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송영길 역할 분담설에 우려감…최악의 경우 ‘친노계의 정동영 외면’ 재연
여권 분열이 빨라지고 있다. 그 중심엔 이른바 ‘이심송심(李心宋心)’이 자리 잡고 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의중이 이재명 경기도지사 쪽으로 기울었다는 게 핵심이다. 친문(친문재인)계 일부를 포함한 반이재명 연합군에선 송 대표를 향해 “당장 선수 라커룸에서 나오라”(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고 직격했다. ‘송영길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만만치 않은 셈이다. 최악 땐 친노(친노무현) 지지층이 ‘정동영’을 외면한 2007년 대선판이 재연될 수도 있다.
“한계치에 다다랐다 vs 지도부 흔들기냐.”
원팀은 간데없이 분열 징후만 짙어졌다. 특히 8월 정국 들어서자마자 반이재명 연합군이 사실상 총궐기에 나섰다. 분기점은 민주당 선거관리위원회 편파 논란이 한몫했다. 당 선관위는 8월 2일 경기도 교통연수원 사무처장인 진 아무개 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선거운동에 대해 ‘문제가 안 된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공명선거분과위원장인 조응천 의원은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는 지방공사나 지방공단 상근 임직원”이라고 했다. 진 씨는 텔레그램에서 ‘이재명 SNS 봉사팀’ 단체 대화방을 만든 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에 대한 네거티브를 총지휘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앞서 경기도 장애인체육회 간부의 선거운동 관련 징계 안건이 기각 처분을 받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낙연·정세균 캠프 측 관계자들은 “고무줄 잣대”, “편파 판정” 등의 불만을 쏟아냈다. 특히 이들이 문제 삼은 것은 ‘절차의 공정성’이었다. 당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경기도 교통연수원 진 씨 의혹 건은 8월 2일 당 선관위 공식 안건이 아니었다고 한다. 당 지도부가 사실상 면죄부를 주기 위해 서둘러 처리한 것 아니냐는 뒷말도 여기서 비롯된다. “이 기준이면 누구의 선거운동을 막을 수 있겠느냐”는 비판도 쏟아졌다. 공교롭게도 송영길 대표나 조응천 의원은 비문(비문재인)계에 속한다. 일각에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같은 사안을 조사하는 점을 들어 “당 선관위와 다른 판단을 할 경우 후폭풍이 일 것”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 선관위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한 유정주 민주당 의원에 대해서도 기각 결정을 내렸다. 6월 28일 당 선관위원으로 임명된 그는 이틀 뒤인 6월 30일 이재명 캠프 명단(국민소통)에 이름을 올렸다. 유 의원은 7월 1일 선관위원에서 물러났지만, 공정성 시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친문계를 비롯한 반이재명 측에선 특정 선관위원들을 거론하며 “이재명 캠프에 몸담았거나, (이 지사) 지지자”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심송심을 둘러싼 반이재명 측 반발은 7월 초부터 증폭됐다. 송영길 대표가 7월 5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대깨문(강성 친문을 비하하는 용어)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누가 (당 후보가) 되느니 야당이 낫다’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순간, 문 대통령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한 게 발단이 됐다.
대깨문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2007년 대선 상황을 언급했다. 친노계의 ‘정동영 비토’로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530만 표 차이로 정권교체를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생양 삼았다는 논리도 곁들었다. 송 대표는 당내 이재명 견제세력의 존재도 부인하지 않았다. 정세균 전 총리는 즉각 “특정 후보가 다 확정된 것처럼 사실상 지원하는 편파적 발언”이라고 반발했다. 이낙연 캠프 핵심 관계자도 “당 대표가 대깨문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게 믿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른바 ‘이재명 송영길’ 역할 분담설이 급부상한 것도 이때다. 양측은 “말도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역할 분담 의혹은 연일 확산됐다. 송 대표는 경기도가 당·정이 합의한 긴급 재난지원금 88%에서 소외된 12%에 대해 지급 의사를 밝히자, “지방정부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반이재명 캠프 측의 “경기도 공화국 대통령”(이낙연 캠프 정운현 공보단장), “국회를 무시한 일방통행”(정세균 캠프 측)이란 반발과는 결을 달리한 것이다. 당 대선 공약을 총괄하는 민주연구원 기획안에 ‘생활 기본소득’이 포함된 것도 논란의 불씨로 작용했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론자다.
