아준다는 점이다. 고참은 감독이 안아주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 종범이가 실력면에선 후배들보다 뒤처질진 몰라도 그가 팀에 있고 없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종범 같은 선수를 만들려면 돈을 10억, 20억을 줘도 힘들다. 젊은 감독들은 고참을 버리고 신인 선수를 키우려 하는데, 고참이 있어야 신인도 존재하는 것이다. SK가 잘 나가는 건 그런 균형이 잘 잡혀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종범이가 많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나도 송진우 선배가 은퇴해 버리니까 기댈 벽이 사라진 느낌에 많이 힘들었다. 그런 면에서 종범이한테 미안한 마음도 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오키나와 전훈지에서 이승엽 선수를 만났다.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들었는데.
▲대부분 30대 중반을 넘어서면 슬럼프가 찾아온다. 나도 그랬다. 어느 순간부터 배트 스피드가 떨어지는 걸 느꼈다. 그래서 만세타법을 개발한 것이다. 승엽이도 마찬가지다. 마음은 이전 홈런 50개를 쳤을 때의 타격폼이 가능할 것 같지만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한다. 버릴 건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이번에 만났을 때 그 얘길 해주고 싶었는데 말할 기회를 놓쳐 버렸다.
양준혁은 ‘야구 고수’인 이승엽에게 자신이 선배랍시고 무슨 조언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짧게 전한 내용에는 이승엽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요. 30여 년을 매일 시험 치르듯이 살다가 그런 긴장감을 내려놓고 새로운 인생을 만나 선수 때보다 더 바쁘게 살고 있거든요. 지금의 자유와 즐거움을 오랫동안 누리고 싶어요.”
‘양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자 또한 절로 행복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