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태용 감독은 청산유수의 입담을 자랑한다. |
#청산유수형
성남 일화 신태용 감독을 단연 꼽을 수 있겠다. 일단 입을 벌리는 순간 청산유수. 뭔가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끄집어내려는 축구 기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터뷰이 중 한 명. 현역 시절부터 그랬다. 늘 자신감과 패기에 넘친다. 그렇다고 겉만 화려한 ‘속 빈 강정’은 결코 아니다.
일단 성적이 말해준다. ‘초짜’ 타이틀을 달고 리그와 FA컵에서 거푸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나 전력이 대거 이탈한 지난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석권해 세계 클럽 무대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난 놈’인 것 같다.” 라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스스로를 높여 칭찬하는 신 감독의 한마디에 기자회견장은 폭소로 가득 찼다.
울산 현대 김호곤 감독과 상주 상무 이수철 감독도 비슷하다. 특히 김 감독의 경우 재치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가만히 듣고 있자면 오랜 경험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요긴하고 흥미로운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다. 물론 기사화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자주 섞여있다는 게 아쉬울 따름. 사실 이 감독은 거의 만담꾼에 가깝다. 주제와 범위도 워낙 다양해 심지어 킥오프를 앞두고 라커 룸을 찾아와 이것저것 묻는 기자들에게 직접 전술 강의를 하기까지 한다.
#재치형
전북 현대 최강희 감독이 대표적이다. 국가대표팀 조광래 감독을 ‘오빠’로 칭하기도, 팀 선수들을 ‘우리 형’으로 부르기도 한다. 농담도 잦다. 그래서 거리감도 없고 친근하다. 대신 그 속에는 뼈가 담겨 있다. 한마디 한마디를 허투루 들을 수 없다. 리그 개막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 때도 그랬다.
전남 드래곤즈와 ‘호남 더비’를 앞두고 공격수 지동원의 결장을 예고한 상대 정해성 감독을 향해 “언론플레이 아니냐”고 물었다. 시선을 돌리게 하려는 연막작전이 아니냐는 의미. 2009년 말 갑작스레 팀을 떠난 포항 스틸러스 파리아스 전 감독에 대해서도 최 감독은 “파리아스가 떠나줘서 고맙다”는 표현을 했다. 전북이 우승한 뒤 K리그 감독상을 수상하는 자리였는데, 자신이 영웅이 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줘 감사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실은 클럽월드컵 도중 갑자기 지휘봉을 놓아버린 파리아스 전 감독의 무책임함을 지적하는 뜻도 담겨 있었다.
제주 유나이티드 박경훈 감독도 ‘재치’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원래는 전직 교수답게 학자 인상이 물씬 풍겼으나 어느 순간 180도 콘셉트가 바뀌었다. 교과서 같은 발언을 되풀이하던 박 감독은 지난 시즌 제주가 오랜 부진을 뚫고 K리그 포스트시즌에 돌입하자 “우승하면 주황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겠다” “그런데 모발 상태가 좋지 않아 염색 대신 노래방용 가발을 이용하면 안되겠느냐” 등등 톡톡 튀는 발언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정답형
부산 아이파크 안익수 감독과 FC서울 황보관 감독이 이 유형에 속한다. 둘은 공부하는 지도자, 전형적인 교수 및 학자 타입이다. 그래서인지 재미나 흥미와는 거리가 있다. 오직 정답만을 말한다. 주목할 만한 키 플레이어를 한 명 꼽아달라는 물음에 “우리 팀 선수들 모두”라는 영양가 없는(?) 답변을 늘어놓는다. 농담조차 진지하게 받아들이니 말을 건네기조차 꺼려질 때가 많다. 대신 신뢰가 느껴진다. 절대 거짓이 없어 보인다. 사실 서울의 전 사령탑 넬로 빙가다 감독도 ‘정답형’ 타입에 가까웠다. “모두가 잘했다”는 코멘트는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축구계 일각에서는 그런 빙가다 감독과 함께 서울 선수단을 이끌었던 안 감독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분석을 한다. ‘설교가’ ‘전도사’ ‘목사님’이란 표현이 괜한 게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황보관 감독은 어떨까. 일단 안 감독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가장 먼저 ‘팀’을 거론하는 등 전체적인 인상은 비슷했으나 여유가 있을 때, 필요 있을 때 던지는 한마디는 종종 재미있다. 아니, 재미있었다. 수원 삼성 개막전을 앞두고 “수원은 돈으로 선수들을 사 들이는 맨체스터 시티와 같다”고 일갈해 좌중을 웃긴 게 대표적인 예. 다만 초반부 성적이 기대만큼 잘 나오지 않아 여유가 없어서인지 처음의 재치가 지금은 다소 퇴색한 듯한 인상이다. 강원FC 최순호 감독, 포항 황선홍 감독 등도 날카로운 눈매와 안경 탓인지 학자 이미지를 풍기고 있다. 딱히 친분이 없으면 대화 내내 웃음을 거의 보기 어렵다는 것도 특징이다.
#사투리형…믹스(Mix)형
수원 삼성 윤성효 감독, 경남FC 최진한 감독, 광주FC 최만희 감독 등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구수하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걸쭉한 해당 지역 사투리 때문. 어쩐지 인간적으로 쉽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남들이 갖지 못한 고유의 장점이다. 물론 개인별 조금씩 차이는 있다.
나란히 수원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윤 감독과 광주 최 감독이 말수가 적은 편이라면 경남 최 감독은 스스럼없이 상대와 어울린다. 요즘은 제법 언변도 화려해졌다. “감독 됐으니 스타일 좀 바꿔보련다” “오늘 경기에 TV 중계가 잡혀 있어 화장 좀 해봤다” 등등, 최 감독의 서울 2군 감독 시절에는 통 듣기 어려운 말이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허정무 감독과 전남 정해성 감독, 대구FC 이영진 감독은 딱히 분류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를 섞어놓았다는 의미도 있다. 뭐든 어중간하다. 재치도 있지만 진지함도 있고, 간혹 고향 사투리가 묻어 나온다. 물론 이 감독은 서울 태생이지만 목소리 톤이 상당히 높아 가끔씩 경상도 사나이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사기도 한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