친문계 일부 의원들은 그간 ‘이재명 송영길’ 역할 분담설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전략적 연대에 맞서 ‘친문계의 8월 반격설’도 꿈틀거렸다. 송영길 리스크 관리에 대한 필요성도 친문계를 움직였다.
‘돌출형 스타일’로 분류되는 송 대표는 취임 후 설화에 시달렸다. 비밀 누설을 한 모더니 백신 계약이 대표적이다. 송 대표는 7월 28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130만~140만 회분 정도를 다음 주에 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됐다”고 말했다. 비밀유지협약 파기 논란에 휘말리자 민주당 대표실은 발칵 뒤집혔다. 논란은 이틀 뒤(7월 30일) 김부겸 국무총리가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회의에서 관련 사실을 말한 뒤 일단락됐다. “송영길 리스크가 여당 아킬레스건”이라는 우려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문 대통령 호위무사를 자처한 최재성 전 수석이 등판했다. 그는 8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송 대표를 직접 거론하며 “대선 관리의 제1 기준은 공정한 경쟁인데 연이어 리스크를 노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두세 차례 송 대표를 비판했던 최 전 수석은 민주연구원의 생활 기본소득 연구에 대해 “쇼크다. 이러다 대선관리에서 손을 떼라는 말이 나오기라도 하면 어찌 되겠냐”고 재차 저격했다. 당 인사들은 “송 대표의 거취까지 거론할 수 있다는 시그널”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송영길’ 역할 분담 의혹이 잦아들지 않을 땐 지도부 흔들기를 본격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경우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여권 전체를 덮칠 수도 있다. 게임이론의 하나인 죄수의 딜레마는 서로 협력하면 최상의 결론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신 늪에 빠져서 가장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재명 대 반이재명’을 둘러싼 각 대선 캠프와 당 지도부가 따로 놀 경우 지지층 이반은 한층 심화될 수밖에 없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열린우리당을 깨고 창당한 대통합민주신당이 꼭 그랬다. 당시 적자 만들기에 실패한 친노계는 비노(비노무현)계 선봉장이었던 정동영 대선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친노 지지층 사이에서도 “정동영을 찍느니, 기권표를 행사하겠다”는 기류가 강했다. 당시 정동영 후보가 받은 26.1%는 사실상 호남 유권자 표에 불과했다. MB는 48.7%를 얻었다. 이회창 무소속 후보는 15.1%를 기록했다. 보수 후보를 찍은 유권자가 60%를 훌쩍 넘은 셈이다.
친문계가 처한 상황은 그때와 꼭 빼닮았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대법원 확정판결 후 친문계는 갈 곳을 잃어버렸다. 특히 친문계의 3대 딜레마인 △적자 없는 당 주류 현실 △분화 가속 △구심력 약화가 맞물리면서 위기감은 한층 커졌다. 이 과정에서 불거진 ‘이재명·송영길’ 역할 분담설은 친문 대선 후보 무산 현실화에 불을 지폈다.
실제 김경수 유죄 판결 직후 친문계 핵심축인 ‘민주주의 4.0’ 소속의 김종민 신동근 의원 등은 이낙연 전 대표 쪽으로 기울었다. 반면 진성준 박주민 이재정 의원 등은 ‘이재명 지지’에 나섰다. 제21대 총선 때 민주당 전략을 맡았던 이근형 전 전략기획위원장은 이재명 캠프에 합류했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의 등판도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도 나온다. 관망하던 친문계가 ‘이재명·이낙연’으로 양분된 셈이다.
문제는 갈등 완충 장치의 부재다. 공정성을 의심받은 송영길호 리더십은 도마에 올랐다. 최근 당 안팎에선 송영길호를 놓고 “당 대표의 영(令)이 서지 않는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당 대표 리더십이 떨어진 사이, 여권 대선주자 간 네거티브는 거세졌다.
이 전 대표 측이 이 지사의 음주운전 의혹을 거론하면서 배우 김부선 씨를 언급하자, 이 지사 측은 조국 사태 한가운데 선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과 어떤 사이냐고 반격했다. 양측의 갈등이 심화될수록 강경 친문파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친문 강경파 중 이재명을 찍느니 차라리 윤석열을 찍겠다는 기류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 파고를 못 넘으면 민주당 전체가 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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