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팬택계열의 박병엽 부회장이 계열사 주식을 대량 매도해 그 배경을 놓고 다양한 추측이 나돌고 있다. | ||
최근 휴대폰 제조업체인 (주)팬택의 대주주인 박병엽 부회장이 계열사인 (주)팬택앤큐리텔의 주식을 대량 매도한 사실을 두고 뒷말이 많다.
회사 측에서는 회사의 경영구도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라고 배경을 설명했으나, 뭔가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오가고 있는 것이다.
박병엽 부회장은 업계에서는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는 인물. 중소 전화기 제조회사의 영업사원에서 삐삐(페이저)와 휴대폰을 만드는 벤처회사인 (주)팬택을 설립해 일약 거부의 대열에 올랐기 때문. 또 (주)팬택이 현대전자 휴대폰 사업부문인 현대큐리텔(현 팬택앤큐리텔)을 역합병(팬택보다 자산규모가 더 큰 회사였다)하면서 그는 벤처신화로 불렸다.
더군다나 이 같은 일들을 30대의 젊은 나이에 이뤄내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1962년생인 그의 올해 나이는 42세.
그런 박 부회장이 지난 2001년 인수했던 팬택앤큐리텔의 주식을 지난 2004년 말 돌연 대량 매도해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12월23일 그는 팬택앤큐리텔의 지분 12.2%(주식수 1천8백35만 주)를 자전 거래를 통해 장내에서 팔았다. 이 주식을 사들인 곳은 흥미롭게도 팬택의 또다른 계열사인 팬택씨앤아이(과거 팬택캐피탈)라는 곳이었다. 주당 매도가격은 1천8백50원으로, 박 부회장은 이 거래를 통해 3백40억원을 손에 쥐었다.
눈길을 모은 이유는 이 같은 거래가 이루어진 뒤 팬택 계열사들의 지배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 때문. 과거 팬택의 계열사들의 지분구조는 박 부회장을 정점으로 수직구조였다.
박 부회장은 계열사인 팬택앤큐리텔과 (주)팬택, 팬택씨앤아이(과거 팬택캐피탈) 세 회사의 대주주였다. 이 중 팬택씨앤아이는 투자전문업체로 비상장 법인이다. 그는 팬택앤큐리텔의 지분 25.12%, (주)팬택 20%, 팬택씨앤아이 100%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거래 이후 변화가 생겼다. 팬택씨앤아이가 팬택앤큐리텔의 대주주(지분 15.83%)로 올라섰고, 팬택앤큐리텔과 박 부회장이 다시 (주)팬택을 거느린 형태가 된 것이다. 사실상 팬택씨앤아이가 계열사를 아우르는 지주회사가 된 셈이다.
팬택측은 훗날 그룹의 도약을 위해 이런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박병엽 부회장도 “세계 휴대폰 업체가 향후 3년 이내에 대대적인 개편이 될 것으로 보여 이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계열사의 소유구조를 개선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의 주장을 뒤집어 보면 나중에 팬택앤큐리텔의 재투자 등을 위해서는 외국자본의 유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인데, 이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는 지주회사 체제가 낫지 않겠냐는 얘기다.
증권가에서도 대체적으로 이에 대해 수긍하는 분위기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팬택앤큐리텔과 팬택이 장기적으로 합병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차원에서 볼 때 미리 정지작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외자유치를 위해서는 개인보다는 회사가 대주주인 것이 수월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문제는 왜 하필이면 지금 이 시점에서 소유구조를 바꾸었느냐는 점이다. 왜냐하면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회사 내부에서는 팬택씨앤아이를 지주회사로 내세우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
이 같은 점은 팬택씨앤아이가 금감원에 공시한 주식 변동 내역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지난 2003년 12월 팬택씨앤아이는 이번에 지분을 인수한 팬택앤큐리텔의 지분 8.97%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2004년 팬택씨앤아이는 이 회사의 주식을 계속 팔았다. 총 세 차례였고, 모두 장 마감이 끝난 시간외 매매였다. 세부 내역을 보면 팬택씨앤아이는 지난 3월19일 3백50만 주, 4월30일 2백만 주, 5월17일 2백50만 주를 팔았다. 이로써 팬택앤큐리텔에 대한 팬택씨앤아이의 지분은 3.63%로 뚝 떨어졌다.
그러나 지난 12월23일 팬택씨앤아이는 박 부회장으로부터 이 회사의 주식 1천8백35만 주를 사들였다. 불과 6개월 만에 마음이 바뀐 것이다. 물론 지난해 3~5월 사이에 팬택씨앤아이가 어떤 이유에서 시간외 매매를 통해 수백만 주의 주식을 팔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6개월 만에 회사의 경영 전략이 달라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경영전략이 바뀐 배경을 두고 말들이 많은 것이다. 업계에서 박 부회장의 주식 매도를 두고 ‘야심찬 행보냐, 꼼수를 부리는 것이냐’는 시각을 보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로서 증권가의 시각은 박 부회장이 여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런 작업을 서둘렀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특히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게 된 팬택씨앤아이가 향후 박 부회장의 (주)팬택의 지분까지도 사들일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같은 추측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주)팬택의 주당 가격은 2004년 말 현재 팬택앤큐리텔의 3배 정도인 4천원대다. 만일 팬택씨앤아이가 박 부회장의 (주)팬택 지분을 사들일 경우, 박 부회장은 최소 2백억원 이상의 여유자금을 추가로 확보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될 경우 팬택씨앤아이가 명실공히 (주)팬택과 팬택앤큐리텔을 아우르는 지주회사가 되겠지만, 박 부회장으로서 위험부담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팬택씨앤아이는 박 부회장이 100% 출자해 설립한 회사기 때문이다.
회사의 지배구조가 지주회사 체제로 바뀐 것일 뿐, 본질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핵심은 과연 박 부회장이 향후 확보자금으로 어떤 행보를 취할 것이냐는 부분이다. 불과 6개월 만에 회사의 경영 전반이 뒤바뀐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증권가에서는 박 부회장이 신규회사를 인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 부회장은 과거에도 회사와 별개의 개인 출자로 회사를 인수했다. 지난 2001년 (주)팬택이 현대큐리텔(현 팬택앤큐리텔)을 인수할 당시 투자는 박 부회장의 개인지분 출자를 통해 이뤄졌다.
그의 이런 투자패턴으로 볼 때 이번에 그가 여유 자금을 마련한 것도 신규 투자를 하기 위해서라는 시각이 우세한 것. 특히 그가 대우종합기계의 인수전에 야심차게 뛰어들었다가 고배를 마신 쓴 경험이 6개월 만에 팬택씨앤아이를 지주회사로 앞세운 것과 전혀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배경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박 부회장이 어떤 회사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과연 그가 이번 매각 자금으로 새로운 일에 뛰어들어 그룹 회사로 일굴 것인지, 아니면 개인 용도로 사용할 것인지는 두고봐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