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윤기의 범죄 증거를 은폐한 장본인은 장윤기의 부친 A 씨였다. 검찰은 보완수사 과정에서 A 씨가 장윤기가 사는 원룸에 있던 리얼돌 여러 개와 장윤기 명의 휴대전화 등을 챙긴 뒤 버린 정황을 확인했다. 아울러 검찰은 장윤기가 범행 도구로 썼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서 범행 전 행적이 담긴 블랙박스의 메모리카드를 확보했다. 경찰 간부인 A 씨는 현재 휴직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경찰청은 2일 A 씨를 상대로 감찰에 나섰다.
검찰에 따르면 A 씨는 장윤기의 범행이 발생한 지 사흘이 지난 5월 8일 해당 원룸을 정리하면서 리얼돌 다수는 여러 조각으로 잘라 버렸으며, 장윤기가 중·고등학생 시절 사용했던 휴대전화 여러 대를 불에 태운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압수수색 당시 확인된 리얼돌은 가슴과 목 부위가 집중적으로 훼손돼 있었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장윤기의 범행 목적을 성범죄로 판단, 일반 살인죄보다 무거운 강간 살인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검찰은 A 씨가 증거를 인멸한 정황을 확인했으나, 형법 155조 4항의 증거인멸 등과 친족 간의 특례에 따라 그를 형사 입건하지 않았다. A 씨는 검찰 조사에서 “아들의 범행이 성적인 부분으로 연관되는 게 우려됐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성호 법무부장관은 7월 1일 자신의 SNS를 통해 “현직 경찰관인 아버지가 중요 증거를 인멸했음에도 곧바로 제재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라면서 “친족 특례가 개선돼야 할 부분은 없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증거 인멸뿐만 아니라 범인 도피를 돕는 경우에도 친족 특례가 적용된다. 최근 경찰은 캄보디아에서 로맨스 스캠 범죄 등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국내로 송환됐다가 도주한 20대 남성 B 씨를 5개월여 만에 검거했다고 밝혔다. B 씨는 송환 직후 석방됐다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두 차례 불출석한 뒤 도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경찰은 추적을 이어갔고, B 씨는 가족 명의 카드를 이용하고 가족의 도움을 받아 은신처에서 숨어 지내다 붙잡혔다. 경찰은 형법 151조 2항의 범인은닉과 친족 간의 특례에 따라 B 씨 가족에 대해선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처럼 범죄 피의자를 은닉하거나 범죄 증거를 인멸하는 데 가담한 피의자 가족을 처벌할 수 없는 규정에 따라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친족 특례는 가족이 잘못한 것을 인륜적인 관점에서 덮어줄 수밖에 없다는 관점에서 인정하고 있는 제도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국가나 사법 정의 입장에서는 범죄를 입증할 핵심 증거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상충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친족 특례 조항은 구체적·개별적 관계나 상황을 가리지 않고 ‘친족 또는 동거가족’에 해당하기만 하면 일률적으로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정함으로써 그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한정했다”고 판시했다. 다만, 파기환송심에선 원심 판결을 유지하고 C 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파기환송심 심리과정에서 C 씨의 생부가 뒤늦게 C 씨를 법률상 친자로 인정한다며 인지 신고를 했고,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범행 당시 두 사람의 친자 관계가 존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법상 인지는 출생 시로 소급해 친생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 소급효(법적 효력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발생하는 것)를 갖는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친족 특례가 적용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대장동 사건의 핵심 인물로 알려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사실혼 배우자 D 씨는 2024년 9월 열린 증거인멸 혐의 항소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D 씨는 유 전 본부장의 지시에 따라 그의 휴대전화를 폐기한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는 친족 특례를 이유로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D 씨의 주장에 대해 “사실혼 배우자가 친족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면서 “예외 규정은 한정적으로 엄격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제3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범인은닉 과정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은 경우에도 친족 특례가 적용되지 않는다. 판례에 따르면 친족이 제3자를 부추겨 범인을 도피시킨다면 교사 범행을 인정하고 있다. 검찰은 6월 11일 ‘라임펀드 사태’의 몸통으로 지목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탈옥을 도운 김 전 회장의 친누나 김 아무개 씨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김 씨는 자신의 애인을 김 전 회장에게 연결해주며 도피를 지원한 혐의를 받는다.
법조계에서는 친족 특례를 점진적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곽준호 변호사는 “친족 특례는 사법 정의 실현과 실체적 진실 규명에 배치되는 조항인 만큼, 범위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어 “존속살해죄 가중처벌이 형평성 논란을 낳았던 것처럼, 친족이라는 이유로 범죄를 면책해 주는 것이 옳지 않다는 시각도 커지고 있다”며 “이는 우리 사회가 가족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변화하는 흐름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친족 특례를 없애기 위한 입법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 2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형법상 범인은닉·증거인멸죄에 적용되는 친족 특례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한 의원은 “변화한 시대 흐름에 맞춰 형법상 친족 특례 제도를 폐지해 강력범죄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가해자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