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피의자 반론권 보장 차원 ‘직접 면담’…기각당한 경찰은 영장심의위 소집해 반발
경찰은 아직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검찰이 사전 면담을 통해 영장신청을 기각하는 경우가 늘어나면 갈등으로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경 수사권 조정 후 갈등
올해 초, 경찰과 검찰은 한 제약회사의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를 통한 수사기밀 입수 논란으로 갈등을 겪었다.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는 대형 로펌 소속이었던 전관 변호사가 검사로부터 수사 기밀을 확보해, 기업에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검찰은 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은 영장심의위원회까지 소집 요청해 “검찰의 영장 불청구는 잘못됐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다시 기각됐다. 경찰은 이에 “영장심의위가 검찰 위주로 운영돼 경찰에 불리하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했던 상황이다.
검찰은 이 상황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경찰의 영장 신청 심사’를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중앙지검은 8월 1일 경찰이 신청한 사전 구속영장의 청구 여부를 결정하기 전 피의자와 직접 면담하는 제도를 7월 26일자로 신설했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경찰에서 피의자를 체포하거나 소환 조사한 뒤, 영장을 신청하면 검찰은 서면 자료나 증거 등을 검토해 청구 여부를 결정했는데 이 과정에서 ‘면담’이라고 하는 단계를 추가한 것이다. 피의자에게 별도의 변론기회를 부여해 방어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검찰의 권한을 다시 회복한다고 볼 여지가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동안 서울중앙지검은 경찰이 현행범으로 체포했거나, 긴급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한 경우에만 전화로 피의자의 입장을 확인했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번 조치가 검찰사건사무규칙 제77조, 인권보호수사규칙 제22조, 대검 예규인 ‘구속영장 청구 전 피의자 면담 등 절차에 관한 지침’에 따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미 7월 26일 시행 이후 사전 구속영장이 신청된 4건의 피의자 4명 모두 직접 면담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서울중앙지검에서만 이뤄지는 이번 피의자 면담은, 영장전담 부서인 인권보호부 주도 하에 이뤄진다. 1·2·3·4차장 산하 전문사건 담당 검사들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한 피의자를 구속영장 면담·조사실에서 직접 면담하는 방식이다. 피의자가 질병 등으로 출석이 곤란할 경우 전화나 화상으로 면담을 진행한다. 현재는 청사 15층에 ‘구속영장 면담·조사실’을 임시로 마련했는데, 추후 리모델링을 통해 조사실을 2개로 확충할 계획이다.
사실 이 부분은 올해 초부터 검찰 안팎에서 언급됐던 사안이다. 경찰의 수사 과정에 불만을 표하는 변호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한변협의 한 간부급 변호사는 “검찰은 당연히 수사 과정을 변호사에게 설명하고 반론권도 보장하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었는데, 경찰은 예전처럼 변호사를 빼고 수사를 하려고 하거나 아예 피의자에게 ‘변호사와 함께 오면 불리하게 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얘기를 해 피의자 몰래 혼자 오게 한 뒤 조서를 작성한 경우도 있어 대한변협 차원에서 문제 제기를 하려 했었다”고 설명했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 역시 “경찰 가운데 일부는 예전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던 때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대충 수사하거나 편하게 마무리 지으려는 성향이 남아 있더라”며 “피의자에게 억울하다 싶은 지점들을 항의하려 해도 만나주지 않거나 연락을 안 받고 사건을 처리한 경우도 있어 답답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검 변호사업계의 이 같은 반발을 고려, 피의자 대면 면담 시 변호인의 참여권과 의견 진술권을 충분히 보장하겠다는 방침이다. 물론,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에 대해서도 경찰관에게 의견 제시 기회를 부여해 객관적으로 영장 청구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검찰 내에서 ‘수사를 경찰이 주도한다면 검찰은 피의자 반론권을 청취하는, 인권을 고려하는 경찰수사 감찰기관으로 역할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고, 변호사를 동반한 피의자 면담은 이를 위한 첫 걸음”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일단 침묵하지만…
검찰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경찰은 아직 침묵하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는 ‘검경 간 갈등’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관측한다. 그동안 검찰의 영장 기각에 경찰은 예전과 달리 지속적으로 반발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검찰의 영장 기각에 대해 영장심의위원회가 ‘검찰이 잘못 판단했다’고 결정한 경우도 발생했다.
8월 2일, 광주고검 영장심의위원회는 경찰이 영장심의위를 요청한 가짜 주식사이트 운영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적정하다고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전국 고검에 영장심의위가 설치된 이후 경찰 요청이 받아들여진 첫 사례이기도 하다. 경찰은 가짜 주식 거래사이트를 운영하면서 30여억 원을 챙긴 혐의로 28명을 입건해 이 중 총책 등 6명에 대해 영장을 신청했지만, 광주지검 장흥지청 담당 검사는 보완수사를 요구하며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이 가운데 4명에 대한 영장을 다시 신청했으나 검찰에서 기각되자 영장심의위를 소집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시작된 피의자 면담 제도로 검찰과 경찰 간 갈등이 더 증폭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대한변협 간부 변호사는 “과거와 달리, 경찰이 검찰을 대등한 수사기관으로 보고 사건에 대한 입장이 다를 경우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 같더라”며 “면담을 통해 검찰이 영장을 기각하는 일이 늘어나면, 경찰도 반발 차원에서 영장심의위를 적극적으로 소집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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