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에는 바둑계의 의미있는 ‘사건’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장면 A>를 보자. 끝내기 문제다. 편의상 13줄 바둑판으로 만든 문제다. 흑이 둘 차례. 끝내기 할 곳은 A부터 P까지인데, 흑으로서 최선의 끝내기는? 좌상귀 쪽은 흑이 A로 막을 수도 있지만, 후수다. 백이 A로 들어올 때 흑B로 막을 수도 있고, 아직은 손을 뺄 수도 있다. 계속해서 백이 B로 들어와도 흑은 또 손을 뺄 수 있고, 백이 C까지 들어왔을 때 흑D로 백 3점을 따내면 된다. 백이 A로 들어가는 것은 선수 한 집 끝내기, 백B와 백C도 한 집 끝내기. 흑D로 따내는 것은 6집. 이런 형태이므로 좌상귀 쪽은 ‘1-1-1-6’의 곳이라 하자.
우상귀 쪽도 흑이 E로 막는 것은 후수. 백이 E에서 F, 다시 G로 들어왔을 때 흑H로 백 2점을 따내면 된다. 4집이다. 위의 방식을 대입해 우상귀 쪽은 ‘1-1-1-4’의 곳이라 하자. 좌하귀 쪽은 흑이 I에서 J-K로 들어갈 때 백L로 막아 흑 3점을 잡는다고 보면, 이곳 백집은 공배 하나를 포함해 7집. ‘1-1-1-7’의 곳이다. 우하귀 쪽은 흑M-N-O 때 백P로 막는다고 보면 ‘1-1-1-3’이다.
그럼 정답을 보자. <A-1도>가 정해도다. 우하귀 쪽부터 들어가는 것. 그래서 흑15까지 되는 것. 왜 이게 정해냐 하는 것은 다음 그림들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A-2도>를 보자. 좌하귀 쪽부터 들어가는 그림이다. 이쪽이 제일 커 보이므로 어쩐지 이쪽부터 들어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래서 흑15에서 종국인데, 쌍방 전체 집 수는 차치하고, 끝내기한 내용만 따져보자. <A-1도>는, 흑이 좌상귀 7집, 우상귀 4집, 합계 11집. 백은 좌하귀 7집, 우하귀 3집, 합계 10집. 흑이 1집을 더 했다. 이에 비해 <A-2도>는?
흑은 좌상귀 6집, 우상귀 4집, 합계 10집. 백은 좌하귀 7집, 우하귀 3집, 합계 10집, 쌍방 똑같다. 그렇다면 흑은 <A-1도>에 비해 1집 손해 본 것. 이번엔 다시 <A-3도>처럼 두어 보자. 좌상귀 흑1처럼 자신의 집을 먼저 지키는 것. 이래서 백4까지면, 흑은 좌상귀 9집, 우상귀 7집, 백은 좌하귀 10집, 우하귀 6집, 합계 16집. 역시 흑백이 똑같고, 이번에도 흑은 1집 손해 본 것.
묘하다. 다 똑같아 보이는 곳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우연일까. 그렇다면 매번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그려 보고, 계산한 후 끝내기를 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런데 다행인 것은 <A-1도> 같은 정답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것. 그리고 그 필연을 찾아내는 공식이 있다는 것. 그걸 찾아낸 사람이 있다. 김인선 아마 6단(62)이다. 중학교 때 바둑을 배웠으니 얼추 50년 기력(棋歷). 사회생활은 공무원으로만 30년. 서울시청-구청 바둑모임에서는 1~2위를 다투었다. 그 정도면 어딜 가도 바둑 둔다고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실력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프로기사도, 수학이나 바둑학 교수도 아니면서 어떻게 저런 걸 연구해 찾아낸 것인지. 길고 긴 스토리, 사연이 있다.
그는 1986년인가 바둑 잡지에서 일본의 고바야시 고이치 9단과 누군가가 둔 바둑의 관전기에서 “고바야시 9단이 역끝내기 4집을 기민하게 해치웠다…”는 구절을 읽었는데, 이게 도대체 왜 역끝내기 4집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의문을 풀기 위해 한국과 일본에서 나온, 끝내기를 다룬 바둑책 전부, 70여 권을 훑었는데, 아무 데서도 속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는 것. 그래서 혼자 연구해 보기로 했다고 한다.
끝내기의 이론을 정립하고, 그 이론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데 14년이 걸렸다. 전공이 수학은 아니었지만, 젊었을 적 대입학원에서 수학을 강의할 정도로 수학에는 조예가 있었다.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필을 위해 정년을 스스로 앞당겨 2년 반 일찍 명퇴를 했다.
2009년에 원고를 들고 레저-스포츠 전문 출판사 서림문화사를 찾아갔다. 서림의 바둑책은 ‘총해’ 시리즈를 따라 <끝내기 총해> 3권을 냈다. 최근 것이 엊그제 나온 <현대 끝내기 총해-원리편>이다. 앞으로 한 권을 더 낼 계획이다. 난해하고 딱딱한 내용을 완화하기 위해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으로 바둑TV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는 강나연 6단(32)이 ‘신산(神算) 이창호론’을 비롯해 끝내기에 얽힌 얘기들을 재미있는 읽을거리로 추가해 주었고, 그래서 <현대 끝내기 총해>는 김인선-강나연 공저가 되었다.
<장면 B>를 보자. 끝내기 할 곳은 역시 4군데. <장면 A>를 따르자면 좌상은 ‘1-1-1-1-3’, 우상귀는 ‘1-1-3’, 좌하귀와 우하귀는 똑같이 ‘1-1-1-3’이다.
정해는 <B-1도>다. <B-2도>, <B-3도>와 비교해 보면 된다. <장면 B>의 포인트는 <B-1도> 백6 때 흑7로 막아야 한다는 것. 이래야 좌하귀 백8-1-12와 좌상귀 흑9-11-13이 맞보기가 된다는 것이다. <B-1도> 백6 때 <B-2도> GM1로 손을 돌리거나 하면 흑이 1집 손해라는 것을 확인해 보시기를.
김 6단의 연구한 끝내기 법칙과 증명은 엄청난 분량이다. 그 중 제일 쉬운 것을 예로 들었는데, 이것만 갖고 끝내기 법칙 간단한 것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마지막 끝내기를 내가 할 수 있는 수순을 찾는다.
2. <장면 A>의 ‘1-1-1-6’, ‘1-1-1-4’, ‘1-1-1-7’, ‘1-1-1-3’처럼 맨 뒤의 숫자가 다를 경우 제일 작은 숫자 쪽부터 시작한다.
3. <장면 B>의 ‘1-1-1-1-3’, ‘1-1-3’, ‘1-1-1-3’처럼 뒤의 숫자가 같으면 중간 단계가 적은 쪽부터 시작한다.
4. 내 집을 지키는 것(김 6단의 술어를 빌리자면 ‘닫는다’)보다 상대 집을 깨는(김 6단의 술어를 빌리자면 ‘연다’)쪽부터 시작한다.
5. 맞보기는 상대와 똑같이 따라한다 등이다.
김 6단의 연구가 맞는 것이라면 대단한 업적이다. 평생 공무원 생활만 했던 무명의 바둑 동호인이 고군분투해 바둑 이론을 정립한 것은 참 유쾌한 일인데, 아직은 알아주는 사람이 드물다. 일단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가치 있는 것 중에 쉬운 게 어디 있는가. 바둑 동호인들, 또한 명지대 바둑학과나 바둑학회 같은 데서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