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년시절 가출한 친어머니와 의붓아버지를 27년 만에 찾아가 무차별 살해한 30대 패륜남이 경찰에 자수했다. KBS 뉴스 캡처 |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무색하게 이 씨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모정을 단칼에 베어버려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천륜을 저버린 기막힌 살해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3월 9일 오후 서울 강서경찰서 강력1팀 사무실의 분위기는 예상 외로 조용하고 차분했다. 사무실 한켠에는 존속살해 혐의로 입건된 이 씨가 말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해진 점퍼 차림에 왜소한 체구의 그의 모습은 흉악범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한동안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그는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어렵게 입을 열었고, 천천히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놨다.
이 씨는 “내 30년 인생은 ‘외로움’ 그 자체였다”며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자주 집을 비웠고, 아버지가 집을 비울 때면 어머니는 낯선 아저씨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이 씨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저녁 어스름이 내릴 무렵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들어온 그는 우연히 어머니 최 아무개 씨와 내연남의 육체 관계를 목격했다. 충격이었다. 이후 이 사실은 아버지의 귀에 들어갔고 부부 싸움은 더욱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최 씨가 자식들을 버리고 내연남과 서울로 도망을 갔다”고 수군거렸다. 이 씨가 일곱 살, 동생은 다섯 살 때의 일이었다.
그후로 아버지는 손에서 술병을 놓지 않았고 건하게 취했을 때는 이 씨와 동생을 흠씬 두들겨 팼다. 무서운 아버지를 막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생활이 5년 동안 이어졌고 이 씨가 열두 살이 되었을 무렵 재혼에 실패한 아버지는 농약을 마시고 그가 보는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씨는 “농약을 마신 후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에 나를 바라봤다. 아버지의 슬픈 표정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어머니의 가출과 아버지의 자살로 의지할 곳이 없어진 두 형제는 낯선 손에 이끌려 고아원에 맡겨졌다. 그 당시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잊은 채 공포스러웠던 아버지의 구타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형제는 기뻤다. 그만큼 이 씨는 철부지 어린애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중학교에 들어간 이 씨는 ‘고아’를 바라보는 세상의 껄끄러운 시선에 담담해질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는 유년 시절의 악몽이 떠나질 않았다. 더군다나 고아원에서도 동기들의 구타가 이어졌다.
결국 17세에 동생을 데리고 고아원을 나온 이 씨는 건설 현장과 가발 공장 등을 전전하며 어렵게 생활을 이어갔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다 어머니와 내연남 때문이다.” 생활이 팍팍해 질 때마다 이 씨는 자신과 동생의 불행이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간 어머니 때문이라고 되뇌었다.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은 날로 커져만 갔고, 이는 다른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졌다. 그는 연애는커녕 여성과 대화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15년이 흘렀고 그는 30대 중반의 나이가 됐다. 늦었지만 어머니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이 씨는 어느 날, 의료보험 피부양자 신청을 위해 동사무소에 들렀다가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면서 어머니의 주소지를 알게 됐다. 이 씨는 만감이 교차했다. 건강하게 잘 사는지 궁금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자신의 삶을 진흙탕으로 몰아넣은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솟구쳤다. 복수를 하는 꿈도 여러 번 꿨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는 결국 서울 강서구의 모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어머니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초인종을 누르는 그의 품에는 지난달 인터넷 홈쇼핑에서 구입한 21㎝ 길이의 칼이 숨겨져 있었다.
3월 8일 오후 1시께 문을 두드리자 어머니 최 씨는 ‘누구세요’라며 선뜻 문을 열어줬다. 이 씨는 “저 이○○입니다”고 자신의 이름을 밝혔지만 최 씨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감격하거나 슬픈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내연남 노 아무개 씨와도 헤어져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는 최 씨는 파리할 정도로 초췌한 모습이었다.
27년 만에 상봉한 모자는 그 날 4시간 30분 동안 소주 2병을 나눠 마시며 그동안의 못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술에 취한 이 씨에게서 일곱 살 당시의 아팠던 기억이 흘러나오자 분위기는 냉랭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최 씨가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이 씨를 밀치자 흥분한 이 씨는 품고 있던 흉기로 최 씨의 복부를 여러 차례 찔렀다.
술에 만취한 이 씨는 그순간 어머니의 내연남 노 씨를 떠올렸다. 어머니의 휴대폰을 뒤져 알아낸 노 씨의 연락처로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만나자는 이 씨의 요구에 노 씨는 선뜻 응했다. 그날 저녁 7시경 노 씨의 직장이 있는 경기도 양주의 모 매운탕 집에서 두 사람은 어색한 대면을 했다. 술잔이 몇 번 오갔고, 이 씨는 “나에게 사과를 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노 씨가 “난 너의 어머니와 불륜을 저지른 적이 없다. 사과할 수 없다”고 말하자 격분한 이 씨는 다시 흉기로 노 씨의 복부를 여러 차례 찔렀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급히 도주한 이 씨는 3시간여 만에 자신의 주거지가 있는 서울 관악경찰서 신사파출소에 “죗값을 치르겠다”며 자수했다. “어머니가 사과만 했더라도…”라며 고개를 숙인 그는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이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안다. 하지만 나도 피해자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자 이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경찰은 정확한 살해 동기를 조사할 예정이다.
우선미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